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The Tin Drum)
최용현(수필가)
시작부터 기괴하다. 한 촌부(村婦)가 감자밭에 앉아서 감자를 구워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남자가 숨겨달라고 하자, 그녀는 자신의 4겹치마 속에 그 남자를 숨겨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 남자가 바지 앞 춤을 여미면서 나온다. 그렇게(?) 잉태해서 낳은 아이가 주인공의 엄마 아그네스(안젤라 빙클러 扮)이다.
1924년에 태어난 주인공 오스카(데이빗 베넨트 扮)는 워낙 조숙해서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태어난 경위를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오스카에게는 아버지가 둘 있다. 식품점을 운영하는 독일인 친아버지 알프레드(마리오 아도프 扮)와 우체국에 근무하는 폴란드인 양아버지 얀(다니엘 올브리히스키 扮)이다. 엄마와 두 아버지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오스카가 세 살 되던 날, 얀은 오스카에게 양철북을 선물한다. 이때부터 오스카는 양철북을 분신처럼 메고 다니는데, 누가 양철북을 뺏으려고 하면 괴성을 지른다. 그러면 근처에 있는 유리가 깨지거나 박살이 난다. 어른들은 모였다 하면 술판을 벌이고 노름을 하고, 얀은 틈만 나면 엄마를 더듬으며 섹스를 하려고 한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오스카는 더 이상 자라기를 거부하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성장을 멈춘다.
오스카는 유리를 깨뜨리거나 양철북을 치며 세상일에 개입한다. 엄마가 목요일마다 모텔에서 얀과 정사(情事)를 벌이는 것을 알게 되자, 오스카는 맞은편 건물에 올라가 괴성을 질러 거리의 유리창을 모두 박살낸다. 또 나치가 큰 행사를 벌이자 오스카는 그 옆에서 양철북을 치며 엄숙한 나치행사장을 무도회장으로 바꾸어놓는다.
아버지는 나치당원이 되어 기고만장하고, 엄마는 얀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살한다. 얀은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우체국을 지키다가 독일군에게 잡혀 처형된다. 오스카와 동갑인 마리아(카타리나 살바흐 扮)가 가정부로 집에 들어온다. 마리아는 아이 체구의 오스카와 통정(通情)을 하더니 아버지 알프레드와도 정사를 벌인다.
독일군이 패퇴하고 소련군이 집에 들이닥치자, 알프레드는 나치 배지를 꿀꺽 삼키려다가 사살되고 만다. 알프레드의 장례식 날, 마리아가 낳은 아이가 던진 돌에 맞아 쓰러진 오스카는 멈춰있던 신체적 성장을 다시 하게 된다. 이삿짐을 꾸린 마리아가 오스카와 아이를 데리고 단치히를 떠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1959년에 발표한 소설 ‘양철북’은 20년 후인 1979년 볼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다시 20년 후인 1999년 소설 ‘양철북’은 20세기의 집단광기인 나치즘의 과오를 환기시키고 한 가족의 허물어진 삶을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신병원에 수감된 오스카가 1954년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아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1부는 어린 오스카와 엄마, 그리고 두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2부는 소년이 된 오스카 부모들의 죽음과 새 가족들이 단치히를 떠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3부는 뒤셀도르프에 도착한 성년 오스카가 정신병원에 수감될 때까지의 우여곡절을 담은 이야기이다.
영화 ‘양철북’은 소설의 1부와 2부만 다루고 있다. 항구도시 단치히를 배경으로 주인공 오스카의 가족들이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기를 맞아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흥망사를 그려내고 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이지만 내용이 워낙 그로테스크해서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영화의 저류를 흐르는 성(性)은 대부분 비정상적인 관계라서 그런지 상당히 외설적이고 자극적이다. 사춘기가 된 오스카는 엄마 아그네스를 통해서 어른들의 성을 몰래 엿본다. 아그네스가 죽고 나서 오스카와 동갑인 마리아가 집안일도 할 겸 오스카를 돌보러 오자, 오스카는 마리아를 좋아하게 되고 성적인 호기심을 드러낸다. 마리아가 체구가 작은 오스카와 나누는 정사는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괴한 장면이다.
얼마 후, 마리아는 아버지 알프레드와 소파에서 질펀한 정사를 벌인다. 결국 마리아가 임신을 하는데,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의 아이일까? 오스카의 아이일까, 아니면 아버지의 아이일까? 이에 대해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사실은 오스카의 아버지도 알프레드인지 얀인지 명확하지 않은데 말이다. 이렇듯 오스카 가족들의 혈연관계는 혼란스럽다.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에겐 세 남자가 있었다. 독일인 남편 알프레드와 폴란드인 정부(情夫) 얀, 그리고 양철북을 파는 잡화점 주인 유대인 지그문트이다. 아그네스를 짝사랑하던 지그문트는 오스카를 데리고 영국 런던에 가서 살자고 하는데 아그네스가 거절했었다. 아그네스는 좀 다르지만, 국적이 다른 세 남자 모두 나치의 광풍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들의 죽음은 대부분 오스카가 그 단초를 제공한다. 얀의 아이를 잉태한 아그네스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자살을 택한 것도 오스카가 장애아들이기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지그문트의 죽음은 유대인 학대를 예견한 자살이지만, 얀이 우체국을 지키다가 잡혀서 나치에게 처형되는 것과 알프레드가 나치 배지 때문에 소련군에게 사살되는 것은 오스카가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이 영화는 오스카라는 비정상적인 아이의 가족사를 통해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한 가족을 풍비박산시키는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나치가 태동을 시작할 무렵인 세 살에 성장을 멈춘 오스카가 나치즘의 몰락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스무 살에 성장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영화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막을 내린다. 오스카의 몸이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그의 조국인 독일도 이제 정상적인 궤도를 운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스카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생을 데리고 마리아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은 독일도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꼬맹이의 연기만 어렴풋 합니다만!ㅎㅎㅎ
황당하고 맹랑한 꼬마가 열연을 했지요.
당시에는 충격적이었겠습니다
네, 나치즘의 폐해를 그렇게 형상화 할줄을 어찌 상상이나...
가히 노벨 문학상을 받을만한 작품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