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문장
김휼
흰 문장을 읽는다
묵음의 무게가 심장보다 무거워 주저앉은,
매번 다른 말로 읽히는 줄거리의 결말은 열려있다
어느 날 돌아보면 주어가 바뀌고 서술어에 서술어가 붙어 안긴 문장은 목적어를 내게 물어온다
기록과 기록 사이
지워야 완성이 되는 이 문장의 방식은 믿음을 요하는 신앙에 가깝다
아버지가 생략된 나에게 봄은 언제나 바깥이었다
술잔을 돌리는 손목 끝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는 떠난 자의 영혼, 어떤 부재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보면 젖기도 했다
무명천으로 동여맨 얼굴을 더듬듯, 벡비를 읽는다 울음에서 시작된 짐작들로 채워진 이 침묵의 경전은 나비가
되기 전에 읽어야 할 생의 목록일진대,
환부를 감싼 흰빛 위에 빽빽이 채워진 말
교열이 어긋난 이 비문을 누가 해독해줄까
등 돌린 괄호에 질문이 잠기고
부재속 당신은 익명의 빈칸을 서성이고 있다
김휼
2017 《열린시학》으로 등단.
목포문학상 본상 수상, 제주 4.3 평화 문학상 수상
시집『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너의 밤으로 갈까』
첫댓글 2026년 제14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신유담 시인의 ‘현무암의 폐활량’은 작품을 찾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