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장재균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우리 공군과 대한민국은 큰 별이 되실 영도자 한 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약관 34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ej나신 당신은 평소에 존경하고 신봉하시던 부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일제의 강점하에서도 오로지 창공에 뜻을 두고 푸른 꿈을 하늘에다 불태우던 20대의 청년. 김영환은 해방을 맞으면서 조국 발전과 국방의 우세를 위해 제일 먼저 항공군의 창설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미군정청의 참모장 보좌관직을 맡아 일하시면서도 오로지 항공대의 창림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미군청 말기에 이르러 육군과 행군은 정식으로 창설이 인정된 반면 약속받았던 항공군의 창설은 무산되었고 항공대가 고작 육군의 한 개 예하 단위부대로 결성되자 당시로서는 성공이 보장되는 정보국장 자리를 과감히 내던지고 나와 최용덕, 장덕창, 김정렬 장군등 여섯분들과 힘을 합하여 우리 공군의 전신인 육군 항공대를 창설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다하셨던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당시로서는 하나 밖에 없었던 비행부대를 또한 몸소 창설하시어 몸소 작전처장 겸 제1비행중대장을 맡으셨고 한편으로는 작전을 한편 비행훈령에 앞장서는 지휘관으로서 공군력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20여대 밖에 없는 우리의 항공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항공작전을 감행하셨습니다. 저 유명한 L-5, L-5 경항공기에 수제폭탄과 수류탄을 싣고 적의 탱크부대에 대한 공격을 감행케 한 것도 님이 창안하신 공격방식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터입니다.
기상천외한 기지와 용맹성을 겸비하셨던 당신에게 우리 후배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작전 참모 보좌관이던 저에게 항상 웃으시면서 “대장부 사내 한법주지 주 번 죽나 멋지게 살다 멋지게 가자”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굼꾸는 소년같은 표정으로 나는 독이 공군의 ACE 였던 격추와 만프레트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처럼 멋진 전투조종사가 될거야!! 하시면서 목에는 빨간 마후라 발에는 아무도 신지않는 비행반장화를 신고 비행모에는 공군의 대령모자를 눌러쓰고 활달하게 웃으시던 당신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그리워하며 흠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후배들은 지금도 당신을 하늘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면서 당신의 뜻을 뒤따르려 노력하며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영정 사진이 된 이 모습은 사천기지에서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을 진두지휘하실 때 적을 쳐부수자며 용감하게 행인사로 출격하기 전 당신의 모습을 제가 찍은 것입니다. 이사진이 오늘의 영정이 되어 공군 영웅 그리고 국민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실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연의 일치 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이 인연의 법칙을 일깨워주시는 부처님의 자비 원력인 듯합니다.
평소 불심이 돈독하시던 당신께서 1954년 불의의 사고로 부처님 곁으로 가시지 않았던들 우리 공군은 더욱 더 발전을 이룩했을 거라고 믿는 후배들은 늘 당신의 빈 자리에 대해 안타까운 술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니었으면 잃어버릴 뻔했던 부처님의 만법이 담긴 팔만대장경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보존되어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자겨봅니다.
오늘 이 자리 정말 위대한 국가적 영웅 한 분을 너무 일찍 잃었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스스로 달래면서 애타게 당신을 불러봅니다.
님이시어, 부디 부처님의 가피 아래 영생하시어 우리공군과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