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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박이문의 예술철학
1. 박이문의 철학적 관심
박이문은 한국 현대철학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철학자 중 한 명.
관심 영역: 동양철학(논어, 노장), 문학, 예술, 윤리, 생명, 종교, 과학철학, 분석철학, 인식론 등.
50여 권 이상의 저술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탐구.
그 중 핵심적인 기여 분야는 예술철학.
2. 미(美)와 예술(藝術)의 구분
미: 아름다움의 감성적 경험, 개인의 심리적 반응, 수동적 성격.
예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창작 활동에서 나오는 산물, 시간과 공간을 점유, 개념적 성격.
미학: 미의 체계화된 철학적 탐구.
예술철학: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을 개념적으로 정당화.
3. 기존 예술이론 비판
표상론(플라톤-굿맨): 예술 = 실재의 재현, 지시(denotation) 중심 → 현대 예술에는 부적합.
형식론: 보편적 심미 감동에 치우침.
표현론: 예술을 반응의 결과로 보고 수동적 측면에 집중.
이들 이론은 예술의 정의에 미흡하며, 현실과의 단순한 모방 또는 반영으로 한정함.
4. 박이문의 예술 개념: ‘세계 확장’
예술은 창작자가 제안하는 새로운 세계의 확장.
감성적 경험과 개념적 활동이 통합된 구조.
미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가 동시에 작동.
미와 예술의 구분은 필수지만, 예술 정의에 도달하기에는 불충분.
“예술은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하자는 제안이다”라는 가설 제시.
5. 예술은 언어이다
예술작품은 지각대상이 아닌 해석의 대상.
자연과학: 설명, 사회과학: 이해, 인문과학/예술: 해석.
예술작품은 다양한 요소들을 통일된 의미망으로 연결하는 해석 구조를 가짐.
예술언어의 세 가지 특징:
1. 상징성: 축어적 의미를 넘어 상징적 의미 형성 → 예술작품은 하나의 “세계”.
2. 공적 의미: 예술가의 개인적 의도를 넘어서는 사회적으로 공유 가능한 의미 생성.
3. 혁명성: 기존 언어 비판, 모든 예술은 최소한의 아방가르드 성격을 지님.
예술언어 vs 자연언어:
예술언어는 비정상 언어, 창의성을 위해 기존 언어의 틀을 벗어남.
비정상성은 애매모호성과 무의미성을 포함, 이차적 해석 요구.
6. 예술작품은 가능한 유일 세계
단토의 예술론 비판: 단순한 대상성과 언어성으로는 예술 정의 불충분.
칸트의 양상 개념(단언적, 필연적, 개연적) 도입 → 예술은 개연적 양상:
현실에서 확정되지 않지만 하나의 가능세계로 열림.
반사실적, 반과학적, 반본질적, 반기하학적 상상 포함 가능.
예술작품의 정의:
“가능한 유일 세계”
가능: 개연적 양상.
유일: 창조적, 자율적, 독창적 구성.
세계: 주제가 아닌 하나의 통일된 세계 전체로 해석됨.
이차적 정의 (기능적):
예술작품은 현실을 효율화하려는 비예술작품과 달리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보여줌.
창조성은 기존 질서의 해방, 가능세계로서의 제안.
7. 생태미학과 예술
현대 사회의 생태적 위기는 인간과 세계의 이분법에서 비롯.
박이문은 예술만이 이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봄.
제안: 생태세계를 예술작품으로 보자.
1) 예술사 논리:
예술의 역사 자체가 기존 언어의 해체 과정.
1단계: 실재 모방(플라톤).
2단계: 구성 요소 재조직.
3단계: 예술언어의 매체 자체 전환.
해체 과정은 예술이 세계를 통전화(통합적 재구성) 하는 과정.
2) 작품 논리:
예술가는 다양한 요소를 조화로운 통일체로 재구성.
생태세계도 마찬가지로 유기적 통합의 대상으로 이해됨.
자연 + 문화 = 하나의 예술작품.
니체처럼 “예술의 눈으로 세계를 보라”는 태도로 접근.
8. 생태미학의 철학적 결론
예술작품으로서의 생태세계는 새로운 세계관의 전환.
