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2. 큐티
마태복음 21:23 ~ 32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관찰 :
1) 종교지도자들의 의도된 질문
- 23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 무화과 나무를 통해 기도의 스케일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들어가 가르치시는 중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서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사역을 하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기득권을 소유한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권세가 있는 것은 맞는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권세의 근거를 대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논점의 핵심을 바로 잡아 주시는 예수님
- 24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 25절a.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지를 너무나 잘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와 사역도 부정하던 이들이기에 이들의 질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묻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꺼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묻고 있지만, 우리가 준 권위가 아닌데 어디서 얼쩡거리냐는 공격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의 공격에 대해 예수님은 질문의 핵심을 바꾸어서 본질적인 질문으로 끌고 가고 계십니다. 즉,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라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대답하면 예수님도 자신의 권위를 설명하시겠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무엇이라 대답하는가를 보시겠다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의 논점은 예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에 있었던 것이기에 이렇듯 어긋나 있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3) 비겁한 자들
- 25절b.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 26절.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 27절.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라 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늘로부터라고 한다면 세례 요한의 말, 즉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한 그 모든 말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고 한다면 그를 선지자로 여기는 백성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참 비겁한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바를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들, 백성들의 반응을 먼저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믿는 바가 거짓된 것을 알았기에 그것을 말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백성을 핑계로 대어 대답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대답 => 두 아들의 비유
- 28절.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는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 29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 30절.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 31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은 하시지 않지만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의 안타까움이 녹아나는 부분입니다.
-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맏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을 돕겠다고 말은 해놓고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은 싫다고 했다가 뉘우치고 돌아가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이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자냐하는 비유였습니다.
-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둘째라고 대답합니다. 당연한 대답이고, 마땅한 대답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에 대해서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임을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바로 세리와 창녀와 같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는 이들이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마저 맡고 있었고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책임마저 맡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고 해놓고 순종하지 않는 맏아들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 32절. “요한의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혀 믿지 아니하였도다”
- 요한이 의의 도로 백성들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지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회개도 없었던 것입니다.
- 요한이 의의 도로 백성들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을 때, 세리와 창녀들은 듣고 믿어서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회를 걷어 차버리는 자들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을 먼저 받은 자들이 먼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회개하는 자들이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행위는 죄가 맞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과 몸을 굴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일지라도 회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나 백성들의 장로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운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2) 맏아들은 듬직해 보이는 듯한 대답을 했지만 행위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불순종의 대답을 했지만 뉘우치고 돌아와 회개함으로 아버지의 일에 동참했습니다. 이스라엘일지라도 그렇게 취급되는 것인데,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자는 말만 번드르르 하는 존재가 아니라, 행위가 따르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주님이 찾으시는 것입니다.
적용 :
1) 오늘 본문과 어제의 본문, 사실은 오늘의 이 본문으로부터 이어지는 본문들은 먼저 된 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주의 경고들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두려울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이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 모두를 대상을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신학적인 논쟁을 두려워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맞짱 떠서 부숴버리십니다.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하는 본문들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과정이었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주님이 가신 이 길을 나도 갈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상황에서 위축된 나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도 주님이 가신 그 당당한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솔직히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그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내 짐은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은혜가 임할 것을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통합시키고 통일 시킨다는 것이 어렵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쉽고 쉽습니다. 내가 죽으면 그렇게 됩니다. 오늘도 나를 죽이고 예수가 사는,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좇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3)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고 있습니다. 다음주 디브리핑을 통해서 계기가 일어나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