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탄압 실상을 전파했다는 이유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이른바 '아람회' 사건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에 대해 법원이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6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이인재 부장판사)는 전두환 정권의 5.18 진압 실태 등을 소개하는 유인물을 유포한 혐의(계엄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중형을 선고받은 박해전(51), 황보윤식(57), 정해숙(72) 씨와 고(故) 이재권 씨의 사건을 재심한다는 결정을 지난 7월 내렸다. 이 가운데 정해숙 씨는 그 뒤 전교조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박 씨 등 4명의 기소 당시 범죄사실은 신군부의 헌정질서 파괴범행이 진행되던 때 이를 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만큼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 상 재심 사유에 해당된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박씨 등이 반국가단체를 결성했다는 범죄 사실은 특별법상 재심 대상에 해당되지 않지만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계엄법 위반죄와 합쳐져 형이 선고된 것이므로 양형 등에 고려할 심판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용공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아람회 사건'의 진상이 26년만에 법정에서 재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박 씨 등은 1980년 6월 '전두환 광주 살육작전',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 등의 제목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진압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충남 금산 지역 주민 등에게 배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983년 징역 1년6개월∼10년 선고를 확정받았고 1988년 특별사면됐다.
이들은 1981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직 군 장교 김란수 씨의 딸 아람이의 백일잔치에 모여 반국가단체를 조직, 결성했다는 혐의로도 기소되면서 '아람회 사건' 관련자들로 불리게 됐다.
한편 이들이 속한 용공조작 사건 피해자 단체인 '5.18 아람 동지회'는 이날 "불법적인 감금과 고문으로 증거를 조작해 옥고를 치렀다"며 전두환 씨를 비롯해 당시 수사 검사, 경찰 등 11명을 불법체포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 단체는 "법원의 재심 개시결정 이후 재판부가 확보한 소송 기록을 열람하는 과정에서 피고소인들의 신원과 불법 연행 일시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연합/.
[민주화 발자취] 금산 아람회 사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유언비어 유포.’ ‘제2의 김대중 내란음모 기도.’ ‘전두환 대통령 시해 모의.’ 1981년 8월 20일 대전지검은 이러한 3가지 어마어마한 범죄 혐의로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 멤버 10여명을구속 기소했다.이들 중 7명이 1심에서 징역10년~2년을 선고 받았다(82.2.11). 그러나 고등법원은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을 무죄로 판결해 5명에게 징역6년~1년6월을 선고하고 2명을 집행유예로 석방했다(82.6.19).
하지만 고법의 판결은 대법원에 의해 파기(82.9.28)됐고, 고법은 다시 징역10년~1년6월을 선고해(83.2.16) 대법원에 의해 형이 확정했다(83.6.14). 5번의 재판이 끝난 6개월 후 ‘반국가단체 구성원 5명’은 모두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83.12.23).
충남 금산출신 교사ㆍ제자사이 7명
5ㆍ18 유인물 배포 1년후 붙잡혀
현역장교엔 전두환 시해 음모혐의
DJ정부때 재심 청구했으나 방치
정해숙(48ㆍ서울 봉천국교 교사ㆍ이하 81년 당시) 황보윤식(33ㆍ대전공업고등기술학교 교사) 박해전(28ㆍ숭전대 철학과4년) 김난수(28ㆍ육군 대위) 김창근(27ㆍ천안경찰서 순경) 이재권(26ㆍ금산 신용금고 직원) 김현칠(27ㆍ대전검찰청 직원) 등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7명이 ‘아람회’의 회원이 된 사연은 기이하다.
모두 하는 일이 제각각인 이들의 공통점은 충남 금산. 금산 출신의 정해숙씨는 함석헌 장준하씨를 흠모했고 함석헌씨가 설립한 구하고등공민학교 교장과 금산여고 교사를 지냈다. 이후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고향에서 ‘씨알운동’을 하고 있었다.황보윤식(皇甫允植ㆍ현 인하대 인문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씨는 과거 금산고등학교에서 역사교사로 교편을 잡을 때 박해전 등 5명의 제자들을 만났고, 이후 이들과 함께 민족과 통일문제, 광주민주화 운동의 실상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81년 5월 17일 당시 정훈장교(국민대 학군단15기)로 충남대 대학원에 수학 중이던 김난수 대위의 집에서 딸 백일잔치가 열렸다. 주범으로 몰려 징역10년을 선고 받았던 박해전(현 인터넷신문 참말로 대표)씨의 증언.
“김 대위 딸의 이름이 ‘아람’이었다. 금산고교의 교지 이름도 ‘아람’이었다. 우리가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회합’이 필수적이었고, 사건의 피의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은그날의 백일잔치가 유일했다. 결국 ‘아람이 백일잔치 모임’이 존재하지도 않은 아람회를 결성한 회합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 최초의 공안사건으로 1달 이상의 불법구금 동안 극심한 고문으로 만들어진 아람회 사건의 핵심은 ‘5ㆍ18 유언비어 유포’와 ‘제2의김대중 내란음모 기도’. 박씨의 증언.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80년 5월 23일 천주교 신자였던 김현칠이 2장의 유인물을 가져왔다. 조선대 민주투쟁위원회가 만든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과 천주교사제단이 만든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이었다. 언론보도만 접했던 우리로서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유인물 끝에는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이 사실을 널리 알려달라’는 호소가 붙어 있었다.