기존: 실증적, 유물론적, 경험적.
생태미학: 통합적, 창조적, 해방적.
예술가는 예술작품의 일부이자 창작자.
인간과 세계의 이분법이 극복됨.
생태미학은 새로운 예술의 탄생이자 새 문명의 여명.
https://naver.me/FWP3WKPN
박이문은 한국현대에서 아마 가장 많이 읽힌 철학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논어, 노장 같은 동양철학뿐만이 아니라 시, 문학, 예술에 대해 중심적 관심을 가졌고 윤리, 환경, 생명, 종교, 인문학, 과학문명의 주제들, 그리고 인식론, 분석철학, 현상학, 과학철학 등에 관해 50권이 넘는 저술들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었다(강학순 2014; 정수복 2013). 그러나 박이문이 기여한 것으로 간주되는 분야는 그가 가장 오래 탐구해 온 예술철학일 것이다.
1) 미와 예술: 박이문(1983: 246-253, 2010: 29-30)은 미와 예술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미(美, beauty)가 아름다움의 경험으로 감성적(aesthetic)인 것이라면, 예술(藝術, art)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에서 나오는 작품(works)이다. 미는 인간이 경험하는 대상이나 그 내용의 성질로서 심리적인 것이고, 예술은 활동의 작품이 시간 공간을 점유한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것이다. 미와 예술은 둘 다 학문적 성격을 갖는다. 미를 다루는 미학은 아름다움이라는 경험의 체계화이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개인에게서 나타나지만 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집단에 따라, 연령, 사회, 문화, 역사에 따라 가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다양한 경험들은 “아름답다”라는 표현으로 통합된다. 미학은 이러한 통합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철학적으로 추구하는 성찰이다. 한편 예술을 다루는 예술철학은 인간활동에 있어서 예술적인 것과 비예술적인 것의 구분의 개념적 정당화이다. 그러한 구분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 근거와 필요의 이유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정당화의 작업에서 예술가, 작품의 창조성, 가치평가, 감상자의 역할이 조명된다. 한마디로 말해, 박이문에게 있어서, 미는 아름다움의 수동적 경험으로서 감각적인 것이고, 예술은 아름다움의 추구적 활동으로서 개념적인 것이다.
박이문(1983: 149-161)의 미와 예술의 구분은 중요하다. 그는 이 구분으로 전통적 예술철학을 거의 모두 부인하면서 또한 이 구분으로 자신의 예술철학의 구성을 시작한다. 먼저 예술이론 중 예술이란 실재의 모방(mimesis)이라는 표상론(representationalism)을 보자. 플라톤이 시작하고 굿맨(N. Goodman)이 체계화 한 이 입장은 작품이 실재를 지칭(denote)한다고 보며, 과학이 실재를 그려내는 것처럼 예술도 세계이해의 방식이라고 간주한다. 표상론자에 따라 표상 개념에 요구되는 유사성, 진리, 지식, 언어 등의 조건들이 달라지긴 했지만 작품과 세계의 인식적 관계는 유지되었다. 그러나 박이문(1983: 201-205; Park 2012a: 253)은 그러한 인식적 관계의 성질들이, 특히, 현대 예술 작품에는 필요하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세계 실재에 대한 궁극적 표상으로서의 예술 이념이란 태양을 향해 비상해 들어가는 이카루스(Icarus)의 자기파멸적 운명일 뿐이라고 믿는다. 박이문(1983: 35-76)은 표상론뿐 아니라 실재를 나타내는 작품의 형식이 보편적 심미적 감동을 준다는 형식론(formalism)도 예술의 작품 개념에 치우쳐 있고, 표현론(expressionism)은 예술을 세계에 대한 이해의 반응으로서의 결과로 보며 아름다움에 대한 수동적 경험에 주목할 뿐이라고 본다.
