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공원에서 바라본 북악산
인왕산들머리
인왕산 기차바위
이제 추워지면서 미세먼지가 없어져 남산타워가 깨끗하게 보이네요
기차바위 뒷쪽 북한산
고인돌
경복궁쪽
경복궁 아차산 뒤로 예봉산까지 조망됩니다
남산을 당겨보고
모자바위
모자바위에서 바라본 인왕산
모자바위에서 바라본 북악산
남산까지이어지는 서울 순성길
호랑이바위
서울 성곽길
사직단문:보물 제177호. 정면 3칸, 측면 2칸. 익공계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직단이란 국토의 주인인 사(社)와 오곡의 우두머리인 직의 두 신위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므로 사직단이라고 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이 문은 사직단(사적 제121호)의 정문으로 1394년(태조 3) 사직단을 지을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있는 자리는 1962년 서울시 도시계획에 따라 원래의 자리에서 14m 뒤쪽으로 옮긴 것이다.
전체적으로 기둥 간격이 넓은데 중앙칸은 특히 좌우칸보다 간격을 더 넓게 잡았다. 기둥의 높이는 비교적 낮으며 지붕이 커서 평활한 인상을 준다. 3칸 모두 널문[板扉]을 달았으며, 옆면은 담과 연결하기 위해 벽을 쳤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새부리 모양의 부재를 이용해 기둥 위에서 보를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기법과 튼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1-38번지에 있다.
광화문: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다른 궁궐의 정문에 비해 그 규모와 격식 면에서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했다. 또한 광화문은 담장 끝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어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에 세 개의 홍예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도록 하였다.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때를 알리는 데 사용하였다.
이처럼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법궁이라는 점은 광화문을 비롯한 성문의 형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궁의 문들은 낮은 단 위에 문을 세우지만 경복궁의 문은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을 내서 마치 성곽의 문과 같은 모습을 취한다. 광화문은 그 중에서도 홍예문을 셋이나 내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 광화문이 법궁의 정문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준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궁제에 따라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원래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궁성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부서지고 석축은 탄흔 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은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서다. 파괴된 문루를 다시 짓고 광화문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 재건한 광화문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재건 당시 광화문의 축을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청사의 축에 맞추어, 그 결과 3.5도 가량 본래의 축과 어긋나게 틀어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원래의 광화문 자리에서도 14.5미터 가량 뒤로 물러나 지금의 자리에 서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형을 잃어버린 광화문을 복원하고자 2006년부터 광화문 철거작업을 시작해 3년 8개월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0년 8월 15일 완공되었다.
화강암으로 육중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이층의 문루를 얹어 멀리 조망하기 좋을 뿐 아니라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기단에 있는 3개의 아치형 출입문은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라는 위엄을 과시한다. 돌로 만든 기단 위에는 흙을 구워 벽돌처럼 만든 '전돌'로 나지막한 담을 둘렀는데, 여기를 장식한 팔괘문양은 조선조 궁궐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있다.
경복궁과 뒤에 북악산
광화문 광장에서 바라본 광화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산행을 한 7명이 먼저 송년회를 시작합니다
스마트폰 촬영분
혜화문
서울순성 성곽길
북악스카이웨이와 삼청각 성북동
성북동
북악산정상쪽
인왕산과 북악산
말바위
말바위에서 바라본 남산쪽
기품있는 노송
숙정문에서 한장
숙정문 어처구니
매바위
평창동과 북한산 능선
가야할 북악산 인왕산
인왕산
노송사이로 바라본 북악산
인왕산 기차바위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