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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汉志) 1-022
信陵君은 그 편지를 받아 보고 나서는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食客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비장한 각오로 호소했다.
"大王께서는 軍事同盟까지 맺어 놓고도 趙의 위급을 보고도 구하려고 아니 하시니,
우리들이라도 들고 일어나 趙를 도와 주기로 하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것이 우리들의 本怀이니 뜻 있는 분은 나와 행동을 같이 해주기 바라오.
"그러자 食客들은 千에 하나같이 주먹을 불끈 쥐며 비장하게 외친다.
"公子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저희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동을 같이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3천여 명의 食客들이 맨주먹으로 수백 대의 수레에 나눠 타고 趙나라로 떠나려고 하는데,
별안간 侯生老人이 나타나 손을 높이 들어 出发을 저지하며 말한다.
"公子께서는 出发을 맞추시고 소생의 말을 잠깐만 들어 주옵소서."
信陵君은 초조한 마음으로 侯生노인에게 말한다. "우리들은 지금 갈 길이 멀고 바쁜데,
先生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아무리 바쁘셔도 제 말은 꼭 들으셔야 합니다. ...
공자께서는 지금 선비들을 몰고 나가 맨주먹으로 秦軍과 싸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호랑이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리까." "그렇다고 軍事同盟을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물론 군사동맹은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国境에 주둔 중인 晋鄙 장군의 10만 军事를 公子께서 직접 물려받아
가지고 싸우셔야 합니다.""진비 장군이 나에게 軍事를 물려줄 리가 없지 않소."
"大王께서 가지고 계신 兵符를 가지고 나가시면 됩니다.
大王께서는 그 병부를 寝殿에 보관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兵符를 훔쳐 가지고 나가셔서 진비 장군의 군사를 물려받도록 하시옵소서."
(兵符란,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할 때에 王이 证牌를 둘로 쪼개서, 한 개는 将军이 가지고 나가고
한 개는 王이 갖고 있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辞令狀 같은 것이다.)
信陵君은 그 말을 듣고 눈이 번쩍 트이는 것만 같았다. "참으로 좋은 方策을 알려 주셨소이다.
그러나 대왕께서 침전에 숨겨 두신 병부를 무슨 재주로 훔쳐 낼 수 있겠소?"
"大王의 총애를 받고 있는 如姬后宫은, 그것을 쉽게 훔쳐 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公子께서는
일찍이 여희 후궁의 부친 원수를 갚아 드린 일이 계셨기 때문에 공자께서 직접 부탁하시면,
여희는 두말 없이 병부를 훔쳐 낼 것이옵니다."그도 그럴 성싶었다.
여희는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에게 원수를 갚지 못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信陵君은 의협심을 일으켜 원수를 갚게 해준 일이 있었던 것이다.
信陵君은 侯生 노인의 지시대로, 如姬 後宫을 만나 부탁하니, 여희는 그날 밤으로 兵符를 훔쳐 내왔다.
신릉군은 크게 기뻐하며 병부를 가지고 일선으로 달려 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후생 노인이 옷소매를 움켜쥐며 다시 말한다."장수가 일선에 나가 있을 때에는,
사정 여하에 따라서는 王命에 服从하지 않아도 무방할 경우가 있사옵니다.
사태가 그렇게 되면 부득이 晋鄙 장군을 죽여 없앨 수 밖에 없겠으니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푸줏간의 朱亥라는 청년을 꼭 데리고 나가시옵소서.""그 사람이 나를 따라가 주겠습니까?"
"公子께서 직접 찾아가 사정을 말씀하시면 반드시 따라 나설 것이옵니다."
신릉군은 후생 노인의 말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부랴부랴 푸줏간으로 주해를 만나려 갔다.
주해는 마침 푸줏간에 있었다.그러나 그는 신릉군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여전히 퉁명스러운 어조로,
"오늘은 왜 또 오셨소?"하고 대뜸 쏘아 붙인다. 신릉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찾아온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주해는 신릉군의 설명을 묵묵히 듣고 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던지고
옷을 갈아 입으며 결연히 말했다."그런 일로 오셨다면 따라 가겠습니다."
义를 위해서는 주저함이 없는 주해였다.주해와 함께 길을 떠나려니까, 후생 노인이 전송을 따라 나선다.
"빨리 가야 하겠으니, 선생은 그만 돌아가시오."
후생 노인과 作别을 고하는 신릉군의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생 노인은 그 눈물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묻는다. "공자께서는 죽음이 두려워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옵니까?""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첫째는 大王의 뜻을 거역하는 不忠 때문이고, 둘째는 국가에 공로가 많은 晋鄙 장군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슬픔 때문입니다."후생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진실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그러나 忠诚에도 大忠이 있고, 小忠이 있는 法이옵니다.
