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멋장이 시인 소동파가 그의 시에서 "유림의 술이 빼어나고 동호의 버들이 아름답다.
(柳林酒東湖柳)"라고 읊은 적이 있는데 여기서 유림의 술이란 바로 서봉주를 말하는 것이다.
동호는 항주(杭州)의 서호와 마찬가지로 소동파가 백성들의 농사짓기를 돕기 위해
인공으로 파서 만든 호수이거니와 그 둘레에 심은 버드나무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유림의 술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당나라 고종때 이부시랑(吏部侍郞) 벼슬을 살던 배행검(裵行儉)이라는 이가
당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페르샤 왕자 일행을 전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봉상(鳳翔)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오래 묵은 술내음이 바람결에 진하게 퍼지더니 눈앞에 날던 벌이며
나비가 땅위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기이하게 생각한 배행검이
원인을 알아보라 일렀더니 시오리밖 유림진(柳林鎭)의 어떤 사람이 집을 수리하려고
땅을 파다가 삼백년이나 묵은 술독을 발견하여 여러 사람들이 나누고 마시는 참이었다는 것이다.
이 술의 향이 바람을 타고 퍼지면서 벌과 나비도 취해 떨어진 것이었다.
이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소동파가 이곳에 부임하자 식도락가로서 한말씀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다른 시에 "꽃이 피어 좋은 술을 마시니 어찌 취하지 않으리(花開美酒曷不醉)"라는 귀절이 있는데
여기서 좋은 술도 마찬가지로 서봉주를 일컫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면 서봉주의 병 도안에 들어있는 용과 봉황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열선전(列仙傳)이라는 책에 보면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의 딸 농옥(弄玉)과
그녀의 남편 소사(蕭史)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들은 둘다 피리를 잘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까지 흉내를 낼 수 있었다는데
어느날 피리를 불어 용과 봉황을 불러 이를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시훵지우의 도안은 여기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 한다.
언젠가 필자가 상해에서 운남(雲南, 윈난)으로 야간 열차를 타고 갈 때의 일이다.
출출한 생각이 들어 식당칸을 찾았더니 이미 자리가 모두 차있어 두리번거리다가
젊은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는 탁자의 맞은편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비록 옷은 남루하지만 그들 부부는 밝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오손도손 대화를 하고 있어
아름답게 보였는데 남편되는 사람은 반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중국의 기차에서는 맥주를 제외한 독주는 팔지 않는다.
맥주를 마시며 상대편의 진한 술내음을 맡으니 맥주맛이 제맛이 아니다.
이쪽의 사정을 눈치챘음인가. 그는 나에게 한잔을 권해왔다. 이 술이 바로 서봉주였다.
중국이나 우리나 술인심 좋기는 매한가지.
권커니 잣커니하면서 술병을 비우자 그는 또 한병을 꺼내 놓았다.
그의 이야기로는 중국의 보통사람들에게 있어 마오타이나 오량액(五粮液)은
너무 비싸므로 서봉주가 가장 인기가 높으며 기차에서는 독주를 팔지 아니하므로
여행시에는 이렇게 몇병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한밤에 기차안에서 잠깐 만난 인연이지만 그날의 추억이 새로워
훗날 예쁜 달력을 구해 운남의 그의 집으로 부쳐 주었지만 아직 회신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이 농옥과 소사의 변신인 탓에 받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펀 글)
****서안에서 가이드에게 물으니 서봉주가 그곳의 명주라고 했다.
나는 중국돈으로 100위엔에 두병이라는 점원의 말에 흥정을 잘 하여서
우리나라 돈 만원에 두 병을 사려했는데 백사가 짐스럽다며
하나만 사자고 하여 깎아서 중국 돈 30위엔을 주고
한 병을 사왔다.
집에 와서 마셔보니 지금껏 마신 마오타이를 비롯하여 그 어느
비싼 양주보다 참 좋았다.
우리 돈 오천원 정도로 그런 좋은 술을 살 수 있다니......
백사와 나는 한병 더 사오지 않은 것을
무지무지 후회하며 술 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