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7월28일 화요일 말씀묵상 ♣
성경:사도행전10:17-23(신204P)
제목: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
17.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1)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어떤 사본에, 세 사람이
20.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23.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할렐루야!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말씀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
우리의 삶 속에는 다양한 편견이 있습니다.
첫째로, 생각의 편견입니다.
둘째로, 외모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셋째로, 지역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편견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무서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편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버리십시오. 외모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시오. 지역에 대한 편견을 버리십시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열방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편견을 버리십시오. 긍정적인 사고, 믿음의 사고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깨어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편견을 넘어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편견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날마다 무차별적으로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깊이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복음의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그리고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충만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편견을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 버리십시오. 바로 그 순간 한 영혼이 새롭게 보이고, 한 영혼이 아름답고 존귀하게 여겨지는 역사가 임할 줄 믿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 편견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뜻을 펼쳐가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복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행10:17-23절)
사람은 만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태어날 때 처음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입니다. 이것은 혈연의 만남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혈연으로 만난 분입니다. 성장하면 선생님을 만납니다. 병이 생기면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성장하면 배우자를 만나게 됩니다. 만남에 있어 중요한 게 있습니다.
좋은 만남인가? 잘못된 만남인가? 만남을 통하여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떤 종교를 만나는가? 에 따라 영원토록 축복인가? 아닌가? 결정이 나기 때문입니다.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환자가 의사를 잘 만나면 죽음 직전에서도 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잘못 만나면 살 환자가 죽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만남의 복” 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을 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장하면서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소탈한 친구를 만나면 나의 속됨을 고칠 수 있고 통달한 친구를 만나면 나의 편벽됨을 깨뜨릴 수 있고 박식한 친구를 만나면 나의 속됨을 고칠 수 있고 나의 고루함을 고칠 수 있고 차분한 친구를 만나면 나의 경망스러움을 다스릴 수 있고 욕심 없이 깨끗하게 사는 친구를 만나면 사치스러워지려는 나의 허영심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성년이 되면 배우자와 배필을 잘 만나야 합니다. 리브가는 이삭을 잘 만났습니다. 신약에서 마리아는 요셉을 잘 만났습니다. 이들이 만약 다른 사람들과 같은 남자를 만났더라면 유명한 여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 일본의 여자신학교 기숙사에 복면 강도가 침입하여 모든 것을 털어 가려 합니다.
믿음 좋은 여학생 한 명이 그 도둑의 짐 속에 자기가 아끼는 작은 성경 한 권을 넣었습니다. 여학생이 어느 날 유명한 목회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눈에 익은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아끼던 성경책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남편이 들어왔을 때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 성경이 무슨 성경이냐고? 남편 되는 이는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내가 청년시절 도적질하러 어느 여학교기숙사에 들어갔다가 이 성경을 갖고 오게 되었는데 이것을 읽다가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하여 목사가 되었고 당신을 만나게 되었다고 내가 변화된 것은 이 성경 덕이라구요.
그때 아내가 말합니다. 이 성경책은 내 것이랍니다. 내가 당신이 도둑질하러 왔을 때 짐 속에 넣어 두었다고 이후에 부부는 훌륭한 주의 사역자가 되었답니다.
만남가운데는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피차 이익을 위하여 만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사업상의 만남, 국가 원수들이 양국의 이익을 위해서 만나는 만남 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영적인 만남의 한 장면을 살펴보게 됩니다.
곧 이방인으로 경건하고 구제에 힘쓰는 고넬료와 예수의 제자 베드로와의 만남입니다.
고넬료가 평신도라면 베드로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교회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지도자는 좋은 신앙의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평신도와 평신도들도 같이 잘 만나야 합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서로가 처음부터 좋은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남 속에서 행복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만남가운데서 상처받는 이들이 치유를 받습니다.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만남가운데서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은 어떤 만남이었습니까?
1. 기도 중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만난 만남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3절에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제구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경이고 기도의 시간입니다.
5절을 보시면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하인 둘과 부하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욥바에 보냅니다(7절과 8절).
베드로도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때가 제6시였다고 하였습니다. 9절 6시는 낮 12시입니다.
정오의 기도시간입니다. 본문20절에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이렇게 기도 중에 만난 것입니다.
사람의 만난 중에는 우연히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사람 어떤 Meeting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있습니다.
또 Meeting은 Meeting인데 소개받고 만나는 Meeting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군에서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전우라고 하지요. 그런데 군대에서 만난 사람이 친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를 인카운터(encounter)라고 말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라는 말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만나는 만남도 있습니다. 이들은 거래가 끝나면 만남도 끝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가 함께 만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성도가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자리에 앉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만남은 영적인 만남입니다.