대충을 위해 소충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옵니다.大王께서도 公子의 높으신 뜻을 언젠가는
이해해 주실 날이 반드시 계실 것이니 안심하고 떠나시옵서소." 그리고 10여리를 따라 나오다가
作别人事를 고한다."소생도 公子를 따라 가고 싶사오나 너무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겠기에
이만 돌아 가겠습니다.그러나 公子를 따르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晋鄙 将軍을
살해하고 군사를 넘겨 받으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저는 공자의 成功을 비는 마음에서
그날로 목숨을 끊어 버리겠습니다." (侯生노인은 그 後, 자기가 약속한 대로 自杀을 하였다)
信陵君은 부랴부랴 일선으로 달려가서 진비 장군에게 兵符을 내보이며 军事를 물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晋鄙 장군은 군대를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国境을 수비하는 것은 大王께서 나에게 부과하신 거룩한 책무요.
그런데 공자께서는 诏书도 없이 兵符 한 조각만 가지고 오셔서 다짜고짜로 군대를 맡겨 달라고 하시니,
제가 그 말씀을 어떻게 믿고 군대를 맡겨 드리겠습니까?"말인즉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朱亥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몸에 숨겨 두었던 40斤짜리 铁槌를 꺼내어 진비 장군을 살해하고
10만 대군의 사령관으로 취임하자, 모든 군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布告文을 발표했다.
"너희들 중에 父子가 같이 나온 사람이 있거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고, 兄弟가 같이 나온 사람이 있거든
兄은 돌아가고 아우만 남으라,그리고 외아들인 사람도 집에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도록 하라."
그 모양으로 민심을 돌려놓으니, 10만 軍事가 8만으로 줄어 들었다. 그러나 8만 군사들은 지휘관의
자애로운 온정에 감동되어 사기가 크게 앙양되었다.그 무렵, 秦軍은 趙都 邯郸城을 겹겹이 포위하고
성 안에 우박같은 攻击을 퍼부어서, 邯郸城의 함락은 경각에 처해 있었다.
1-023편에 계속
초한지(楚汉志) 1-023
*信陵君이 秦军에게 后方으로부터 전격적으로 기습을 감행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临戦无退의 전통을 자랑하던 秦军도 이 때만은 여지없이 패주하였다.
信陵君은 승승장구하던 秦军을 철저히 때려부수고 커다란 승전가를 울렸던 것이다.
趙王은 신릉군과 그의 군사들을 城 안으로 정중하게 맞아들이며 말한다.
"公子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秦军의 발굽에 짓밟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平原君도 信陵君의 손을 마주 잡고 눈물로 감사한다.
그런데 신릉군은 王名을 사칭하고 军事를 무단으로 몰고 왔기 때문에 故国에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军事만 돌려보내고 信陵君 자신은 趙나라에 남아 있게 되자,
趙王은 信陵君을 5개 城市의 领主로 정하여 생활을 보장해 주려 하였다.
그러나, 신릉군을 따라온 식객 하나가 이렇게 간한다.
"무릇 모든 사물에는 잊어 버려야 할 일과 잊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 있는 법이옵니다.
公子께서는 남에게 덕을 베푸신 일은 하루속히 잊어 버려야 할 일이옵고,
상감의 뜻을 거역하여 晋鄙 将军을 살해하고 军事를 빼앗아 왔던 일은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옵니다.
그런데 公子께서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일은 잊어버리시고, 잊어버리셔야 할 일에 대한 공로로서
5개 城市에 领主가 되신다고 하니 그것은 크게 옳지 못한 일이옵니다."
信陵君은 그 말에서 크게 깨달은 바 있어, 领主로 취임할 것을 깨끗이 사양하고 오로지 兵学
연구에만 몰두하였다.그리하여 몇 해 후에는 훌륭한 병서 한 권을 저술해 놓았다.
한편 秦军은 信陵君에게 참패하고 돌아가자 信陵君을 숫제 없애 버릴 생각에서,
魏나라에 많은 첩자들을 밀파하여 갖은 유언비어로 신릉군을 음해하기 시작했다.
"信陵君은 魏王을 내쫓고 자기가 王位에 오르기 위하여 지금 趙나라에 머물면서, 魏의 诸侯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이다."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秦나라의 밀정들이 퍼뜨려 놓은 모략이었다.
魏王은 그런 소문이 귀에 들어오자 크게 노하여 榜文까지 붙였다.
信陵君은 멀리서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괴로운 심회를 금할 길이 없어 날마다 술로 보내고 있었다.
한편, 秦의 荘襄王은 趙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원한이 골수에 맺혀서 趙를 치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두번째로 정벌군을 출정시켰는데, 난데없는 魏军의 기습으로
참패하고 돌아왔으므로 이번에는 魏에 대한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丞相 吕不韋를 비롯하여 모든 장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 말했다.
"우리는 趙를 치려고 했는데, 魏가 후방으로부터 우리를 기습해 왔다니, 그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军事 20만을 줄테니 누가 나가서 魏을 격파하도록 하시오."
