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8일 (토)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있는
아차산 우중산행!
농심님과 함께~
"근교산행의 묘미"는
시간적인 여유와 이동시 대중교통의 편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편안하게~
하산주 한잔도 곁들일 수 있는
일석이조 산행입니다.
ㅎㅎ
*산행코스:
광나루역-생태공원-만남의 광장-아차산성길-
아차산성-아차산 정상-아차산 3보루-
아차산 4보루-긴고랑-아차산둘레길-
기원정사-아차산역
Post
아차산 정상에서~
들머리:
오전 10시 33분...
생태공원
사랑의 손 조각상
아차산 종합안내도
(만남의 광장)
어차산성 가는 이정목
아차산성 출토유물 안내판
아차산성
(사적 234호)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단성 또는 아차성이다.
<삼국사기>에 이 성을 286년(백제 책계왕 28)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396년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이 성을 빼앗았으며, 475년에는 백제 개로왕이
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1997년과 1999년에 성벽과 성 내부에 대한
조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성벽은 높이 7m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안팎 모두 잘 다듬은 돌로 쌓았다.
성벽 바깥쪽 기저부는 별도의 보강성벽을 쌓은 후
흙으로 다져서 덮었다.
해발 203m의 북쪽 모서리 가장 높은 곳에는
장대가 설치되어 있고,
동. 서. 남쪽에 문지가 남아 있다.
계단상 지형을 이루고 있는 성 내부에서
여러 기의 건물터와 연못, 우물,
배수구 등이 확인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아차산성은
백제가 수도 한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으나
나중에 고구려와 신라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과 시설물들은
7세기 이후 신라가 축조한 것이다.
이 산성은 한강유력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아차산성
고구려의 기상이 서린
아차산과 고구려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해발 300m 남짓 되는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구리와 인근 시민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며
40분 정도의 등산로를 오르면
한강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이 일대에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루 20여 개가 있는데, 발굴조사 결과
고구려 군사유적으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4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온달석탑,
대성암들이 자리 잡고 있다.
-구리시-
아차산일대보루군 안내판
아차산 줄기는 용마산과 망우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이 전체를 아차산이라 하였다.
아차산 능선에는 작은 봉우리마다
'보루'라고 불리는 성곽이 있다.
보루는 흔히 300m 이하의 작은 성곽을
가리키는데,군사적• 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하는
일반 성곽과 달리 주로 교통로나 요충지를
감시하는 기능을 하였다.
몇 개의 보루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들은
장수왕 63년 475에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후 만들어져 양원왕 7년 551에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 밀려
물러날 때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한강 유역은 인구와 물자가 풍부하고
중국으로 가는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와 백제,신라 모두 중요하게 여겼다.
아차산 보루군은 한강 유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고 동쪽으로 왕숙천,
서쪽으로 중랑천 변의 남-북 교통로를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있다.
아차산에 흩어져 있는
약 20여 개의 보루 중 아차산3보루,
아차산4보루, 시루봉보루, 홍련봉1보루,
홍련봉2보루, 용마산2보루를 발굴 조사 한 결과.
고구려 보루는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기둥을
깊게 박아 판축공법으로 성벽 안쪽의 토축부를
먼저 만들고, 돌을 덧대어 외벽을 석축으로
마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백제나 신라, 가야 성곽과 다른
독특한 공법이다.
'토심석축공법'으로 불리는 이 공법을 통해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하여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인 고구려의 발달된
토목 기술을 알 수 있다.
전망데크
(구리시 방향)
아차산 정상으로 가는 암릉구간 등로
오전 11시 22분...
"구리시와 한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쉼터"에서~
막걸리 한잔하기!
ㅎㅎ
국가지점번호
다 사
6498
5171
서울둘레길
위치번호
5-6
이정목
전망데크
(서울 방향)
아차산 정상 가는 등로에서~
(금계국 군락지)
금계국
금계국의 대표적인 꽃말은
"항상 즐거움"
이라고 합니다.
밝고 화사한 꽃이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오후 12시 13분...
아차산 정상 도착!
아차산 정상에서~
(해발 295.7m)
아차산은
주변의 용마봉 해발348m,
망우현 해발282m을
함께 부르는 표현이었지만,
요즘은
주변의 산지와 구분하여
아차산,용마산,망우산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여
이곳 아차산 3보루 지점을
'아차산 정상' 이라 말하기도 한다.
아차산 3보루는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차산일댜보루군 17개 중 한 개이며
일부 구역이 발굴조사되었을 뿐
대부분 조사되지 않았다.
지면 아래에는
삼국시대 군사들의 생활시설인
여러 개의 건물지와 온돌, 배수로와
석축 성벽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아차산 3보루
둘레 450미터, 면적 6500평방미터 크기로
주변 보루 중 규모가 가장 크지만
일부 구역만 발굴 조사되었다.
