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자동차들에게서 에어컨이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그만큼 자동차의 옵션 중에서 필수적인 것이 에어컨입니다.
더운 여름날에 에어컨이 없으면 이건 뭐 죽으라는 말이죠.
에어컨은 1902년에 캐리어 박사에 의해서 최초로 개발되었습니다.
자동차용은 1939년에 팩커드(Packard)社에서 최초로 적용한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한편, 영국의 채널4는 지난 2006년에 자동차 역사상
100대 혁신 기술 중에서 에어컨 기술을 1위로 뽑은 바가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자동차 에어컨입니다.
위에서 언급 했다시피 최초의 자동차용 에어커는 1939년 팩커드에서 선보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고전적인 스타일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1939년의 미국이니까 당시만 해도 저런 스타일이 주류였습니다.
팩커드가 나름 고급 브랜드였기에
에어컨 벤트는 뒷자석에만 나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뒷자석 바닥에 저렇게 압축기가 들어가 있었네요. 모터가 따로 작동시키는 형태였네요.
저런 압축기+모터만 해도 30kg은 족히 넘을 것 처럼 보입니다.
최근의 자동차용 에어컨 압축기 모듈(압축기+풀리+클러치)이 무거워봤자
6kg 이내라는 것은 상당히 기술이 발전 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사실, 자동차용 에어컨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습니다.
GM에서 조차도 1954년에 폰티악(Pontiac)라인에 옵션으로 제공했을 정도였으니
그 전까지는 거의 넘사벽의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은 점점 발전하기 마련이고
미국이 자동차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에어컨 기술도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말까지는 미국의 자동차문화가 세계의 주류였습니다.
유럽은 2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작은 소형차 문화가 발전했고
미국은 전쟁으로 인한 경쟁 성장을 증명하듯이 자동차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차는 점점 커졌고 편의 장비 같은 것들도 조금씩 더 많아진 차량들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세계의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었었죠.
1995년까지는 자동차용 에어컨에 사용하는 냉매는 R-12였습니다. 그
런데 이 냉매의 문제점이 오존층에 구멍을 만든다는 것이어서
그 후에는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 후로 사용된 냉매는 R-134a였습니다.
하지만 이녀석은 기존에 사용하던 냉매에 비해서
냉방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파괴를 일으키지 않는 냉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사막의 여우 롬멜^^
무기도 중요하지만, 그 무기를 어떻게 운용하여 승리를 거두느냐
더 중요할 것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이 가질 수 있는 전차는 질과 양에서
영국군에 비해 열세였다.
영국군이 약 900대를 보유하고 있었던 반명 롬멜의 독일군에게
주어진 것은 350대 정도였고, 그나마 50여대는 2호 전차였다.
이런 격차는 1941년을 지나면서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군의 마틸다,
그랜트 등의 전차 등과 정면으로 전차전을 벌인다면,
3호전차와 4호 전차를 내세울 경우
전술적인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어차피 패배는 뻔한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독일군의 보급 상황과
독일군 최고 지도부의 전략적 사고가 가진 한계로 말미암아
전투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손실을 보충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롬멜을 원수로 승진시켰을 때에
그는 차라리 기갑사단 하나를 더 주었으면 했다고 한다.
사진은 37mm 포를 장착한 2호 전차이다.
그래서 롬멜로서는 전차의 소모를 줄이는 전술을 고안해 냈다.
그것은 독일군 전차의 기동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영국 전차들을
끌어낸 뒤, 대전차포로 파괴하는 전술이었다.
여기에서 88mm 포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원래 대공포로 개발된 88mm 포는 긴 사정거리와 정확도,
그리고 최대 25발까지 가능한 분당 사격 속도로 영국군 전차들을 간단히 박살내었던 터였다.
독일군 전차를 쫓던 영국군 전차들은 어디에서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88mm 포탄에 여지없이 파괴되어, 거의 전멸하기도 했다.
사진이 포병 진지에서 적의 전차를 향해 사격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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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mm 대공포..
지금은 독일 엘리베이터 명가..
2차대전시에도 명품 88mm 제조한 티센쿠루프..
^^무기사^^
독일군 1호 전차
패전 후 독일의 전차 생산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전자 생산을 두고, 농업용 트랙터를 개발하였으며
그로부터 훈련용 혹은 시험용 전투 차량의 용도로 몇 종류의 시제차들이 생산되었다.
그 중 소형 트랙터로부터 개발된 것이 1호 전차였다.
1호 전치는 A, B, C, D, F 형 모델이 있었으며, 그 중 가장 많이 생산된 것은
A형과 B형이었다. 각각 5.4톤, 6톤이었으며 7.92mm 기관총 2정을 장착하였다.
그리고 전면 장갑은 불과 13mm에 불과하였다.
다만 속도는 대강 37-40km/h로서 상당한 수준에 있었던 것이다.
옆의 보병과 견주면 1호 전차의 실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전차라고 말하기도 힘든 이 1호 전차가 전쟁 초기,
폴란드를 한 달 만에 정복하고,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을 패퇴시킨 전격전에서
이후 생산된 2호 전차와 함께 주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의 전차에 비해 턱없이 떨어지는,
그리고 보유 대수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이 전차가 전격전의 주력이었다는 사실은 아주 경이롭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피겠지만 그러나 이들 전차를 주력으로 하는
기갑 사단은 급강하 폭격기, 일명 스투카에 의해 보호 받고,
특히나 연합군이 전자를 보병 사단에 분산 편제하였던 반면
독일군은 기갑사단에 집중 편제하여 운용하였으며, 차간의 무선 통신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술 운용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 때의 독일군이라고 하면 엄청난 전차 군단의 군대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그들의 전차의 집중 운용이라는 전술적 특징 때문일 것이다.
사실 당시 독일군의 견인포들 중 많은 수는 군마에 의해 견인되었다.
^^강가에서 주운 돌이 800억^^
^^조선총독부 철거 중 발견한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