이것이 스페셜 인카운터(Special encounter)의 만남입니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만남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좋은 만남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만남가운데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즉, 성도의 이상적인 교통이 있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같이 있다고 대화를 웃으면서 하였다고 좋은 관계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장례식 날 할머니는 침울한 표정으로 걸어갔고 아들이 관을 들고 나가다가 잘못해서 쿵 하고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관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관을 열어보니 할아버지가 살아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은총이라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할아버지는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10년 후 다시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이 관을 들고 장례식장을 빠져 나가는데 옆에서 할머니가 초조한 얼굴로 소리칩니다.
얘들아 벽 조심해. 왜 또 살아날 까봐. 부부가 같이 살아도 스페셜 인카운터가 안 되는 이들이 많다는거지요.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만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가운데서 만남의 관계가 되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사랑으로 말씀 안에서 예수의 피로 맺어진 형제와 자매의 관계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옛말로 현인이 있고 소인이 있다는데 우리는 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즘 말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옛 사람들이 말하는 현인은 인재입니다.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소인이고 어떤 사람이 현인인가요? 소인은 잔꾀가 많지만 큰 지혜가 없다고 합니다.
작은 이익에는 밝아 이익을 열심히 챙기는데 그로 인하여 큰 이익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랍니다.
허풍이 심해 말로 다른 사람들을 현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과 속이 다릅니다.
현인은 1). 언행이 정확하고 사리에 밝으며 공명정대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사람입니다.
2). 은혜를 베풀 줄 아나 보답을 바라지 아니하며 성정이 충직하고 온화하며 겉모습이 소박하고 점잖은 사람입니다.
3). 일 처리가 능숙하고 곤경 속에서 반드시 방안을 찾아내고 자신이 계획한대로 일을 해내는 사람입니다.
4). 귀한 자리에 있어도 근검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예의 바르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덕행을 쌓는 사람입니다.
5). 속세에 있으면서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나 사치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가 현인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거룩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행복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삶에 있어서 좋은 만남이 있기를 기대하십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만나는 만남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병원에 가시는 분이 의사를 잘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가셔야 합니다.
좋은 의사 내 병을 바로 알고 진단하여 처방할 수 있는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만나야 합니다.
혼기를 맞게 되는 이들이 기도하고 만나야 합니다. 아니 만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2.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모든 것을 초월 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베드로는 선민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좋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수준을 정해 놓고 끼리끼리 만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오늘은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종이나 종교를 초월하여 관계를 맺어야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국가간에 좋은 관계를 맺으면 외교를 잘하는 것이 됩니다. 서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차이가 있다, 이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도로가 막히면 미국사람들은 교통경찰관이 제일 먼저 달려와 수신호로 길을 열어주는데 일본에서는 신호등 기술자가 와서 신호등을 상황에 맞게 조작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뻥튀기 아줌마가 제일 먼저 나타난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봐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함께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은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기쁘게 만듭니다.
관계를 바로 맺기 위하여 중요한 요소가 개인차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다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르더라도 틀림(Wrong)이 아니라 다름(Different)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와 다르면 그 사람이 나쁘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나와 다른데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인정해 주려고 하면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습니다.
세대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기술문명에 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치관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미래보다 현실적입니다. 집은 셋집에 살아도 자가용은 좋은 차를 타려고 합니다.
세대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고 노인들은 캄캄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가정에서 왜 갈등이 생깁니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예의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가 나이 드신 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은 같이 있어주고 말을 많이 해주면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합니다. 자기와 같이 분주하게 사는 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바쁜데 시어머니가 이해하시겠지 생각합니다. 기대는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부부가 그렇게 사랑하는 데 왜 부부싸움을 합니까? 서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정적이고 남자는 지적입니다. 여자는 감동을 주는 말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그러면 간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일 중심입니다. 업무 중심입니다. 밖에서 전화가 와도 남자는 집안 별일 없어. 나에게 연락주기로 한 친구가 연락이 오면 잘 기록해놔. 전화를 끊습니다.
여자가 듣고 싶은 말은 업무가 아닙니다. 내가 자꾸 당신이 보고 싶어져서 전화하는 거야. 당신 집안일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지. 내가 알아 당신이 너무 수고하고 잘한다는 것 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거든 당신 오늘 수고 많이 하였는데 몸은 괜찮아?
나 당신이 좋아하는 것 사가지고 가려고 그러는데 뭐가 좋아. 생선이야 갈비야. 당신 보고 싶어. 사랑해. 다분히 감정적입니다.
