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 시대에서도 오늘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고, 실상 우리들이 잘 아는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여호수아, 룻, 다윗, 솔로몬, 이사야, 엘리야,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 등을 위시해서 생각보다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믿음으로 인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 3장에서 증거되어 있는 구주 예수님의 메시야 계보에서는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들 중에서 아담에 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한 사실은 아담 또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으로 실제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구원 역사의 계보에 대표적으로 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도 당연히 구원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가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 외에는 다른 길과 방법들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확신하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 모두에 있어서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든 인생들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 졌고 단절되었으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고, 그러한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면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올려 드린 희생 제사, 다양한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회막, 제사장, 선지자 등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래 본문에서 부각되어 있는 성전이야 말로 요한복음 2장 20~21절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라고 증거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오실 메시야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와 상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게다가 그 성전에서의 피 제사, 희생 제물, 지성소, 휘장 등과 같이 오실 메시야의 대한 여러 모양의 예표와 상징들이 함께 더해지고 준비되며 복합된 곳이 성전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잘 통찰해 보면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성전에서 경배하고 예배를 드리며 멀리서도 성전을 사모하고 성소를 향해서 기도하고 송축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로 치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는 것과 근본적,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적, 세상적, 상식적, 과학적, 합리적, 논리적으로 보면 구약 시대에서의 그러한 구주 예수님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연결되고 직결되며 효력이 나타나고 실제가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납득하기 힘들고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미미한 상관관계로 보이며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 되고 소설 같아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우리들이 알고 있고 파악하고 있으며 생각하는 것보다도, 진정 이 세상의 그 어떤 상식과 과학과 논리들보다도, 심지어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보다도 더욱 더 크고 놀라우며 강력하고 초월적이면서도 실제적인 것이고 경험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와 진노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은 우리의 이성을 넘고 모든 현실을 넘으며 마치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까지 얼마든지 뛰어 넘을 정도로 강력하고 초월적이며 실제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위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고..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러한 구원의 일들에 관련된 모든 사안과 역사들마다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시편134: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18일(토)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