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아침을 열며] - 해녀, 좌여순 수필
바닷가로 걸어 나가는 해녀의 모습이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 같다. 까만 고무옷을 입고, 연철을 탄띠처럼 몸에 둘러 무장한 해녀들이 테왁망사리를 둘러메고 갯가로 나간다. 물가에 이르자 테왁을 내려놓고, 바위에 앉아 저마다 고무모자를 뒤집어 목까지 내려 쓴다. 오리발을 신고, 큰눈을 물에 담가 적시고는 미리 뜯어 온 쑥으로 유리를 문질러 닦아 쓴다. 오늘은 성게작업이다. 소라와는 다르게 야트막한 곳에 서식하므로 상군과 하군이 섞여 작업한다. 주황색 테왁이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바닷가 풍경이 고즈넉하다. 하늘은 푸르고, 파도는 얌전하게 일렁거린다. 가까운 바다 위에는 주황색 동그란 테왁이 무리 지어 꽃처럼 넘실거리고, 해녀들 검은 실루엣이 물속을 들락거리며 자맥질하느라 바쁘다. 젊은 여행객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느라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길게 뻗은 팔 끝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한다. 호이~ 호오이, 숨비소리는 뛰어난 연주가들의 음색 좋은 오카리나 합주처럼 바닷가에 울려 퍼진다. 물질하는 해녀들은 여행객들에게 이색적인 풍경이 돼준다.
그러나 풍경화 같은 해녀들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억척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보다도 더 고된 삶을 살아야 했던 세월이 있었다. 흙보다 돌이 더 많은 화산섬이었기에 땅보다 바다에 기대는 게 나았다. 모두가 가난한 살림이라 친정집 어머니를 찾아가도 얻어 올 게 없었지만 바다는 뭐라도 쥐여 줬으니 친정집보다 나았다.
화산섬 돌밭에서 거친 바람과 살다보니 돌덩이처럼 단단해지기가 쉬웠을까? 밭에서 일하면서도 물때가 되길 기다렸다가 지친줄 모르고 바다로 갔다. 고무옷도 없던 시절 겨울 바다는 얼마나 시렸을까. 새파랗게 떨리는 추위도 불턱에다 잠깐씩 눌러 두고 거친 파도와 싸우며 삶을 지탱했다. 전해오는 노랫말처럼 그들은 늘 칠성판을 등에 지고 저승 문앞을 드나들었다.
덜거덕거리는 땅을 일구며 무지하게 사는 동안 서럽고 억울한 일도 많았으리. 당장 저울눈 보는 법도 몰랐으니 배우지 않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 아이들에게만은 같은 고생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물에 들었다. 공동 물질 작업으로 마을에다 학교를 세우고, 더 큰 공부를 위해 육지로 보냈다. 돌밭을 구르는 자갈처럼 밟히고 부딪히며 오늘을 일궜다. 이런 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80세에 다다른 할머니 해녀가 성게 담은 망사리를 등에 지고 맨 먼저 나온다. "1등이우다"하며 인사를 건넸다. 필자를 알아본 해녀가 웃으며 답한다. "바당에 가지 말랜 하여신디… 이번만 하영 말잰 하염져게" 작년에도 들었던 말이다. 주름 깊은 얼굴에서 힘들지만 뿌듯하다는 그녀의 말을 문장으로 읽는다.
할머니는 성게 까기 편한 자리를 찾아 망사리를 부려 놓는다. 여행객들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물안경을 벗고 고무모자를 힘들여 벗은 할머니가 힘차게 대답한다. "이거? 성게라고 하는 거다".
할머니는 탈의장으로 들어가고, 젊은 남녀가 신기한 듯 성게를 요리조리 살피며 카메라에 담는다. 억척스럽다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열심히 살아온 그들이 있었기에 젊은이들은 여행하고 '워라벨'을 즐기며 4.5일 근무제를 운운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늘어나는 공휴일 만큼 느슨해진 마음으로 세계와 견주며 잘 살 수 있을지….
출처: 제민일보 2025. 06.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