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3. 주일 큐티
다니엘 12:5 ~ 13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관찰 :
1) 다니엘이 보는 또 다른 두 천사
- 5절.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 다니엘은 티그리스 강가(10:4)에서 10:11 이후로 자신에게 계시를 말해주었던 “세마포 입은 자”(6절, 즉 그리스도) 외에 다른 두 천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 6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 “이 놀라운 일”( הַפְּלָאֹֽות, 하펠라오트)는 11:36; 12:1에 기록된 대로 장차 일어날 기이한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사의 끝” 일차적으로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박해가 끝나는 때를 가리키며, 상징적으로는 종말에 있을 7년 대환난의 후반부인 3년 반('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이 지나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때를 의미합니다.
- 7절.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 세마포 입은 자의 대답은 7년 대환난의 후반 3년 반이 지난 후에 그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동일합니다(마 24:36). 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는 그것을 손을 들어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2) 깨닫지 못한 다니엘에게 설명해 주심
- 8절.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 다니엘은 모르는 것을 알고자 물어보는 것에 있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주님께도, 천사에게도 묻고 물어서 하나님의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를 입곤 했습니다. 다니엘은 계시의 최종적인 성취 곧 택한 백성의 영생의 구원과 적그리스도의 패배와 영원한 멸망을 깨닫지 못한 까닭에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최종적인 정황이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자신의 모든 수고, 조상들의 모든 믿음, 오고 오는 성도들의 믿음이 의미가 있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짐작을 통하여 알 수는 있었지만 다니엘은 그 결과를 분명하게 알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 9절.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 그러나 천사는 여기에서는 다니엘에게 “갈지어다”라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종말적 정황은 아무나 알 수 있도록 분명하게 계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시가 끝나고 하나님의 주권이 어떠한지를 안다면, 그 종말이 어떠할지에 대해서도 믿음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 10절.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 일차적으로는 11:35에서와 같이 신실한 유대인들이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박해와 그로 인한 고난 속에서도 신앙적으로 더욱 정결케 되리란 의미이며, 상징적으로는 마지막 대환난 때에 참된 신앙인과 거짓 신앙인이 가려지게 되며 참된 신앙의 사람들은 그러한 적그리스도의 박해 속에서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을 대망하며 더욱더 신앙적으로 정결케 되리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지혜있는 자에게 열려지는 깨달음입니다.
3) 천이백구실 일, 천삼백삼십오 일
- 11절.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 7년 대환난의 후반 3년 반과는 30일의 차이를 나타내나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유대 민족 박해 사건이 시작된 시점부터 그가 마카비 혁명으로 쫓겨나고 성전이 다시 정결케 될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7년 대환난에서 큰 박해가 시작된 시점(3년반)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일수의 언급은 매우 다양한 해석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그 근본적인 목적이 고난의 때에 대한 한정된 시한을 구체적으로 계시해줌으로써 대환난의 시기에 성도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2)고 말씀하심으로 다니엘에게 알려주신 이 날들의 근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 12절.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 "천삼백삼십오 일". 이것은, "천이백구십 일"에 45일을 가산한 기간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1290일(재림 직전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핍박 기간)을 지나서 45일 간을 더 참으면 하나님의 축복 시대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이(마 24:13), 이 말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 13절.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 이 구절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었던 노령의 다니엘에 대한 위로와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평안히 쉬다가”는 원어상 '머물러 쉬다', '정착하여 쉬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일상적인 휴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다시 부활하기까지 무덤 속에서 평안히 쉬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몫”(גֹרָלְ, 고랄)은 원어상 '분깃', '업'(시 16:5)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니엘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있을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그에게 영생의 구원과 함께 큰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지게 된다는 점을 시사해줍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것이 동일한 이유입니다.
가르침 :
1) 다니엘은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것까지 보고 있습니다. 그 때의 세세한 일까지는 보지 못하지만 대략 환란의 날이 주님의 은혜로 경감될 것과,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자들이 있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패할 것이라는 것과 이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분명한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성취하시는 주님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보고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2) 충성을 다한 다니엘에게 주님은 마지막을 기다릴 것을 명해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죽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까지 평안히 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부활하여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주실 상급을 얻게 될 것임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finishing well 한 자에게 주시는 한없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다니엘에게, 그리고 모든 충성을 다한 성도들을 그렇게 넘치는 은혜로 대해 주실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의 은혜로 다니엘은 인간 역사의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이러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인류 전체를 통틀어 몇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의 상급에 대해서 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존귀한 자로 인정받고, 영원한 상급을 보장 받는 다니엘인 것입니다. 그가 바벨론, 페르시아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 결과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요, 하나님의 약속하시는 상급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나 역시 소망하며 하루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
2) 마지막 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이 현재의 오늘과 멀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에서 언급된 날짜들에 해당되는 시기가 어찌어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주님의 그 날을 믿고, 오늘의 환난을 이겨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게 됩니다.
3) 참으로 주님의 은혜가 귀하고 크다는 것을 다니엘서를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다니엘은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최고의 천재들 중의 하나이고, 아마도 가장 수위에 서 있던 존재라 할 것입니다. 그런 다니엘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으로 깨닫을 수 없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또한 천사를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놀라운 지혜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주어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위대하고 가장 놀라운 것인 이유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이 정말 기적이고, 위대한 것임을 다시금 인식하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