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길 카누에 올라 천천히 노를 젓다보면 어느새 잔잔한 물결과 산, 하늘만이 있는 세상에 다다른다.
남이섬 둘레길 걸으며 사색 즐기고 고즈넉한 메타세쿼이아길도 산책
의암호 누비는 물레길 카누 체험 고요한 세상으로의 여행 시작
향토음식 ‘모래무지찜’ 별미 닭갈비·막국수는 안 먹으면 섭섭
통기타 하나 둘러메고 경춘선 무궁화호에 몸을 싣던 시절이 있었다. 가진 것 없어도 낭만과 열정이 있기에 온몸이 팔딱대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제는 성성해진 머리칼만큼이나 빛바랜 그 기억을 찾아 발길이 향한 곳, 강원 춘천이다.
●11:00 ‘나미나라공화국’ 입국
남이섬은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떠 있는 섬이다.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와 함께 온 이들이 남기고 간 사랑과 우정이 섬 어디에나 서려 있다. 그 섬이 이제는 꽤나 많이 변했다. 문화적으로 독립된 상상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뜻의 ‘나미나라공화국’이란 새 이름이 생겼고, 손님을 나르던 낡은 배는 이제 세련된 여객선과 ‘짚와이어’란 이동수단이 대신한다. 그 와중에 섬에 사는 생명들은 예전보다 더 푸르고 생생해졌다.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다면 섬 둘레길부터 휘 돌아볼 일이다. 각종 편의시설과 관광명소가 많아 사람들이 붐비는 중심부보다 한결 호젓하다. 아직 초록빛이 남은 수풀과 북한강을 벗 삼아 걷다보면 다람쥐와 청설모가 총총 눈앞을 스쳐간다. 메타세쿼이아길·전나무길·은행나무길과 같이 섬 여기저기를 수놓은 길도 고즈넉하니 좋다.
남이섬의 막배 시간은 오후 9시40분이다. 인적이 끊긴 남이섬의 자연을 밤새 누리고 싶다면 섬 내 숙박시설을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다. 남이섬을 둘러싼 북한강 근처에도 캠핑장·펜션 등 다양한 숙소가 많아 하루 묵어갈 만하다.
●13:30 춘천의 별미 ‘모래무지찜’
점심 메뉴로는 아직은 생소한 춘천의 향토음식, 모래무지찜이 좋다. 모래무지는 10~20㎝ 크기로 자라는 잉엇과의 민물고기로, 모랫바닥에 숨는 습성 때문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작은 몸집에 비해 제법 살이 많고 육질이 단단해 씹는 맛이 좋다. 고추장·들기름·소금 등으로 양념한 모래무지찜에는 무청 시래기도 듬뿍 들어가 구수한 맛이 푹 배어 있다. 남이섬에서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남산면과 서면에 모래무지찜을 잘하는 식당들이 몇군데 있으니 그 맛을 직접 느껴보시길.
●15:00 물 위의 산책 ‘의암호 스카이워크’
부른 배도 꺼뜨릴 겸 잠시 걷고 싶다면 이곳에 들러보자. 잘 닦인 자전거길은 물론이고 아찔한 스카이워크를 거닐 수 있다. 스카이워크란 물 위나 높은 곳에 설치한 투명유리를 밟으며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짜릿함을 즐길 수 있는 구조물이다. 의암호 스카이워크는 호수 위 12m 높이에 놓인 하늘자전거길 중간에 있다. 강화유리를 보호하기 위해 스카이워크 입구에 놓인 실내화로 갈아신고 투명한 바닥에 들어서자 검푸른 물결이 발 아래서 출렁인다. 겁이 나더라도 20m 거리에 있는 스카이워크 끄트머리까진 가봐야 한다. 그곳에 서서 마주하는 의암호 전경이 기가 막히다.
●16:00 물레길 카누에 몸을 싣고
춘천에는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연의 길이 있다. 카누를 타고 의암호 곳곳을 누비는 ‘물레길’이다. 의암호와 맞닿은 송암레포츠타운 근처에는 물레길 카누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다. 카누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라도 걱정할 것 없다. 왕복 45분 정도 걸리는 초보자용 코스를 선택하면 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10분간 진행하는 안전교육을 받고, 구명조끼를 입은 후 카누에 오르면 고요한 세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나무로 만든 카누는 길이가 5m에 이르지만 무게는 25㎏으로 가볍다. 덕분에 노를 힘껏 젓지 않아도 배가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코스를 도는 내내 들리는 거라곤 물살을 가르는 소리와 가끔 푸드덕거리는 물오리떼 소리뿐이다. 중반쯤에 다다라 잠시 멈춰서니 어느새 카누와 하나 된 몸이 자연 속에 폭 파묻혀 있다. 그 평온함에 발이 묶여 한참을 물 위에 떠 있었다.
한낮의 카누잉도 좋지만 좀더 신비로운 물레길을 마주하고 싶다면 주말을 노려볼 만하다. 특별히 ‘아침 물안개 투어’와 ‘노을 카누잉’을 추가 운영한다.
●18:00 춘천여행의 백미 ‘닭갈비와 막국수’
춘천까지 와서 닭갈비 한점 안 먹고 가면 섭섭하다. 물레길에서 차로 10여분만 달리면 조양동에 자리한 명동닭갈비골목에 닿는다. 즐비하게 늘어선 닭갈비집 중 반세기 넘게 터를 지켜온 ㅇ식당에 발을 들였다. 대표메뉴는 ‘뼈 없는 닭갈비’. 빨갛게 양념한 닭고기를 숯불 위 석쇠에 척 올리고 불맛을 입힌다. 이때 센 불에 양념이 탈 수 있으니 10초마다 뒤집어주는 정성이 필요하다. 속살이 하얗게 익은 살코기를 한입 베어무니 맵지도 짜지도 않게 간이 딱 알맞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막국수까지 곁들이면 ‘춘천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