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3](월) [동녘이야기]
[허균의 성소부부고 읽기] 031# 적암유고(適菴遺藁) 서(序)
https://youtu.be/n9FEpBLBMYk
월요일 새벽입니다. 오늘도 순서에 따라 교산 허균의 성소부부고, 적암유고(適菴遺藁)를 살핍니다. 물론 허경진 선생님이 풀이한 책을 바탕으로 해서요.
조신(曺伸, 적암=適菴은 호이다)은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호로 유배가사의 처음을 열었으며 만분가-萬憤歌)를 지었다)의 서제(庶弟, 아버지의 첩에게서 난 아우)인데 한 해에 낳았으나 달과 날이 위(偉) 보다 뒤이다. 형과 아우가 나란히 문장에 뛰어나 모두 선릉(宣陵,성종과 둘째 부인 정현왕후 윤씨의 능으로 성종을 가르킴)의 알아줌과 아낌을 입었다.
조위(曺偉)는 10년 안에 품계를 뛰어넘어 소사도(小司徒,잔심부름을 하는 남자 하인)에 이르렀으나 출신이 미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고 처음에 사알(司謁, 국왕의 시종과 알현을 담당)이 되어 합문(閤門, 편전의 앞문)에 봉공(奉公, 나라나 사회를 위하여 힘써 일함)하였다. 선릉이 수시로 불러 보고 때로 험운(險韻, 한시를 지을 때 어려워서 잘 쓰이지 않는 운자)을 불러 시험하면 문득 써서 바쳤는데 말과 뜻이 모두 아름다워 매번 옷과 비단을 하사받았다.
일본에 다녀온 일로 인하여 군직(軍職)에 붙여졌고, 뒤에는 내시교관(內侍敎官, 조선 시대, 궁중의 내시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은 종구품의 벼슬)이 되었다. 얼마 있다가 대군(大君, 임금의 적자嫡子, 정실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또는 그에게 준 벼슬을 이르던 말)의 사부(師傅, 곁에 있으면서 받들어 돌보는 사람)가 되었으며 육전(六典, 육조의 법전을 이르던 말)이 반포되자 비로소 내의원(內醫院, 궁중의 의약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벼슬하게 되었다. 또 북경에 다녀온 일로 하여 사역원(司譯院, 외국어의 번역과 통역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에 벼슬하고 많은 공로로 3품에 이르렀으니 대개 문학 외에도 여러 가지를 아울러 통하였다.
중묘(中廟, 중종=中宗)가 어렸을 때에 일찍이 감반(甘盤)의 구교(舊交)가 있었으므로1) 대위(大位, 높은 벼슬자리나 직위)에 나아가자 불러서 내의원(內醫院) 정(正)을 삼아 찬집청(纂集廳, 문헌이나 자료의 펴내기 위하여 설치한 임시 관청)에 출사하게 하고, 특별히 당상(堂上, 정삼품 상 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벼슬)의 품계를 더했는데 간신(諫臣)의 반대로 인하여 그 명을 거두었다. 나이 75세에 금삼(金山)의 집에서 죽었다. 내가 조신(曺伸)의 백년록(百年錄)을 보니 그 행적이 대개 이와 같았다.
선(宣)∙정(靖)2) 두 임금의 때를 당하여 문화가 크게 번성하니 관각(館閣, 홍문관과 예문관을 아울러 이르던 말)의 여러 노선생 가운데 거공(鉅公, 제국의 군주)으로 일컬을 자가 매우 많았으나 모두가 조신(曺伸)을 으뜸이라 여겼다. 남지정(南止亭, 남곤=南袞의 호)∙박읍취(朴挹翠, 박은=朴誾의 호)∙이문민(李文愍, 이숙정의 시호로 세종의 증손자)∙김이숙(金頤叔, 김안로의 자)∙김문경(金文敬, 김안국의 시호)∙이호숙(李浩叔, 이항의 자)∙김문정(金文貞) 등 여러 분들이 질문 변석(옳고 그름을 가려 사물의 이치를 분명하게 밝힘)하여 조신에게 절충(조절하여 알맞게)하였으니 그들이 추존(높이 받들어 우러르고 공경함)하여 숭상함을 알만하다.
호음(湖陰, 정사룡의 호)은 뻣뻣하여 허여(허락하여 주다)하는 사람이 적었는데 그의 정진(鼎津) 별장에 조신(曺伸)의 시와 용재(容齋, 이행의 호)∙눌재(訥齋, 양성지의 호) 이 세 사람의 작품만을 마루에 걸어 놓았으니 여기에서도 조신을 얼마나 인정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조여익(曺汝益)으로부터 그의 시 2권을 얻었는데 3권은 유실되고 남아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다. 읽어 보니 굳세고 절실하며 간명하고 무게 있음은 대개 황(黃)∙진(陳)3)으로부터 살짝 무르익었으며 태허(太虛, 태허정(太虛亭) 최항을 가리키는 것으로)와 비하면 혼융(渾融, 둘 이상이 섞여 완전히 융합된 상태)은 그보다 더하였으니 모자라는 것은 격(格)이요, 향(響)이요, 조(藻, 격조가 있는 문장을 이름)이다. 그 또한 우리나라의 명가(名家)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출(庶出)로 세상에 이름을 낸 자는 어무적(魚無迹, 호는 낭선=浪仙)∙이효측(李孝則)∙어숙권(魚叔權, 중국어에 뛰어난 외교관)∙권응인(權應仁)∙이달(李達)∙양대박(梁大樸)이 가장 드러났는데 조신(曺伸)은 이들 보다 더욱 이 세상에 쓰이어 조사(詔使, 중국 천자의 조서를 가지고 온다는 뜻으로, 중국에서 온 사신을 이르던 말)가 오면 반드시 필찰(筆札, 붓과 종이)을 주관하였다.
한때 제공(諸公)들의 받들어 숭상함이 이와 같았는데 그 시가 이에 그쳤으니 지금에야 더욱 오막시잠(吾藐市潛)을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하여 겨우 읽기를 마쳤읍니다. 그런데 맨 끝자락에 있는 오막시잠(吾藐市潛)을 풀이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드네요. 오막(吾藐)은 ‘나게는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 진다’는 뜻으로 풀고, 시잠(市潛)은 ‘저자거리로 숨어 들다’로 푸는 것이 좋을 듯이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그 훌륭함을 알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을 겸손하게 풀어낸 것으로요.
이런 오늘도 교산 허균을 통하여 적암(適菴) 조신을 만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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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린 시절의 스승
2)성종과 중종을 가리킴
3)황은 송나라 시인 황정견(黃庭堅)을 가리키고, 진은 북송의 시인인 진사도(陳師道)를 가리킴
첫댓글 하루 늦게 댓글을 올립니다.
어제 많이 바쁜 시간을 보냈읍니다.
이제,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