정해숙선생이 직접 원지를 긁고 이재권(99년 사망)이 근무하던 신용금고 사무실에서 등사를 했다. 500여장을 만들어 금산 천안 조치원 홍성 대전 등에 있던 고교동창을 중심으로 배포했고, 이 복사물은 서울에까지 퍼졌다. 당국은 유인물의 근원지를 찾아 전국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꼬리를 잡지못했다. 1년 뒤 황보윤식 선생의 ‘이상한 발언’이 신고돼 당국이 수사에 들어갔을 당시 검거된 이재권의 집에서 남아있던 이 유인물이 발견됐다.
”아람회 사건이 ‘제2의 김대중 내란음모 기도’로 몰린 것은 정해숙씨와 박해전씨가 이른바 ‘서울의 봄’ 기간에 연금 중인 김대중씨 집을 방문한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박씨의 설명.“80년 2월13일 저녁 당시 동교동에 드나들던 안모씨의 소개로 정해숙 선생과 함께 김대중씨 집을 방문했다. 이 자리서 우리는 김대중씨로부터 시국상황을 설명듣고 그에게 기대와 공감을 표하고 나왔다. 그 사실이 1년반 뒤에 ‘남아있는 김대중씨 지지세력을 모아 내란을 모의했다’는 범죄의 근거가 된 것이었다.”딸의 백일잔치를 마련했던 김난수(현재 대전서 개인사업)씨는 현역 대위신분으로 군법회의에서 징역4년을 선고 받았다. 그의 죄목에는 ‘전두환대통령 시해 모의’라는 대목이 추가됐다.
황보윤식씨의 설명. “당시 김 대위는 육본의 군사전문요원 양성 시험에 합격해 군장학금으로80년 2월 25일부터 충남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사석에서 계엄군의 광주민주화항쟁 폭력적 진압에 대해 울분을 토했고 ‘전두환일당을 용서할 수 없다. 진급해서 청와대에 갈 기회가 오면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말들이 ‘대통령 시해 기도’로 변했고 ‘대통령을 저격하려고 숨겨놓은 권총을 내놓아라’는 수사관들의 추궁에 그 역시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했다.”한편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은 2000년 4월26일 재심을 청구했다. 이들은2001년 10월 16일에 이어 2003년 11월 19일 서울고등법원에 신속한 재판을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고, 지난 19일 서울고등법원에 의견서를 내어 조속한 재판 진행을 촉구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재심 청구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청구인 18명)은 2003년 1월21일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청구인에 포함되지 않았던 김 전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재심을 청구, 11월 17일 재심개시를 결정했다.또 81년 7월 부산지역 용공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부림 사건’(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무료변론을 맡았음)의 경우 2003년 9월18일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첫댓글5월 18일 서울에서 비행기로 공수부대가 수송되어 광주시민 2만명을 사살하였다고 전국 각대학교 벽보에 붙어있었던 유언비어 대자보 내용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그 유언비어 맹신을 강요하기 전에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확인해 주세요. 아람회가 퍼뜨린 유언비어들을 신뢰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아람회 유언비어들을 모두 이리로 퍼와서 하나하나 확인해 봅시다. 도대체 미개인들의 뇌구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기에 그런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들을 맹신하는 것인지 저도 궁금하니까요.
조선대 민주투쟁위원회가 만든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이 근거 없는 유언비어일 때는 명예훼손입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수많은 보수우익 논객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옥고를 치루고 있지요?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미친 놈이거나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녀석입니다.
첫댓글 5월 18일 서울에서 비행기로 공수부대가 수송되어 광주시민 2만명을 사살하였다고 전국 각대학교 벽보에 붙어있었던 유언비어 대자보 내용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그 유언비어 맹신을 강요하기 전에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확인해 주세요. 아람회가 퍼뜨린 유언비어들을 신뢰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아람회 유언비어들을 모두 이리로 퍼와서 하나하나 확인해 봅시다. 도대체 미개인들의 뇌구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기에 그런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들을 맹신하는 것인지 저도 궁금하니까요.
조선대 민주투쟁위원회가 만든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이 근거 없는 유언비어일 때는 명예훼손입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수많은 보수우익 논객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옥고를 치루고 있지요?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미친 놈이거나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녀석입니다.
님이 의학공부를 하실 때 의학 이론에 반드시 출처가 있을 것입니다. 조선대 민주투쟁위원회가 만든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이란 조선대 미개인들이 꾸며낸 픽션 소설인가요? 아니면 신빙성 있는 자료 출처가 있는 문서였던가요?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이내용은 법원 판결 내용입니다. 저는 역사학도님처럼 실체가 불분명한 기록은 절대 올리지 않습니다.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이란 것이 있었습니까? 그런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대답도 못하실 거라면 저것을 왜 올리셨습니까?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이란 것이 있었습니까?
이 사건도 역시 김대중 맹신도들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은 한심한 작자의 넉두리 글
지금의 법조계는 모조리 좌익놈들이 잡고있어서 믿을 게 하나도 못된다. 대통령 후보의 정당한 의혹을 제기한(지만원 박사님) 사람을 형무소에 가둬놓고
윗글을 꼼꼼히 읽어보면 좌파가 정권을 잡은 시대의 법조게 판결인지, 군사정권 시절의 법원 판결인지 답이 나오는데요 ㅎㅎ
2003년 1월21일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맨아래에서 3번째줄에 적혀있잖아요
이명박이 무슨 힘이 있나 뒤에는 다 김대중 억적놈이 조정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