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예술분야에 관심이 있었지만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배움의 기회 또한 적어서 가히 '이해하기 힘든 언어'로 생각되었다. 특히나 우리 음악의 경우는 서양악보다도 더 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국악의 이해를 수강하면서 우리 음악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많이 듣고, 알아나가는 것 같아 기쁘다. 또한 스피커의 기계음이 아닌 직접 연주하는 생생한 음악을 부담 없는 가격에 듣게 되어 교수님께 심심한 감사를 전합니다.
학교와 국립극장은 예상외로 가까워서, 시간만 잘 맞추면 나중에도 하교하고서 연주회에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2층의 자리에 앉았다. 잘 들리지 않는 자리에 앉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잘 들리니 다행이었다.
첫 공연은 강은일씨의 해금독주 분노였다. 해금으로 자신의 분노의 색을 표출한 곡이었는데 참 묘했다. 황병기씨의 미궁을 들을 때만치 섬뜩하기도 하고, 때로는 끊어질듯 하다가도 이어지고, 감정이 마치 파도치는 느낌이었다. 해금연주는 꽃별 씨의 앨범 밖에 듣질 못해서, 해금 하면 첼로처럼 나지막하고 따뜻한 소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소리도 있구나 싶었다.
다음 곡은 서커스였는데, 해금 독주에서 조금 더 서양적인 맛이 나니까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자막은 굉장히 슬프게 나왔는데, 그닥 슬프단 느낌은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앞의 곡이 더 슬펐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곡을 들으면서 왕의 남자 생각이 많이 났다.
고향의 봄을 아시아 악기로 들었다. 아시아 악기들은 비슷한 듯하다. 역시 아시아인가, 라는 생각도 들어서 참 인상적이었는데, 음악에 조예가 깊질 못해서 소리가 섞여 들렸다. 물론 각 악기의 음색을 1번씩 따로 들려주었지만 구분해서 듣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소리가 크게 들리는 악기가 있었는데, 뭘 두들기는지 뜯고 있는지 채가 있었다. 2층이라 잘 보이지 않았던 데다가, 문제는 바로 옆의 KBS 카메라맨께서 찍는 연주회 화면은 막에 가려 다 짤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악기 연주 모습은 잘 보이지가 않아서 그냥 소리로만 만족하며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냥 추측에 의지하며 볼 수밖에 없어서 참 아쉬웠는데, 알고 봤더니 여칭이라는 몽골악기였다. 실로폰 비슷한 악기란다.
그런데, 고향의 봄의 경우는 우리 정서를 표현한 곡이고 잘 아는 곡이라 몰입이 참 많이 되었는데, 필리핀이나 베트남 민요의 경우에는 그냥 소리만 듣고 좋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를 모르고 원곡의 느낌을 모르니 당연한 결과였다. 공연장 측에서 미리 민요를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면 좋았겠다.
노래를 들으면서, 몽골과 베트남의 악기 소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 몽골은 웬 첼로를 개량해서 들고 나왔나 싶었는데 전통악기라니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더니 싶었다. 내가 현악기를 좋아하는데다 베트남의 단 보라는 현악기가 소리가 맘에 들어서 찾아보니 1줄짜리 현악기라는데 놀랐다. 더 찾아보니까, 아리랑을 그 단 1줄로 연주한 곡도 눈에 띄는데, 파가니니가 줄이 온전치 못한 바이올린을 즐겨 연주했다 하는데 파가니니가 살아 돌아온다면 어떤 얼굴을 할지가 궁금하다. 베트남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1줄의 현악기로도 다양한 감성을 표현할 줄 안다면 아마 크게 놀랄 것이다.
베트남 하면 베트남 전쟁만 떠오르고 전쟁의 잿더미만이 연상되는데, 이토록 놀랄만한 문화가 숨어있다는 데에 탄복했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 하면 6, 25를 연상하는 서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만큼 우리나라를 더더욱 국악으로 알려야 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우리나라 퓨전 국악그룹이 나왔다. 처음에 The 林 을 더 림으로 읽었더니 그림이란다. 참 센스있는 이름이다. 역시나 소리도 센스있었다. 날아갈 거 같은 소리였다.
판 프로젝트 2는 태평소와 가야금이 들어가서 더 나는 밤나무보다 더 스케일도 커지고 다채로워졌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곡이라 집에 와서 들어봐야지 하고 뒤졌는데...아쉽게도 이 곡은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앨범이 나오면 실리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나는 밤나무는 실내에서 라이브로 듣다가 mp3로 들으니까 정말 실망스러웠다. 돈 모으면 앨범을 구매해야겠다.
마지막 곡은 아시아의 연주자들과 우리 연주자들의 매기고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아시아 우리들의 향기였다. 갖가지 소리들도 귀를 즐겁게 했지만, 특별히 매기고 받는 형식이라 그런지 우리가 안주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왠지 뿌듯했다.
연주가 끝나고, 다들 박수만 치길래 너무 의아하고 한 곡 더 듣고 싶어서 앵콜을 외쳤는데
잘 전달되지 않았는지, 앵콜에 화답이 없었다. 왜 다들 앵콜을 안했는지 모르겠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고 만족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중국의 12악방이 온다던 말을 들었는데 그걸 알아봐야겠다. 아시아니까 중국 일본의 소리도 있겠거니 했는데 생각 외로 없어서 한 번 들어보고 싶다.
공연에 대해 아쉬운 점을 늘어놓자면, 막 때문에 연주자의 표정이나 악기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없었던 2층에서의 감상자의 설움이라는 측면이 있다.
또한 영어자막의 경우, 평이한 언어로 서술되어 나도 해석할 수 있는 난이도로 씌어진 것은 고무적이기까지 하며 매우 바람직하나, 아쉽게도 한국 곡의 경우 자막의 표현이 미진함을 부인할 수 없었다. 통역인의 전문적인 능력이 좀 더 요구된다 하겠다.
26일의 공연도 매우 기대가 된다. 역시 수강신청 잘 한 거 같다.
끝으로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