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명' 공격수, 알고 보니 '유명' 수비수 ◆
레프트백, 레프트윙,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 포워드 등 거의 전 포지션을 두루 소화해 내는 멀티 플레이어, 파트리스 에브라. 스피드와 체력을 살린 날카로운 오버래핑, 정확한 왼발 크로스가 강점이다. 종종 수비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불타오르는 투지로 거침없이 작렬시키는 태클과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성실한 플레이는 수비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왜소한 체격 때문에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는 것 정도가 옥에티랄까.
"날 제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널 죽일거야. 다리를 부러뜨리고 셔츠도 찢어 버릴 거야. 웃음거리가 되려고 이 자리까지 온 건 아니거든." - 믿거나 말거나, 일일훈련을 시작하기 전 에브라는 호날두한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고 한다. 동료한테 하는 말치곤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장면은 사실 연출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호날두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일 수도.
에브라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세네갈 대사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이 프랑스로 건너올 당시 에브라의 나이는 불과 3살. 세계적인 공격수 티에리 앙리가 살았던 레쥘리의 높은 콘크리트 빌딩들 속에서 자란 덕분(?)인지, 파리 생제르맹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할 당시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그러나 파리 생재르맹에서는 리저브팀에 가끔 이름을 올리는 것이 한계였고, 프로 계약을 체결하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에브라와 앙리의 고향, 레쥘리.
다행히도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세리에-C1(이탈리아 3부 리그격)의 마르살라와 계약하면서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마르살라에서 27경기에 출장해 6골을 기록한 에브라는 지역 서포터들로부터 '검은 가젤(The Black Gazzel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시즌이 끝나고 라치오, AS 로마 등 세리에-A의 빅 클럽들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에이전트와의 불화 끝에 모든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1999년에는 결국 세리에-B의 몬차로 이적했으나 감독의 관심을 끌지 못한 탓에 출장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1년 뒤 에브라는 OGC 니스(프랑스 리그2)로 이적하며 프랑스로 돌아왔다. 처음 몇 경기에서는 자신의 본직인 센터포워드로 플레이했으나,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한 시합에서 종료 15분을 남기고 -단지 왼발을 잘 쓴다는 이유로- 생소한 보직인 레프트백을 소화해 내야했다. 운명의 신이 여기서 강림할 줄이야. 에브라가 생각보다 훌륭한 모습을 보이자 니스의 산드로 살비오니 감독은 에브라를 계속 레프트백으로 출장시키는 실험을 감행했다.

헬레스 베로나 시절의 살비오니 감독.
현재는 AC 루메짜네(세리에-C2)를 지도하며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실험 재료(?) 에브라는 수비수로 기용되는 것에 불만을 느꼈지만 연구 결과만큼은 노벨상을 타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 자신이 제 2의 앙리라 착각하며 살았던 에브라의 유전자엔 리자라쥐의 혼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니스는 간신히 2부 리그에서 생존하는데 머물렀지만, 에브라는 프랑스 2부 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이름을 날리며 1부 리그의 명문팀 AS 모나코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AS 모나코 시절 절정의 기량을 뽐냈던 '수비수' 에브라.
2004년 모나코는 데샹의 지휘 아래 파죽지세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한다. 그 중심에는 베르나르디, 지베, 로드리게즈와 함께 강력한 포백 라인을 구축했던 에브라가 빛나고 있었다. 모나코의 행진은 결승전에서 무리뇨가 지휘하던 FC 포르투에 패하며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에브라는 2005년 불과 23세의 어린 나이에 주장으로 승격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에브라가 대장이 되자 모나코의 성적은 끝도 없이 추락하고 만다. 모나코는 챔피언스리그 예선 라운드에서 탈락하더니 리그 1에서도 졸전을 거듭하며 하위권에 머물렀다.
◆ 다카르의 흑가젤, 잉글랜드를 정복하다 ◆
홀로 빛나는 별은 세상을 환하게 밝히기는커녕 되려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법. 프랑스 대표팀에서 중용받지 못했던 에브라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엔트리에 포함되기 위해선 좀 더 뛰어난 동료들 속에서 마음껏 기량을 뽐낼 수 있어야 했다. 2004년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 후 아스날, 리버풀, 인터 밀란 등 대형 구단들로부터 끊임없이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었던 에브라는 결국 2006년 1월 10일 맨체스터 Utd 유니폼을 입게된다.
"리버풀과 아스날, 인터 밀란 등도 훌륭한 팀이다. 그러나 맨체스터 Utd라면 또 얘기가 한참 다르다. 맨체스터 Utd만이 내가 항상 꿈꿔왔던 팀이다." - 맨체스터 Utd 입단 당시 에브라

맨체스터 Utd 입단식에서 퍼거슨 감독과 함께.
"우리는 그동안 에브라를 주시해 왔다. 그는 매 시즌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빠르고 훌륭한 축구 선수이자 모나코의 주장이다." - 에브라 영입을 확정지은 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
주전 레프트백 에인세의 장기부상이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퍼거슨 감독에겐 에브라 만큼 약효가 있어 보이는 두통약도 없었다. 그러나 에브라는 데뷔 시즌 14경기를 소화해 내면서 잉글랜드 무대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맨체스터 Utd의 서포터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에인세가 부상에서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불행한 데뷔전을 치렀다." - 2006년 1월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전(1-3 패)에서 맨체스터 Utd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를 치른 에브라, 전반만을 소화한 채 교체아웃 당하며

1981년생 동갑내기인 에브라와 박지성은 팀 내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옆집에 사는 이 개구쟁이 친구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위닝 일레븐을 즐긴다고 한다.
에브라는 2006/7 시즌 중반부터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본직(?)인 레프트백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음은 물론, 부상당한 주장 게리 네빌을 대신해 라이트백으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붙박이 주전이었던 에인세가 부상에서 회복하고도 벤치를 지켜야 하는 민망한 상황을 맞았을 정도로 두드러진 활약이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프로 계약조차 하지 못했던 떠돌이 소년이 파리 생제르맹 역대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던 '레전드' 에인세와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음에도 2006/7 시즌, 36경기에 출전한 에브라는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에버튼, 챔피언스리그에서는 AS로마를 상대로 득점을 뽑아내기도 했다. 결국 에브라는 PFA(잉글랜드 프로 축구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팀에 뽑히는 영예를 안았으며, 맨체스터 Utd도 3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감격을 맞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 너무도 분했다. 내가 훌륭한 선수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것이 이번 시즌의 활약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 2006/7 시즌 PFA 선정 올해의 팀에 포함된 소감을 밝히며
이제서야 '진정한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에브라에게도 한 가지 컴플렉스가 있다. 바로 프랑스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8월 18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최근 들어 연락이 끊긴 상태. 월드컵 무대에 대한 염원을 담아 맨체스터 Utd로 이적했지만 정작 독일 월드컵엔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나 에브라의 벽을 넘지 못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 에인세가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보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곧 에브라의 빠른 오버래핑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걸.

피온겜하러 들어가다가 이글봐서 올리네여 ..ㅋㅋ
에브라 박지성 짱이다!!
첫댓글 박지성의 또다른 경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