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샘회의 시간은 많은 어린이들이 시큰둥해하는 시간이다. 어른들도 회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는 거와 같다.
그래서 회의 시간에 선생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서 뭔가 좀 불편한 시간이다.
오늘 회의 시간에는 여름방학 평가 기간에 한 이야기 가운데 어린이들 의견을 들어보자고 했던 숲속놀이터 이야기를 안건으로 꺼냈다.
숲속놀이터는 졸업한 지율이가 졸업작품으로 만든 맑은샘학교 옷에도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맑은샘학교 하면 떠올리는 것이 숲속놀이터다. 그 숲속놀이터에는 전정일 선생님의 밧줄놀이 사부님(?)이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 밧줄놀이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시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 그네와 버마다리다. 쉬는 시간마다 그네를 타는 어린이들도 많고 버마다리 위에서 여럿이 같이 뛰어 버마다리 가운데 줄이 바닥에 닿을 만큼 내려가는 걸 보면 어린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흙날이나 해날 또 다른 쉬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인지 동네에 어느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인지 모르겠지만 숲속놀이터에 와서 그네도 타고, 버마다리에서도 재미있게 노는 모습들을 자주 본다.
그 놀이터는 메타세콰이어라는 나무 덕분이다. 너나들이에 사는 나는 메타세콰이어 덕을 많이 본다. 꼭 죽어있는 것처럼 말라 보이는 겨울을 지나 햇살이 따사롭다는 느낌이 들 때면 어김없이 가지마다 연둣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날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어느새 연둣빛이 초록빛이 되고 여름날 뜨거운 햇빛은 죄다 메타세콰이어 잎들 몫이 된다. 그러면 우리 집은 뜨거운 햇빛을 따로 막아낼 필요가 없다. 가을이면 떨어지는 메타세콰이어 잎들을 쓸어내기 바쁘지만 참 운치가 있다. 또 잎들이 떨어지면서 가지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들기도 한다. 어느새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에 눈이 쌓인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환하고 따스한 햇볕 덕분에 마루에 앉으면 낮잠이 소르르 오기도 한다.
숲속놀이터 그 이름도 메타세콰이어 덕분이고, 밧줄놀이터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메타세콰이어 덕분이다. 그런데 메타세콰이어가 아파 보인다. 이파리들도 예전같지 않고, 우리가 열심히 놀아서인지 뿌리가 보이는 것들도 있다. 또 밧줄을 맨 곳은 자라지 못해 움푹 패여 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숲속놀이터 밧줄놀이터를 가을학기 언제 풀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풀어버리면 어린이들이 힘들어할 수도 있으니 맑은샘회의에서 이야기를 해서 어린이들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했다. 그 뜻은 참 좋으나 어린이들이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안건을 선생이 내고, 선생이 이야기를 이끌다시피 해서 결론을 내는 것도 모두가 함께 한 자리에서 결론을 낸 것이니 뜻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안건은 선생이 내도 어린이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면 좋겠다.
낮공부열기가 끝나고 쉬었다가 회의를 시작한다. 사회를 보는 도현이가 혼자 회의를 이끌기 어렵다고 해서 하린이에게 옆에서 도움말을 주라고 부탁을 하니 좋다 한다. 회의가 시작되고 도현이가 안건을 내라고 해서 숲속놀이터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안건을 왜 냈는지 발표하라고 해서 선생님들과 나눈 이야기를 했다.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밧줄놀이터라 선생님들 뜻대로 밧줄놀이터를 없애기보다는 어린이들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밧줄이 묶여있는 나무들을 보면 나무가 아프고 힘들 거 같으니 밧줄을 풀고 나무들을 쉬게 한 뒤에 다시 밧줄놀이터를 만들면 좋겠다는 뜻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이들 눈치를 살폈다. 귀 기울여 듣는 어린이도 있고, 옆에 앉은 동무랑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이도 있다.
내 이야기가 끝난 뒤 사회를 보는 도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서, 어린이들은 밧줄을 풀어버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뜻을 확인한 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을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하니 그대로 어린이들 뜻을 묻는다. 많은 어린이들이 밧줄을 푸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몇몇 어린이들은 그대로 두고 싶다고 손을 든다.
다른 뜻을 가진 어린이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두 가지 의견 모두 참으로 감동스럽다.
하린이가 "사람도 힘들면 쉬어야 하는데 나무도 힘들어 보이니 쉬게 해주어야 할 거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하니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으시던 노학섭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작은 목소리로 "나무들도 안식년이 필요하지."라고 하시고, 소윤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그네를 타면서 노는데 그네가 없어지면 너무 심심할 거 같아요."하니 박경실 선생님이 "우와 솔직하게 말하는 어린이."하시면서 치켜주신다.
나무를 사람처럼 귀하게 여기는 어린이도, 나무가 힘든 걸 알겠지만 내가 즐겁게 놀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이야기하는 어린이도 정말 멋지다. 그동안 회의에서 어린이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아 늘 아쉽고 찜찜한 마음이 컸는데 오늘은 어린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가 모두 감동이다.
내 삶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를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 우리 학교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하는 교육이 참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내 스승님의 말씀을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그 기적을 날마다 발견하는 것은 내 몫인데, 게으른 선생은 그걸 이따금 찾아내는 거 같다. 잘 자라. 내 새끼들. 너희들이 보여주는 들려주는 기적을 내일 또 찾아볼게.
첫댓글 날마다 기적🥹
나무를 사람처럼 귀하게 여기는 어린이도, 나무가 힘든 걸 알겠지만 내가 즐겁게 놀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이야기하는 어린이도 정말 멋지다.
넘 공감이에요~
선생님께서 그려주신 숲놀이터 풍경 눈앞에 보이는 거 같고 낮잠이 소르르 오는 느낌 뭔지 넘 알 거 같아요
그네 없앤다는 이야기 지나가며 들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인 결과였군요~
삶으로 몸으로 아이들과 늘 함께 하시는 최명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집에서도 기적 찾아볼게요 기저귀 말고 기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