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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과 (사) 청소년과가족의좋은친구들이란 단체에서 ‘느린 학습자의 신경다양성을 통한 자립지원 방안’이란 제목으로 토론회를 한 전경 ⓒ이원무
지난 2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과 (사) 청소년과가족의좋은친구들이란 단체에서 ‘느린 학습자의 신경다양성을 통한 자립지원 방안’이란 제목으로 토론회를 했다. 어떤 세미나인지 내용을 들어보기 위해 필자를 포함해 estas와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에서 참석했다.
내용은 주로 느린 학습자 개인의 능력개발·발굴에 초점을 맞췄고 이들 앞에 놓인 사회적 차별과 장벽은 무엇인지, 이걸 철폐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긴 힘들었다. 장애의 사회적/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논의는 아니었던 거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것이라고 세바다의 한 관계자는 지적했고, 이는 estas와 세바다 구성원들이 함께 공감했던 바다,
더군다나 자폐성 장애인 등의 신경다양인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자폐증’이란 단어를 썼는데, 이것은 자폐인의 장애를 고칠 수 있는 병으로 보므로 다양성, 나아가서는 ‘신경다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경다양성이란 뇌 신경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자폐특성, ADHD, 성격장애 등을 다양성으로 포함코자 하는 인식으로, 호주의 주디 싱어(Judy Singer)가 만든 개념인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토론회는 신경다양성과 거리가 멀다 할 것이다.
당사자들도 토론에 나서긴 했지만, 주로 부모들, 교사, 정신의학계 등이 이번 토론을 주도한 게 느껴졌다. 이런 걸 보면, 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 당사자들이 만든 신경다양성에 대한 철학과 개념의 이해 없이 숟가락만 얻는 식으로 신경다양성 영역에 함부로 침범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느낌이 드는 순간 자폐성 장애 친화 발언하고 신경다양성 옹호하는 척했지만, 격심한 자폐(Profound Autism)라는 용어로 자폐성 장애인을 낙인찍기하고, 행동주의 개입을 강조하며, 장애 치료가 주요 목적인 의학실험을 우선시하는 지난번 란셋(Lancet)의 자폐 치료 행보마저 떠올랐다. 이런 행보가 앞으로 정신의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에서 재현될 게 예상돼 우려스럽다.
신경다양성의 위치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찬밥 신세인 현실은 토론회 이전에 estas와 세바다 등에서 개최했던 신경다양성 포럼 기조세션에서도 느껴졌다. 포럼 기조세션의 제목은 ‘정신적 장애인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였으며 장애인권리협약 2·3차 병합보고서 대한민국 정부심의와 관련해 estas와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가 연대해 만든 한국신경다양성연대 CRPD 보고서의 함의,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권고 관련 성과와 과제 등에 대한 발제도 포함됐다.
발제 후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로사 알다나 위원과 더인디고의 이용석 편집장이 각각 ‘신경다양성 관점의 장애인의 법적 능력 인정 및 최근 발부된 권고에 따른 후속논의로서의 CRPD 조명’과 ‘UN CRPD 이행과정에서 신경다양인의 전략적 과제’란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고, 이후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신경다양성 포럼 전경 중 일부. ⓒestas
그런데, 포럼을 주최한 우리로선, 포럼 전 기조세션 토론을 기획할 때, 국가인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측에서 앞으로 신경다양인 관련 인권 방향·정책을 어떻게 할 건지 듣고 싶어, 이들을 토론자로 섭외할 계획을 넣었다. 하지만 복지부와 인권위 측에선 토론을 안 하는 것으로 의견을 전했다.
복지부 측에선 기조세션 행사 당일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토론이 어렵단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포럼 기획단과 논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권리협약 국가심의 때, 우리는 자폐성 장애인, 신경다양인 등이 정책·사회 참여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에 알렸고, 위원회는 자폐성 장애인 등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단체의 의미 있는 참여 보장을 권고했다. 하지만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구상·공유 시 자폐인과 신경다양인 초대는 없었고, 이는 포럼 기조세션 발제 내용에도 기록됐다.
왜 자폐인을 정책 구상 등에 참여시키지 않냐고 포럼에서 자폐 당사자들 등의 볼멘소리가 나올 것을 두려워해서였을까? 그러기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이상은 토론에 나서서 신경다양인 관련 사회 참여 및 정책 방향을 얘기하는 게 두려웠을 거란 추측이 든다.
하지만 장애인권리협약 주무부서가 현재 복지부고, 국가·지자체에서 자폐인 등 장애인의 정책 참여 활성화를 독려하라는 협약 일반논평 7호도 있는 만큼 자폐성 장애인, 신경다양인의 정책·사회 참여 요구를 복지부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에 대한 방향을 토론에서 조금이나마 얘기했어야 했다.
