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말은 / 홍속렬
(결혼 52주년에 부쳐)
기독교에서 가장 흔히 많이 쓰는 말은 곧 사랑이다
그래 사랑이란 지고지순한 용어가 어떤 땐 너무 싸 시장의 싸구려 물건값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올해 우리 부부는 결혼 52년 차를 맞게 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 가난했기에 힘들었고 그래 더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는지도 모른다
군인 상사봉급 얼마 되지 않는데 봉급 때가 되면 시골집에서 빚 받으러 온 빚 쟁이 처럼 박봉의 월급봉투를 바라고 찾아온다
지금까지도 월급봉투를 보관하고 있는 아내는 가끔 월급봉투를 꺼내보며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외상 봉지 쌀, 외상 낱장 구공탄, 새끼줄에 매단 몇 개 . . .
진정한 사랑이 아니면 도무지 견디어 낼 수 없는 삶
그러나 우리 부부는 잘 참고 인내하며 여기까지 왔다.
공수부대 총각상사?
드문 일이다. 상사가 총각이고 새파랗게 젊은 상사라니?
특진을 두 번이나 하다 보니 아주 어린 나이에 상사가 되었다.
공수특전단 용사로 베레모를 가장 멋지게 쓰고 신사처럼 행동하는 매너를 갖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그래, 많은 여성이 프로포즈를 해 왔고 내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현실 안에서 가난을 함께 돌파 해 나갈 인물을 물색했다.
데이트를 하게 되면 명동 골목길에 천막을 치고 뚝배기 백반을 파는 된장찌개집으로 데리고 갔다
다른 여성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만스런 표정이었으나
아내는 스스럼없이 잘 먹었고 맛있다 칭찬하며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장로님 가장의 둘째였다
아내의 가정에서 극력반대하는 데도 우린 결혼했다
싸구려 벽돌로 아무렇게나 쌓아 만든 삯월 셋방 2000원짜리 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우린 세상 어느 것도 부러울 것 없었다.
연탄 깨스가 스며들어 늘 머리가 아파 왔다.
첫 딸이 태어나고 장모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시고 좀 더 환경이 좋은 전셋집을 얻어 주셨다
첫 딸아이의 육아일기를 내가 썼다
그렇게 52년이 훌쩍 지났다.
지나고 나니 무척 긴 세월이었다
이제 아내도 나도 너무 많이 늙었고 옛 생각에 잠기기엔 너무 긴 세월 흘러 갔다.
까마득한 기억을 되살리기엔 기억력이 너무 빈약하다.
그러나 지고지순한 아내에 대한 생각은 어제나 오늘 아니 52년 전이나 매일반이다
결혼 52년 동안 우리 부부의 문제는 내가 여자축구에 미쳐 가산을 다 탕진한데서 오는 갈등 이외엔 없었다.
아내가 너무 가난한 나를 선택했다는 감사로 인해 나는 다른 여인에게 눈 돌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만난 건 하나님 축복이라 믿는 굳은 믿음이 바탕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