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벌레
장용대
초등학교 교문 앞 작은 공원에 의자가 있다. 거기에 할머니와 언니,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초등학생 오빠를 기다린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이 났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다가와 경찰 아저씨야? 그러면서 경찰차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아동지킴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너 댓 발짝 거리에 있는 할머니에게 갔다 오며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또 와서, 어디 사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가자고 하여 따라가니 또박또박한 말로 "이거는 언니, 저거는 할머니"라고 소개한다.
저거라는 말에 그만 옆에 있던 사람들까지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꾸밈없고 밝은 미소를 지닌 아이다.
붙임성이 좋은 아이는 할머니 앞에서 내손을 끌고 포장마차를 가리키며 맛있는 오뎅이 있다고 한다. 나한테 사달라고 하나보다 속으로 생각하며 귀여운 아이가 안내하는 곳으로 갔다. 할머니는 보고도 빙그레 웃기만 한다. 포장마차에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있었다. 오뎅을 달라고 하여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조금 전에 난 먹었어, 맛있으니까 아저씨 먹어” 라고 말한다.
널름 받아먹을 줄 알았더니, 그놈 참 기특하구나. 갓 구워 낸 먹음직스러운 붕어빵이 보였다. 나는 얼른 붕어빵 한 봉지를 주문하여 아이 손에 들려주었다. 아이가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언니와 할머니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나와 아이도 한 개씩 붕어빵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붕어 꼬리를 덥석 물고 "앗 뜨거워" 하며 놀라니까 아이가 후~ 해 준다며 조그만 입술로 후~ 후~ 바람을 불어 준다. 내가 맛있게 먹자 한마디 더한다. “빨리 먹으면 토하니까 천천히 먹어” 아이가 아니라 어른스럽다.
다음날 유치원 어린이들은 쉬는 시간에 공원이 있는 운동장에 나와 미끄럼틀을 타고, 시이소 타고, 그네도 타며 마음껏 뛰어 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화단 구석에 그 아이와 함께 아이들이 몰려와 땅을 파며 무언가 열심히 잡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무어냐고 물어보니 공벌레라고 한다.
언뜻 보기에 거무스레하고 흉측하게 생긴 조그만 벌레를 고사리 같이 예쁜 손바닥에 얹고 귀여운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마디로 이루어진 허리를 도르르 말아 공이 되었다. 바닥에 놓고 공이 된 벌레를 살짝 굴리니 또르르 굴러간다, 아마 야구공만한 벌레였다면 아이들이 벌써 운동장에 가지고나가 던지기 놀이, 굴리기 놀이를 하였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공은 작은 콩알만 하다. 공벌레는 살기위해 딱딱한 껍질이 있는 등을 최대한 구부리고 죽은 척하며 아이들의 괴롭힘을 견디어 내고 있었다.
아이들 눈에 신기하게만 보이는 공벌레를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흙이 있는 화단을 이곳저곳 나뭇가지로 파헤쳤다. 어쩌다 지렁이나 달팽이를 만나면 더욱 흥이 난다. 잡은 벌레를 종이컵에 담아 서로 자랑하며 한 마리씩 한 마리씩 가지고 놀았다. 나는 혹시 바이러스라도 감염되면 어쩌나 염려하면서도 한편으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야단치지 못하고, 한 마리만 잡아라! 많이 잡으면 벌레가 깨문다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저녁 해충이 아닐까 하면서 공벌레를 인터넷에서 찾았다. 몸은 머리와 일곱 개의 마디로 된 가슴, 다섯 마디로 이루어진 배, 퇴화된 더듬이 두 쌍이 있고, 몸 색깔은 어두운 갈색이거나 회색이다. 낙엽, 돌 밑, 흙속 같은 습한 곳에 살며 환할 때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돌아다닌다. 놀라면 등을 둥글게 마는 습성이 있어 공벌레 또는 콩벌레라고 부르며 잡식성이다. 화단에서 자주 보지만 식물이나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흙속에 공기와 영양분이 잘 통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콩알만 하지만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되어있는 환경 적응력이 강한 벌레다. 다행히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안심했다.
어린 시절 땅강아지를 가지고 논 기억이 난다. 처음에 손을 깨무는듯하여 이내 놓아버렸지만 손안에 살며시 잡고 주먹을 쥐고 있으면 앞발을 좌우로 펼치며 빠져 나가려고 온갖 힘을 다 쏟는다. 손이 간질간질 하였다. 그리고 땅바닥에선 공벌레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재빠르게 도망을 가 다시 붙잡아다 놀곤 하였다. 땅강아지도 땅 속에 살며 식물의 뿌리, 때로는 채소 감자 인삼 까지 먹는다고 한다. 앞발이 삽 모양으로 생겨 순식간에 땅속으로 도망 가기도하며 나방처럼 밤에 불빛을 따라오기도 한다. 땅강아지는 날개가 있어 방심하면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어린이들의 동심은 닮은 점이 있나 보다. 그러나 도심의 어린이는 잘 포장된 도로와 집, 콘크리트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시골은 흙과 돌, 시냇물과 산, 나무와 꽃, 새와 곤충들이 함께 어울려 진 낙원이다. 아이들이 자연을 잃어버릴 가 봐 걱정이다. 조그만 흙더미 속에 공벌레를 찾아다니고 길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따라 다니지만 아이들은 낙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도심을 벗어나 푸른 언덕과 산.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자연과 어린이들이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첫댓글 자연과 어린이들이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심성이 고우신 선생님 이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