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器에 담긴 밥을
유홍준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이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이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시 감상]
올해처럼 사고가 잦은 해도 없는 듯하다. 코로나, 대형화재, 물난리 등등, 모든 사고 후에 밝혀지는 진실은 인재라는 말이다. 사람으로 시작하여 사람이 원인이 되는 인재. 누구에게도 삶은 소중한 법이다. 적어도 목기에 담긴 밥을 먹기 전까지는. 그 어떤 날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현재의 삶에 대한 처세술에 달렸다. 영혼이 담긴 밥상과 영혼이 안 담긴 밥상의 차이는 매우 크다. 산다는 것은 죽음 이후가 아닌, 죽음 이전의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살아야 한다. 지금부터.[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유홍준 프로필] 경남 산청, 시와 반시 등단, 시작문학상, 소월 시 문학상, 시집 [나는 웃는다] 외 다수
첫댓글 오래도록 이어져오는 오랜 관습으로 사후 먹게되는
제삿밥 담는 목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울적해지네요
그나마도 요즘에는 점점 젯밥 얻어 먹기도 힘들어지는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세대들이 놔주어야 할 풍습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젊은 세대들이 새롭게 좋은 풍습으로 만들어가길 바랄뿐입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아마, 제사도 우리세대에 끝이라는ㅠ
지기님..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