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의 탄생 7-Big band에서 Combo로】
마지막 편입니다
재즈의 진화 과정 중에 과도기라 할 수 있는 시기는 태평양 전쟁의 시기와 일치합니다.
즉,1941년부터 1945년까지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Big band에서 Combo 전성 시대로 무대는 크게 전환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캄보 밴드(Combo band)라고 하는 것은 작은 편성(small combination)에서 생긴 용어로 1935년경, 스윙의 대가 Benny Goodman이 오케스트라와 병행해서 트리오,콰르텟을 조직하여 댄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감상을 위한 재즈 연주를 시도한 때부터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작은 편성의 기악 그룹을 캄보 밴드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KBS 전국 노래 자랑 같은 프로의 반주를 하는 그런 악단이 캄보 밴드의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새로운 재즈,비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댄스음악이었던 재즈는 이제는 댄스와 인연을 끊게 되었는데, 댄스와 재즈가 인연을 끊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댄스가 과세의 대상이 된 데에 있습니다.
戰時 특별세의 하나로서 댄스를 할 수 있는 홀,카바레는 물론이고 로드하우스(지금의 모텔과 같은 곳)에서도 쥬크박스를 틀고 손님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음식물에 대해 30%의 세금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스윙 밴드가 직장을 잃는 것으로 작용하여서 이제 스윙밴드에게 남은 일터는 영화관 순회와 군부대 위문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밴드 멤버들에게는 매일같이 소집영장이 나왔습니다.
이 과도기에 한가지 뚜렷한 현상이 일어났는데,
가수 전성 시대의 도래입니다.
일전에 포스팅에서 설명했듯이 이 시기 이전의 가수들은 대개 유명 밴드에 전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필름이나 음반을 보면 무슨 악단과 가수 아무개 이런 식으로 표시가 되어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가수가 빨리 이름을 알리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유명 악단의 전속 가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수의 반주를 위해 악단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밴드의 여러 연주 레퍼터리 중의 하나가 가수의 노래였던 것이죠.
밴드의 무대가 좁아지자 밴드 소속 가수들이 독립을 하기 시작하는데, 맨 처음은 Frank Sinatra였습니다.(1942년 9월)
이미 악단 소속 가수로서도 큰 인기를 끌던 Frank Sinatra는 솔로로 독립한 후에도 대성공을 거두었고,이후 많은 가수들이 밴드를 벗어나 솔로로 독립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1920년대에 남부의 흑인들이 북부 도시로 대거 이주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1940년~1950년 사이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해서 대략 백만 명 이상의 흑인이 북부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농업 기계화와 전쟁으로 인한 군수산업의 활발화로 인해 북부 도시에 일손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와 달리 이 시기에는 흑인들의 수입도 많이 향상됐으므로 흑인들을 겨냥한 음반이 발매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각광을 받았던 악기는 테너색소폰이어서 테너색소폰의 황금 시대였고,피아니스트에 대한 인기도 높았습니다. 이전에는 재즈에서 피아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았는데 이 시기 이후 피아노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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