대장 蒙骜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신이 魏를 격파하여 大王의 진노를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몽오는 그날로 2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여 魏의 도성인 大梁城 30리 밖에 진을 치고 일거에
함락시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魏의 중신들이 크게 놀라 왕에게 고한다."秦将 蒙骜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30리 밖에 와 있으니 군사를 속히 출동시켜 적을 격퇴시켜 버려야 하겠습니다."
魏王은 대경 실색하며 伪公, 假公의 두 장수를 불러 명한다.
"그대들에게 군사 5만을 줄테니 속히 나가 적을 격퇴시켜 주시오."
그러나 伪公과 假公은 蒙骜 장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10여 합씩 싸워 보다가 급히 쫓겨
돌아와 魏王에게 보고 한다.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사오니 城门을 굳게 걸어 잠그고
새로운 계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魏王은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
"아아, 나라를 지켜 줄 장수가 한 명도 없으니, 이 어찌 했으면 좋단 말이오."
그러자 伪公 과 假公 모두 품한다."나라를 구출할 능력을 가진 분은 지금 趙나라에
가 계신 信陵君 밖에 없사옵니다.그 公子님이 晋鄙 장군을 죽이고 军事를 빼앗아 간 것은
趙나라를 돕기 위한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합니다.그러므로 지금이라도 大王께서 친서를 보내시어
귀국하라는 분부를 내리시면 信陵君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돌아 오실 것이옵니다."
魏王은 사정이 워낙 다급한지라 信陵君 앞으로 친서를 써 주면서 말한다.
"그대들이 이 편지를 직접 가지고 가서 信陵君을 급히 데려 오도록 해 보시오."
두 사람은 친서를 휴대하고, 바로 趙나라로 신릉군을 찾아 갔다.
信陵君은 王의 친서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나는 趙나라를 돕기 위해 부득이 晋邯 将军을 죽이고
军事를 빼앗아 갔던 것이오. 그러나 大王께서는 나를 역적으로 여기셔서 나의 목에 천만 대금의
상금까지 걸어 놓았다고 하니, 내가 돌아가 본들 어찌 무사할 수가 있겠소."
신릉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신릉군이 귀국을 거절할 기색을 보이자 毛元 薛义
두 식객들이 즉석에서 이렇게 간한다.
"公子께서 오늘날 만인에게 추앙을 받아 오시는 것은 국가에 충성스러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秦军이 도성을 점령하고 魏国의 종묘 사직을 불살라 버리면, 公子는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으오리까.그러므로 빨리 귀국하셔서 나라를 구출하셔야 합니다."
신릉군은 그 충고에서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부랴부랴 귀국 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魏王앞에 엎드려 고한다."臣은 백 번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사온데,
大王께서는 至亲의 정으로 용서를 내려 주셔서 홍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제 臣은 诸侯들과 힘을 합하여 적을 기필코 격파해 버리고 말겠습니다."
눈물을 보인 魏王은 아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贤弟를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은 나의 不明 때문이었소.
오늘로서 경을 上将军에 임명하니, 적을 무찔러 나라를 구해 주기 바라오."
信陵君은 谢恩肃拜하고 어전을 물러나오자, 곧 楚,燕,韩, 齐, 趙 등 다섯 나라에
사신을 급파하여 六国联盟으로 秦에 대항할 것을 호소하였다.
信陵君은 평소에도 모든 나라에 신망이 두터웠던 까닭에 다섯 나라에서는 각각 응원군 5만명씩을
보내왔다.신릉군은 联合军 총사령관의 직책을 띠고 秦军과 대전하게 되었다.
秦将 蒙骜가 그 소식을 듣고 先制攻击을 가해 왔다.
신릉군은 30만 大军을 거느리고 마주 달려 나와 싸우는데, 양군은 30합이 넘도록 胜负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신릉군은 젊은 병사 한 명을 적의 哨马로 가장 시켜 가지고 몽오 장군에게 달려가서,
"大王께서 急逝하셔서 军事를 거두어 가지고 급히 회군하라는 전갈이 本国에서 왔사옵니다."
하고 말하게 하니 蒙骜 将军 은 크게 놀라며 사기가 갑자기 저하 하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攻击을 맹렬히 퍼부으니 秦军은 형편없이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联合军은 간단한 모략 하나로 大胜을 거둘 수 있었다.
몽오는 급히 회군하여 알고 보니, 모든 것이 적의 계략이 아닌가?
荘襄王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여섯 나라가 공동으로 덤벼 왔다면, 이제부터 여섯 나라는
모두가 우리의 적이다.나는 여섯 나라를 모조리 정복하리라."
그러나 荘襄王은 그날부터 울화가 사무쳐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 하더니,
마침내 信陵君이 모략한 대로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吕不韋의 아들인 太子 政이 등극하였으니 이때 新王의 나이는 13岁였다.
1-02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