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리노(Nazareno Cruz y el lobo)
최용현(수필가)
아르헨티나의 어느 산골,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소떼를 몰고 떠난 남편과 여섯 아들이 폭풍우 속에서 강을 건너다가 강물에 휩쓸려 모두 죽는다. 일곱 번째 아들은 나중에 늑대 인간이 된다는 전설 때문에, 그의 아내는 여자아이를 낳고 싶어 했지만 또 남자아이를 낳는다.
20년 후, 나자리노(후안 호세 카메로 扮)는 마을 축제에서 만난 아리따운 금발처녀 그리셀다(마리아 마갈리 扮)에게 첫눈에 반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자 사탄이 나자리노 앞에 나타나 ‘네가 사랑에 빠지면 피가 끓어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셀다와의 사랑을 단념한다면 그 저주를 풀어주고 금은보화와 부귀영화를 안겨주겠다.’고 제의한다.
나자리노가 사랑을 선택하자, 사탄은 의아해하면서 ‘도대체 사랑이 뭐지?’ 하고 뇌까리면서 돌아선다. 결국 나자리노는 보름날 밤 늑대로 변한다. 늑대가 된 나자리노는 마을의 목장을 습격하여 목동을 죽이게 되고, 그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마을사람들에게 쫓기는 늑대가 나자리노임을 알고 뒤쫓아 가던 그리셀다가 마을사람들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뒤이어 나자리노도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이때 사탄은 죽어가는 나자리노에게 지하세계를 보여주며 자신의 구원을 부탁한다.
“나자리노! 천국에 가서 하느님을 만나거든 내 부탁을 잊지 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도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나자리노는 사랑하는 그리셀다와 함께 천국으로 올라간다.
이 작품은 일곱 번째로 태어난 아들이 성장하여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탄의 저주를 받아 보름달이 떠오를 때 늑대로 변한다는 남미의 토속전설을 영상화한 아르헨티나 영화이다. 어딘지 모르게 전에 우리나라 TV에서 방영하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구미호’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미국에서 상영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개봉관의 손익분기점이 관객 5~7만 명이던 1976년 당시,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서울관객 31만 명, 부산관객 17만 명을 기록하는 등 할리우드의 대작 영화들을 제치고 그해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보던 20대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 대사도, 영상도 눈에 거슬리는 곳이 참 많다. 배우들의 연기나 조명, 편집 등 전체적인 연출도 영화의 명성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다. 우선 화면이 너무 어두운 탓에 늑대 영화인데도 늑대를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다. 물론 늑대에게 연기(?)를 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또, 남녀 주인공의 사랑 역시 뜬금이 없다. 최소한의 로맨스 과정도 없이 만나자마자 바로 육체관계에 돌입하는 것은 남미의 당시 시대상황으로 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 둘이 키스하는 장면도 여배우가 자꾸 입을 크게 벌리는 바람에 영 어색해 보인다. 6,70년대의 우리나라 멜로영화도 이 정도는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자리노’가 세계적으로 큰 각광을 받은 것은 메가톤급 위력을 가진 주제곡 덕분이다. 남녀 주인공이 만날 때 흘러나오는 주제곡은 1980년대 중반까지 여러 업체의 CF를 비롯하여 TV 채널조정시간의 메인음악 및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을 휩쓸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마이클 홈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불렀고, 우리나라의 인기 듀엣인 클론은 ‘사랑과 영혼’이라는 자작곡에 이 멜로디를 삽입하여 크게 재미를 보기도 했다. 영화 OST와 함께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곡도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주제곡 ‘When a child is born’의 앞부분 가사를 번역문과 함께 올려본다.
A ray of hope flickers in the sky
A tiny star lights up way up high
All across the land dawns a brand new morn
This comes to pass When a child is born
The silent fish sails the seven seas
The winds of change whisper in the trees
And the words of doubt crumble, toss and turn
This comes to pass when a child is born
하늘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작은 별들도 저 높은 곳에서 빛나며
온 세상에 새로운 아침이 밝아 와요
이것은 아이가 태어날 때를 의미하지요
침묵의 물고기가 일곱 바다를 항해하고
변화의 바람은 나무 사이에서 속삭이며
의심의 말은 무너지고 던지고 돌지요
이것은 아이가 태어날 때를 의미하지요
이 곡은 은은하게 흐르는 50초 가량의 강한 호소력을 지닌 단순한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좀 낯선 느낌의 아르헨티나 영화를 더욱 신비로우면서도 친근감 있게 포장해주는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러가면 영화는 잊히겠지만 이 곡은 불후의 영화음악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사탄이 나자리노에게 하나님을 만나거든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떠올리게 한다. 남미의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그 안에 하나님과 사탄을 끼워 넣은 것은 혹시 기독교를 전도(傳道)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첫댓글 저도 첫사랑과 이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OST가 영화의 조잡성을 캄프라치 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동감입니다. 다시 보니 OST 빼놓으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영화네요.
영화는 보지 못했어도, 음악은 지금도 생생 합니다.
음악으로 충분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