박이문(1983: 262; Park 1998: 267)은 이를 넘어서서 예술이란 예술가가 예술작품을 통해 나타낸 <세계 확장>이나 그 내용이라고 본다. 이러한 예술 개념은 예술 작품에 감성 감각적 요소와 예술 개념적 요소가 둘 다 개입하는 구조를 갖는다. 미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가 동시에 작동 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이란 한편으로 감각적 수동 경험에 대한 능동적 추구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념적 활동의 결과로 도달한 미적 경험 내용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이문은 미와 예술을 둘 다 수용하지만, 미와 예술의 구분이 나타낸 수동적 감각성(aesthetic)과 추구적 활동성(artistic)은 예술의 정의 도달에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러한 속성들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긋는데 별로 기여하지 않는다면서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정의를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그는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그는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가설(Park 1998: 268; 2012a: 252)을 제안한다.
2) 언어로서의 예술: “예술작품은 세계(대상)를 새롭게 보자는 제안”이라는 가설을 수용한다고 하자. 이 가설이 함축하는 것 하나는 예술작품은 단순한 지각대상이 아니라 <의미 대상>이라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과학적 관찰이나 통계적 측정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의미를 밝혀내야 하는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박이문(1983: 187; 1993: 37-49, 105-112)의 해석개념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의 대조를 통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자연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은 실증된 기계적 인과법칙의 틀로부터 연역적으로 추리하는 것이고, 사회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회라는 책속에 나타나는 단편적, 파편적 현상들을 전체 문맥에 짜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현상은 사실 기술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의 장에 대한 반성적 활동의 현상>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이라는 새로운 경험의 의미체에 대해서는 <해석>이 요청된다(정대현 1994: 419-422). 예술작품의 해석이란 작품이 포함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일관적으로 연결하여 작품의 전체적 의미를 구성하여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따라 여러 독립적 요소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 전체의 부분이 되게 하는 것이다.
박이문은 예술작품이 이러한 개념의 해석 대상이라는 것을 보임으로써 <예술작품은 일종의 언어>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굿맨 예술언어론 같은 것을 제안하거나 그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예술작품은 어떤 종류의 언어일 것인가? 박이문(1983: 117, 173~178, 138~148; Park 2012a: 254)의 예술 언어론은 적어도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첫째, 예술언어는 상징적이다. 꽃이라는 사물, 슬픔이라는 감정은 “꽃”, “슬픔”이라는 발성 또는 문자적 표기로서 표상 또는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림이나 멜로디에 의해서도 표상되거나 표현될 수 있다. 예술언어는 기호를 해독해서 얻는 <축어적 의미> 를 포함하지만, 해독을 토대로 <상징적 의미>애 도달하는 것이다. 상징적 의미는 해석된 작품이 분할될 수 없는 하나의 통일된 전체임을 보이며, 예술작품에 유일성, 특수성, 상위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특수적 개별자를 통해 보편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주제”보다는 일종의 “세계”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둘째, 언어로서의 예술작품의 의미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도가 아니고 언어적, 공적 의미이다. 예술가의 의도는 그 개인의 심성적 상태이지만 예술가가 일단 작품으로 새로운 <세계(대상)>fmf 제시하게 되면 이 작품은 공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셋째, 모든 예술작품이 창작이고 새로운 세계라는 점에서 예술작품의 언어는 기존 언어에 대한 비판이 된다. 따라서 모든 작품은 필연적으로 아방가르드이고, 최소한도의 혁명성도 없는 예술 작품은 자기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언어는 일상언어 또는 한국어, 영어 같은 자연언어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 물음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일상 언어가 보편적, 반복적, 공적인 구조임에 반해 예술언어는 개인 예술가가 고안한 언어로서 단칭적, 특수적, 비개념적인 것으로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이문(1983: 124~136; Park 1998: 264-265)은 이 물음을 스스로 묻기 때문에 비예술작품 언어로서의 정상언어와 예술작품 언어로서의 비정상언어를 구분한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경우 자신의 정상적 언어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그 허용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간은 언어라는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들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정상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비정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그 언어의 비정상성 때문에 그 뜻이 불투명하게 되는 것이고, 예술작품 해석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해석의 문제는 비정상적 언어 의미의 일차적인 애매모호성이나 무의미성 속에서 이차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3) 예술작품-가능유일세계: 그러나 이러한 예술 언어론 만으로는 예술 개념의 정의가 충분하지 않다. 예술언어가 정상언어에 대한 비판이나 수정을 통해 구성된 비정상언어라면, 그러면 비정상언어는 엄밀하게 말하여 어떤 언어인가? 박이문(2011: 294-303; Park 2012a: 252)은 그 조명을 위해 한 단계 비약을 한다. 그의 비약은 단토(Danto, A. 1981) 예술론의 비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단토는 예술작품이 대상성(무엇에 관함)과 언어성(육화된 의미)으로 구성된다고 제안하지만, 박이문은 단토의 두 조건이 평면적일 뿐 예술 작품의 양상성의 차이들에 민감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예술작품이 창조성이나 새로움을 필수적인 속성으로 갖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작품의 양상성은 독립적으로 주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칸트(I. Kant)의 단언적(assertoric: 하늘은 실제로 푸르다), 필연적 (apodictic: 지구는 반드시 태양을 돈다), 개연적 (problematic: 사람이 펄펄 날 수도 있다) 판단의 3등분적 양상개념을 도입한다. 예술작품은 진위(眞僞)의 단언적 양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proposal)하는 개연적 양상이라는 것이다.