여자는 과거에 의지해서 살고 남자는 미래에 이끌려 산다고 합니다. 말할 때에도 여자는 떠오른 말을 하고 남자는 마음에 먹은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고 여자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한답니다. 쉽게 말하면 허풍을 떤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자는 이해하고 받아 주어야 합니다. 서로 인정해 주고 받아줄 때 금실 좋은 부부가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부부가 서로 알고 이해하면 되는 일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기술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대체효과”라고 합니다.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과 느린 사람은 여유 있게 천천히 사는 사람이 서로 보완하면 더 효과적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만남을 위하여 남녀노소 모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는 서로가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초월하고 만남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3.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는 만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짐승은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적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파괴시키고 잡아먹으라 하십니다. 사람이 갖는 생각은 무서운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생각이라도 마음속에 한 번 붙어있으면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편견이 무엇입니까?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 또는 사실적 근거 없이 갖는 좋은 혹은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에 대한 편견(충청도 사람은 말이 느리기 때문에 행동도 느리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나다나엘의 편견이었습니다. 사람의 외모에 대한편견(광대뼈가 나온 사람은 팔자가 드세다. 그렇지 않습니다. 더 잘 살아요.).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한 편견, 장애인에 대한 편견, 학벌에 대한 편견, 심하면 종교적인 편견 이런 것 때문에 만남을 꺼리고 관계를 좋게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견 때문에 진주와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변할 수 없는 편견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이것이 고정관념이 됩니다. 어린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때 당한 상처가 남자는 다 나쁘다. 남자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이다. 그런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습니다.
결혼을 회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낚시를 하는데 큰 고기를 잡으면 물속에 고기를 놓아줍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왜 큰 고기를 물속에 놓아줍니까?
오늘은 재수가 참 없는 날이군요. 자꾸 큰 고기만 잡히니 말입니다. 우리 집 후라이팬이 작거든요. 큰 것은 후라이팬에 맞지 않아서 그래요. 이것이 고정관념입니다.
후라이팬을 큰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찻잔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담으니까 뜨겁습니다. 그래서 찻잔을 두껍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손잡이를 만들면 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선민인 나는 이방인 고넬료와 내가 왜 만나나? 그럴 수 없어 이 마음을 버렸습니다.
이유 없이 누군가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편견이고 고정관념입니다.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이 아무리 잘해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좋은 만남이나 좋은 관계 맺고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속히 고정관념을 깨뜨리세요. 사람에게 한계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문제가 아닌 사고의 한계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나는 못해. 그건 인간이 할 수 없어. 암에 걸리면 죽는 거야. 이것이 심리적 한계입니다.
우리 집안의 수명은 단명이야. 나도 일찍 죽을 거야. 우리 집안에서는 백만장자가 나온 일이 없어. 이것도 마음의 고정관념입니다. 이것을 벗어나야 행복해집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하는데 이런 문제를 출제하였답니다.
눈 바람이 몰아치던 날 밤 당신이 차를 몰고 Bus 주차장을 지나가는데 정류장에는 세 명이 추위에 떨면서 Bus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명은 병세가 심각해 보이는 노인이고 다른 한 명은 전에 내 생명을 구해준 의사입니다.
다른 한 명은 내가 꿈속에 그리던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차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은 한 명입니다.
문제는 당신은 누구를 태우겠는가? 이 문제를 놓고 대부분 사람들은 고민할 것입니다. 중병에 걸린 노인을 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생명을 구해준 의사에게 보은의 순간인데 어쩌라는 거냐. 아니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는데 절호의 찬스가 아닌가? 고민할 것입니다.
지원자 200명 중에 그 회사에 채용된 한 사람이 있는 그가 말하기를 차에서 내려 열쇠를 의사에게 주면서 이 노인을 속이 병원에 실고 가서 치유해 주라 하고 자신은 꿈에 그리던 여인과 함께 Bus를 기다리겠다.
이 얼마나 멋진 대답입니까? 실제 이렇게 해야지요. 문제는 무엇입니까? 차에서 내리는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에서 내려오라는 교훈입니다.
***{결론}***
여러분!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은 어떤 만남이었습니까?
1. 기도 중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만난 만남이었습니다.
2.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모든 것을 초월 하였습니다.
3.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는 만남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내가 좋은 만남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야 합니다. 차이를 인정하세요. 그리고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누구와도 좋은 만남과 관계를 만들어 행복하고 유익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사도행전10:17-23절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좋은 만남을 유지하시고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행10:19-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