시냇물을 마시라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먹이게 하리라
열왕기상 17장 1-7절『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길르앗은 증거의 돌무더기 라는 뜻으로, 이곳은 곡창 지대와 목축지로 유명하였는바 일찍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이곳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요구할 정도였다.
디셉은 엘리야의 고향으로, 길르앗 북방 산악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엘리야는 디셉에서 출생하여 길르앗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실제로 엘리야의 생애는 그 같은 이름의 뜻을 구현하는 데 바쳐진다. 그는 B.C. 9세기의 유명한 선지자로서 아합 왕(B.C. 874-853) 때부터 아하시야 왕(B.C. 853-852) 때까지 북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예언 활동을 하였다. 예수님 제자들이 세례 요한의 정체를 확인하면서 그가 엘리야인지 물어 볼 정도였다. 예수님은 엘리야의 심령으로 온 자가 세례요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아합은 여로보암, 바아사, 십므리 왕조를 거쳐, 오므리 왕조를 세운 오므리의 아들로서, 북이스라엘을 22년간 통치했다.
아합은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서 우상을 믿는 것이 격화되었다.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했으며, 이세벨을 위해 사마리아에 바알 신당을 짓고 단을 쌓았다.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그들의 선지자들을 공인된 지위를 부여했으며, 하나님의 선지자를 박해했고, 살해까지 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원래의 의미는 주(The LORD) 이시다. 이스라엘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여호와는 칠십인 성경이 만들어진 이후에 붙여진 용어이고, 그 이전에는 히브리인들이 아도나이로 불렀다. 아도나이는 헬라어로 큐리어스로서 주 이다.
에스라 10장 3절 에서 아도나이가 표현된 것이다. 『곧 내 주(아도나이:아돈)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스라엘의 주인은 하나님이지 바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주인을 섬기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자신의 신앙 고백인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자임을 밝히는 것이다.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때를 따라 적절히 내리는 단비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로 언급되고 있다. 반면에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지면 하늘은 더 이상 비를 내리지 않아 생명을 쇠약하게 하며 땅을 메마르게 하리라는 경고도 아울러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수년간 비가 없으리라는 엘리야의 예언 역시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다. 더욱이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한 가뭄이 가시지 않으리라는 엘리야의 선언은 바알 숭배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왜냐하면 당시 바알은 땅에 비를 내리는 등 생산력을 주관하는 신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너는 여기서 떠나(할락) 동쪽으로 가서(파나) 요단 앞(알 파님) 그릿 시냇가에 숨고”
할락은 걷다, 행동하다, 가버리다. 파나는 향하다, 대면하다, 나타나다. 파님은 얼굴, 또는 전치사로서는 앞에, 앞쪽에 등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다시 번역하면, “너는 여기서 떠나 방향을 틀어 동쪽으로 향하여 요단의 그릿에 숨고”
동쪽은 심판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은 죄악으로 싸인 이스라엘 땅인 길르앗을 떠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담과 하와가 동산으로부터 추방되어 그룹이 에덴동산의 동편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성막은 에덴동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그런데 성막을 둘러싸는 성막의 뜰에는 동쪽으로 열려있다. 인간에게 내려진 판결은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쫒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 동쪽은 하나님과 인간의 연결고리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하고 성막의 뜰에는 동쪽으로 들어오도록 열려있게 하셨다. 동산으로부터 추방당한 인간의 모습이다. 또한 동쪽이라는 의미는 죄의 결과이며,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곳이기도 했다.
요단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곳이며, 세례는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를 갖는다. 우상으로 오염된 곳을 다 파괴하고, 새로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숨고는 문자 그대로 피하다, 감추다는 뜻의 사타르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 동사에서 엘리야의 심판 예언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당분간 엘리야에게 몸을 감추도록 명하신 것이다. 학자들은 아합과 이세벨의 위협이 있을 것이므로 피하도록 했다고 말을 하지만, 이는 심판 이전에 하나님의 권능을 감추는 것이다.
“그 시냇물(나할)을 마시라(샤타)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나할은 개울에서 흐르는 물이다. 흐르는 물은 생명이 있으며, 생명의 물을 마시는 것은 신약시대로 말을 하자면 부활생명을 마시는 것이다. 성찬식에서 포도주 잔을 들고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까마귀는 부정한 동물이다. 그리고 까마귀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주로 먹이로 한다. 까마귀가 엘리야를 먹이는 것은 죽음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떡과 고기는 죽은 후의 부활생명을 상징한다. 엘리야가 죽고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죽고 사는 것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곧장 사막과 같은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을 하시고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다. 이제 같은 모양으로 엘리야도 계곡 물을 마시고, 까마귀가 주는 것을 먹으며, 오랜기간 가뭄 속에서 지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칭한 것과 같이 엘리야에게 부활생명인 권능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상 단지를 다 파괴하고 하나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