박이문(2010: 42~45)의 개연적 양상 개념을 조금 더 부연해 보자. 개연적 양상은 단언적 양상과 달리 그 진위가 현실 세계에서 우유적으로(contingently)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연적 양상은 필연적 양상과 달리 그 진위가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necessarily)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선정되지 않는다. 개연적 양상은 그 진위가 단 하나의 가능 세계에(possibly) 열려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므로 개연적 양상은 현실세계의 사실들과는 관계가 없고 논리적 세계의 진리나 모순과도 상관이 없고, 오로지 적어도 하나의 가능한 세계에 열려 있는 것만으로 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술작품의 개연적 양상은 “경주는 한국의 수도이다”와 같이 반사실적일 수도 있고, “사람은 펄펄 난다”와 같이 반과학적일 수도 있다. 개연적 양상은 에셔(Escher, M. C. et al 1995) 판화에서처럼 반기하학적일 수도 있고, “오바마는 여성이다”와 같이 반본질적일 수도 있으며, “전지 전능한 마귀가 존재한다”와 같은 데카르트적 상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박이문(1983: 101~109, 162~166; 2010: 42~45; 1998: 268)의 예술작품의 규정은 무엇인가? 예술작품은 일차적으로 “가능한 유일 세계”인 것이다. 이것이 규정하는 것은 <예술작품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 예술작품>에 대한 것이다. 이 규정에서 “가능”이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개연적 양상을 나타낸다. “유일”이라는 표현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독자적 개성을 갖는 것처럼, 예술가의 각각의 작품이 갖는 창조적, 독립적, 자율적, 자체구성적 성질을 지시한다. 그리고 “세계”라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하나의 예술작품은 <주제>로서가 아니라 <세계>로서 해석의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능한 유일 세계”가 모두 예술 작품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박이문의 예술론은 예술작품의 이차적 규정을 필요로 한다. 일차적 규정이 존재론적 규정이라면 이차적 규정은 기능적인 것이다. 어떤 사물에 칫솔의 기능이 부여되었을 때 구둣솔과 구분되는 기능으로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처럼 예술작품도 비예술작품과 대조되는 기능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비예술작품의 기능은 현실 세계 생활의 효율화에 맞추어져 있지만, 예술작품의 기능은 그 존재론적 구조가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보이는 것이다. 현실 세계가 지루하고 억압적이고 소외적이고 무의미한 세계로 경험되고 있다면, 예술작품은 보다 해방적이고 자유와 희망을 보이는 가능세계를 가리킬 때 그 창조성이 돋보이게 된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유일한 가능세계를 얼마만큼 나타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예술작품들이 비교되는 것도 어느 것이 주제나 형식에 더 새로운가, 어느 것이 기술적으로 더 표현적인가에 따라 평가된다. 그렇다면 박이문에게 있어서 예술작품이란 현실세계와는 다른 가능한 유일 세계를 보이는 것이다. 즉 “가능 유일 세계”로 요약될 수 있다.