당사자들로부터 비판받으면, 비판에 대해 다시 깊게 생각하고 당사자와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계기의 시작점도 포럼 기조세션 토론을 통해 마련해야 했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포럼 당일에 토론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걸 보며 복지부가 신경다양성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거나, 신경다양인을 차별하려는 쪽의 분위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이외에도 복지부에선 시설은 선택이고, 우리 사회에서 탈시설을 할 시 강제적 탈시설이라는 시설세력과 이에 찬동하는 부모들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터라, 탈시설이 권리라는 포럼 발제 내용을 보고서 토론에 나서길 꺼렸을 거란 추측 또한 든다.
작년 5월 17일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UN 장애인권리협약 국가인권위원회 제2·3차 독립보고서 초안에 대한 공개토론회 개최 당시 발제자, 토론자 모습(좌측), 발제내용(우측). ⓒ이원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위원장이 신경다양성 담론을 공론화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환영사를 보냈고, 관계자 2명이 포럼 당일 현장에 참석해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신경다양인의 인권 보장과 관련한 입장을 피력하는 토론 자리엔 나서지 않았다.
작년에 인권위 차원에서의 장애인권리협약 독립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탈시설과 관련해 공동생활가정이 현행처럼 거주시설에서 관리·운영되는 방식에선 주거와 서비스 통제권이 여전히 시설에 있기에 자립생활에 한계가 있다고 인권위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공동생활가정이 잘 운영되면, 탈시설 진행으로 오인될 수 있으며, 좋은 시설 만들기가 아닌 지역사회에서 모든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게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추구하는 방향임을 한 장애인단체 활동가는 피력했다.
사실 소규모 시설이라도 시설 특성이 나타나면 시설이며, 공동생활가정은 아예 시설이라고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못을 박고 있다. 그런데 시설을 편드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인권위 발언을 통해 거주시설 등 여러 관계자들 눈치를 인권위는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인권위는 입법, 사법, 행정 등 3권과 시설세력 등 독립적이어야 하기에, 시설 등 여러 관계자들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인권 원칙에 따라 분명한 소신을 밝혔어야 한다. 그러니까 탈시설을 권리라고 당시에 얘기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후 개최된 신경다양성 포럼 기조세션에서 탈시설은 권리라는 내용의 발제까지 보니, 인권의 원칙에서 탈시설을 권리라고 얘기했다가 오히려 시설세력 등으로부터 역풍을 맞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인권위는 토론을 꺼렸을 거라는 추측이 든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인권위라면, 시설세력 등 이해관계자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인권 원칙에 따라 탈시설은 권리라고 하는 등, 신경다양인의 신경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입장을 토론 자리에서 밝혔어야 했다. 그래야 했음에도, 두려워선지 토론에 나서지 못했다. 아직도 3권과 시설세력 등에 독립적이지 못한 인권위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랬다. 나의 이런 추측들과 이로 인한 기분들이 거짓이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인간 마음의 자연적 다양성을 묘사하는 자폐 예술. ⓒWikipedia
자폐나 정신장애 특성 등의 신경다양성이 오히려 시설이나 정신병원 수용 등 감금 근거인 현실에서 복지부와 인권위의 태도, 그리고 정신과 의사, 부모가 신경다양성 개념을 왜곡하며 느린 학습자의 신경다양성 관련 토론회에 나서는 모습 등을 통해 신경다양성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함을 느낀다, 이런 현실이니, 지금부터 자폐인과 신경다양인들은 신경다양성 담론 공론화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가 끝날 시점엔 공론화에 들어가야 한다.
당사자들 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나름대로 신경다양성에 대한 개념을 인권의 원칙과 우리 현실에 맞게 분명히 정립한 후, 신경다양성을 지지하는 단체들과의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요한 경우엔 부모단체와의 연대도 추진하되, 부모가 신경다양성 왜곡이나 반대 시 이에 대해 당사자들이 신경다양성 존중의 입장을 견지하는 등 때로는 갈등도 불사해야 할 것이다.
강력한 연대 속에 자폐인과 신경다양인 등이 정책 의제를 컨텐츠화해, 국가와 지자체에 요구할 토대를 마련하고, 무엇보다 장애의 사회적/인권적 모델의 토대 속에서 신경다양성이 존중받는 만큼, 이 모델을 중시하는 장애인권리협약을 자폐성 장애인과 신경다양인 당사자들 등이 제대로 알도록 국가, 민간의 역할이 중요함을 말하고 싶다.
아울러 국가, 지자체도 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을 실제 법과 정책, 제도에 녹여내기 위해 훈련 수준으로 협약을 교육하고 적용하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럴 때 신경다양성 담론의 공론화는 물론 신경다양인 정책은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의 인권 보장은 아직도 머나먼 길이며. 대한민국의 신경다양성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신경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젠 자폐인과 신경다양인 당사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 됐다. 장애와 비장애의 전통적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평등해지는 신경다양성의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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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