지형상 평지와 비탈면 경계지점에
석축 성벽을 쌓고
성벽 안쪽에 생활시설을 만들었다.
건물지,배수시설,저장고,
단야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다른 보루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디딜방아의 볼씨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어,
아차산3보루가 아차산 일대 병사들의
식량지원처로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접시,몸통긴항아리 등 토기 약 400개,
무기,마구,농기구 등 철기도 약 185개 확인되었다.
아차산 4보루
고구려는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한강유역에 20여 개의 보루를 만들어
남진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하였다.
아차산 일대의 보루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 63년) 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사용되었다.
아차산4 보루도 토기 형태와 목탄의 연대측정 결과,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차산4보루는
크게 성벽과 건물터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 249미터의 성벽은,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바깥 면을 돌로 쌓음과
동시에 안쪽 경사면을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져 메우는 식으로 만들었고,
외부 감시와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유리한 곳에 치를 설치하였다.
독특한 구조의 남쪽 이중치는 출입구로 추정되며,
고구려 성 쌓기의 전형인
퇴물림 들여쌓기 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
성벽 안쪽의 건물터는
병사들의 생활에 필요한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항아리• 명문접시•시루 등의 그릇과
투구•찰갑•창•도끼•화살촉 등의 무기,
낫•쇠스랑 등의 농기구,
재갈•등자와 같은 말갖춤이 발견되었다.
"아차산 4보루"와 이어진 등로
저수조
산성이나 보루에서는
물을 저장하기 위한 저수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적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식수를 확보해 두는 것은
군사들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곳 아차산4보루에서도
저수조 2개가 발견되었다.
깊이 3.5미터 정도 수직으로 바닥을 파내고
바닥과 벽면에는 입자가 고운 회색 뻘흙을 발라
방수층을 만들었다.
지금은 저수조를 메우고 그 자리에
흙을 돋우어 위치를 표시하였다.
"긴고랑"으로 가는 이정목
긴고랑 가는 계단길
쉼터와 운동 놀이터
아차산 둘레길
용마산
(해발 348m)
아차산 둘레길 이용안내
기원정사 위 휴게데크~뻥튀기공원
2.6km는 사유지 구간으로
데크길 조성 등 광진구청에서
임의로 시설물을 설치할 수 없어
산길 그대로 유지해야 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광진구청 공원녹지과-
기원정사 가는 이정목
오후 1시 9분...
날머리 도착!
기원정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기원정사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104-59번지
아차산 서남쪽 초입에 위치한 사찰이다.
아차산은 서울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으며,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산맥의 끝을 이루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한강의 물줄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삼국시대의 전략적요충지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광나루와 함께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선사시대 유적과 백제시대에 쌓았다는
아차산성(사적234호), 고구려 요새지인 보루성,
의상대사가 수행했다는 천연암굴,
그리고 석곽분, 다비터, 봉수대 등과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화사와 기원정사가
동서 백 미터 내외에 있어
신라 화엄의 대가였던 의상대사의 사상을
오늘에 드널릴 수 있는 길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명품소나무
약사여래대불좌상
대웅전
아차산 용마산 등산로 안내도
하산식!
구의 2동
메기,참게 매운탕 맛집에서~
메기,참게 매운탕
질과 양,
모두 만족!
국물 맛이 끝내줍니다.
ㅎㅎ
강추!
농심님의 단골 맛집!
주변 맛집들은
"농심님의 손"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ㅋㅋ
'알'이 꽉찬 참게!
디저트!
아메리카노 커피 & 허니 카라멜 브레드
농심님,
덕분에~
제가 호강했어요.ㅎ
맛있게~
너무너무 잘 먹었습니다.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ㅎㅎ
아차산 우중산행!
17,842
걸음
11.78km
어릴적에 ~
아차산에 대한 유래는
이랬습니다. ㅎ
옛날에 홍계관이라는
점쟁이가 점을 잘 본다는 소문이 있어서
명종이 불러서 시험을 해 보려고 할때
여기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 맞히라는 문제를 내었다.
홍계관은 잠시 생각하더니
쥐 5마리가 들어 있다고 얘기하자
왕이 상자를 열어 보았더니
여기에는 쥐가 한 마리만 들어 있었다.
그걸 본 왕은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고 생각하고
감히 임금을 속인 죄로(기군망상)
홍계관을 산(아차산)에서 처형하라고 명령했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쥐의 배를 갈라 보았더니
뱃속에는 새끼 4마리가 들어 있어서
그제서야 정확히 5마리였음을 랄게 되었고,
왕은 뒤늦게 '아차,내가 잘못 알았구나!'하고 후회했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서 처형하지 말라고 했으며
하인이 산으로 가서 처형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그걸 본 처형수는 빨리 처형하라는
소리인 줄 알고는 처형해 버려 "아차!" 했다는
이야기에서 아차산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