4) 생태세계-예술작품: 박이문은 그가 도달한 “가능 유일 세계”로서의 예술작품 개념을 생태적 문맥에 적용한다. 현대 사회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대로 생태적 곤란에 처하여 있고 정보과학, 생물공학 등의 발전으로 그것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사회적, 도덕적 판단의 결함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과학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판단 결함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박이문(Park 1998: 268-269)은 이 결함이 인간과 세계의 이분법에서 온다고 진단한다. 데카르트에서 철학화된 이분법은 언어와 표상, 개념과 지각, 추상과 구상, 객관과 주관, 의미와 실재의 이분법으로 확장되어 왔다. 인간이 세계를 이러한 이분법하에서 경험하게 되면 세계를 인간과 독립된, 인간 편리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박이문은 현대 문화의 생태 문제의 해결을 이러한 이분법의 인식 방식을 극복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 극복의 길은 예술 이외에 없다고 제안한다. 그의 제안은 생태세계를 예술작품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논리를 갖춘 제안이다. 예술사 논리와 작품의 논리이다.
박이문(Park 2012a: 253-258)이 제시하는 <예술사 논리>는 예술이 역사적으로 해체되어 온 구조이다. 박이문은 모든 예술작품을 기존의 예술언어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문맥에서 플라톤이 예술은 실재에 대한 모방이라고 생각한 것은 예술사의 첫째 단계를 구성한다. 첫단계에서 예술사는 이 실재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주제들을 작품의 내용으로 선택하였다. 이데아, 종교, 일상 대상을 작품 대상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둘째 단계는 예술언어의 구성조건들을 재조직하는 것이었다. 핵심적 구성조건을 빛이라고도 하고 색깔이라고도 하고 느낌이라고도 하였다. 셋째 단계는 예술언어의 매체 자체를 달리 선택하는 것이다. 비디오, 소리, 영상, 상품, 일상적 대상, 박스광고가 예술언어가 구성하는 가능세계로 제안된 것이다. 박이문은 이러한 예술언어의 역사적 과정을 “해체적”으로 읽고 바로 이러한 해체 과정 자체가 세계를 예술작품으로 통전(統全, creative integration)화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생태세계가 예술작품이라는 제안을 위한 박이문(Park, Ynhui 2012b: 264~269)의 <작품논리>는 개인 예술가의 개별 예술작품의 구조를 생태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용은 데카르트적 이분법을 벗어나는 방식일 뿐 아니라 또한 바로 생태세계를 작품으로 변형시키는 논리가 된다는 것이다. 개인 예술가는 잡다한 사태들을 단일한 유기적 단위로 변형하여 그 모든 요소들을 해방적 의미를 갖는 조화의 전체로 만들어낸다. 예술가의 이러한 변형의 논리는 생태미학에 적용되어, 잡다한 생태계를 단일한 전체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세계가 자연이면서 동시에 문화일 때 이분법은 극복되고 인간과 다른 모든 요소들이 단일한 통전적 유기체의 구성적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니체가 이미 세계를 “예술의 눈으로” 볼 것을 제안했던 것처럼.
예술작품으로서의 생태세계라는 생태미학은 생태세계를 예술의 눈으로 보는 관점적 전환을 하는 것이고 새로운 세계관(Weltanschauung)을 갖는 것이다. 전통적 세계관이 실증적, 유물론적, 경험적, 합리주의적인 것이었다면 생태미학적 세계관은 이에 따른 독특한 태도를 갖는다. 개인 예술가가 구체적 대상을 특별한 장르에서 온전한 개별자로서의 작품을 창작한다면, 생태미학자는 전체 세계를 예술작품으로 취하여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적 예술 작업을 하게 되고, 그 자신 예술작품의 부분이 되면서 또한 동시에 예술작품의 창작자가 되는 것이다(Park 2012b: 271; 1998: 269; 2012a: 256). “꿈꾸는 자가 말할 때 누가 말하는 것인가? 그인가 세계인가?”라고 바슈라르(Bachelard)가 적은 것처럼, 생태미학에서 인간과 세계의 이분법이 극복되는 것이다. 예술작품이 현재의 조건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것처럼 생태미학은 우리를 인지적으로 참다워지게 하고 세계와 존재론적 화해를 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생태미학은 새로운 예술의 탄생이고 새 문명의 여명이 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