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명공주》
내가 공주님을 처음 뵌 곳은 바로 이 곳, 성은당이다. 생전 처음으로 궁에 들어왔을 적에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시녀들을 잃어버리고 해매이다가 마주친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난 공주님은............ 공주님은.........
참으로.........
예뻤다.
-프롤로그
01
혜명공주의 눈이 반짝인다. 이는 무엇인가 재미난 일이 생겼거나 새 손님이 왔단 말일 것이다.
그랬다. 이 궁에 새 식구가 하나 더 는 것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어마마마께오서 새 왕자를 들이셨다는 것이 진정 사실이란 말이지? "
혜명공주가 검은 구슬같이 똘망똘망한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공주의 보모 조씨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기씨, 하오니 지체지 마시옵고 어여 대비전으로 가시와요. "
조씨의 손에 이끌려 처소를 나서던 순간, 갑자기 공주가 발걸음을 멈추어 서더니 말한다.
"헌데 어찌 새 왕자를 들일 수 있지? 왕자는 왕의 아드님인 것인데 어찌 밖에서 들일 수 있어? "
조씨는 나이답지않게 총명한 공주를 보고 놀라는 눈치로 답한다.
"양자를 들인 것이옵죠. "
"양자?"
공주가 조씨의 얼굴을 바라본다.
조씨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기씨, 하오니 어서 대비전으로 가시와요. "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씨를 뒤따랐다.
5년 전 제 24대왕이자 공주의 아비 운종이 승하하였다.
운종의 비 원명왕후 정씨는 곧바로 세자를 왕위에 올렸는 데, 이 당시 정씨는 태아를 회임한 상태였고
그 다음 해에 왕자를 생산했다. 운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제종은 왕자를 자신의 친아들마냥 아끼고
보살펴주었다. 그러나 왕자가 4세가 되던 해에 그만 홍역에 걸려 죽고 만 것이었다.
이에 상심한 정씨는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종은 양자를 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아들이 첫 문안을 들이러 대비전에 와있었다.
"혜명공주 듭시었습니다."
"들어오라."
대비의 목소리가 공주의 귀를 간질였다.
왠지 힘이 있는 듯한 낯익은 묵직한 목소리였다.
방문이 열리고 들어가 본 친모의 얼굴은 생기가 돌고 있었다.
오랜만에 기운을 차린 어머니의 모습이 반가운 듯 공주의 얼굴도 한층 더 밝아졌다.
"혜명아, 어찌 이리 늦게 온 것이냐, 널 찾았건만.. "
대비는 반갑게 공주를 맞아주었다.
"송구하옵니다, 어마마마. "
공주가 말했다
"아가, 우리 아가, 앞으로는 새 왕자를 아껴주고 잘 보살펴주어야한다. 친아우처럼 잘 해주어야 해.
알겠느냐? 착한 우리 아가, 그리 해줄 수 있지? "
대비는 공주의 고사리같은 손을 꼭 잡고는 부탁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왕자를 제 친아우마냥 잘 해줄 것이옵니다."
그제서야 만족했다는 듯 대비가 공주를 끌어안았다.
어머니와 헤어진 후 대비전을 나온 공주가 궁궐 마루 턱 아래에 숨어있다.
그녀를 따르는 시녀들을 따돌릴 생각인 것이다.
얼마 후 궁궐밖에 조용해지니 살금살금 기어나온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이것이 공주가 이 답답한 궁궐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영월궁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흑흑.."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성은당에서 어린 남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어왔다.
무슨소린 고 하여 호기심 많은 공주가 성은당으로 가보니 군 차림을 한 어린 왕자가
성은당 마당에 쭈그려앉아 울고있었다.
"왜 우시오?"
공주가 왕자에게 다가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길을 잃었어요..흑흑.. "
어릴 적부터 영리했던 공주는 자신의 앞에 앉아 우는 이 어린 왕자가 누군 지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맞이한 양자로 어머니가 오랜만에 기운을 차릴 수 있게 한 고마운 왕자였다.
"울지마시오, 나는 이 곳의 지리를 잘 아오. 그러니 왕자님의 처소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오.
자, 손을 잡아요. "
공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혀 손을 내밀었다. 공주를 바라보더니 눈물을 훔치고
공주의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공주는 다시 왕자에게 물었다.
"왕자님의 처소가 어디오? "
왕자가 말했다.
"나는....나는 잘 몰라요...흑흑.. "
"울지말아요. 그럼 나의 처소로 가요. 분명 보모는 왕자님의 처소를 알 것이니 보모에게 물어봐요. "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길을 나섰다.
공주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왕자에게 묻는다.
"왕자님은 이름이 무엇이오? "
"신월이라 해요. "
신월이라 하는 왕자가 수줍은 듯 얼굴이 빨개진다.
공주가 그 모습을 보고 까르륵 웃더니 말한다.
"내 이름은 홍이라 하오. "
신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새 그들은 공주의 처소에 다달아있었다.
"아기씨!! 어디 가시었소! 얼마나 찾았는 지 아시오? 어, 와,왕자아기씨도 오시었습니까? "
조씨가 난리가 난 듯 뛰쳐나와 그들을 맞았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