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 이화주
한 대학생 누나
너무 배고파
메추리알, 우유, 김치, 핫바
6650 원어치 훔쳤다고 한다.
설 때도 고향집에
아무도 없는 누나
누나의 가난을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
누나의 슬픔을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
'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라니 무슨 말일까요? 설마 시인이 나쁜 짓을 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정말로 누가 훔쳐 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대학생인 누나가 도둑질을 했어요. 대학생이면 양심과 지성을 갖춘 사람인데 그런 누나가 도둑질을 했다니 선뜻 믿기지 않습니다.
누나가 훔친 것은 ‘메추리알, 우유, 김치, 핫바’랍니다. 가격을 전부 합하면 6650 원어치이지요.
왜 훔쳤느냐고요?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누나가 물건을 훔친 이유를 알고 보니까 너무 기가 막힙니다.
물론 훔치는 행위는 이유야 어떻든 나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지요. 그런데 누나를 나쁘다고 말하기 전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심이 먼저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설 때도 고향집에 아무도 없다고 하니 누나네 집안 사정이 어떤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시인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낀 거지요.
배고픔의 고통과 서러움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른다고 해요. ‘가난’만 아니었으면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지냈을지도 모를 누나입니다. 그런 누나가 먹을 것을 훔치게 된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이 시를 낳았습니다.
가난이나 슬픔은 사람을 깊은 절망에 빠뜨리고 순간적인 잘못도 저지르게 하지요. 시인은 이것들을 훔쳐가라고 함으로써 복잡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나에게는 그동안 슬픈 일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러나 시인은 ‘설 때도 고향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만 밝힘으로써 더 많은 딱한 이야기를 추측하게 하고 있어요.
가난과 슬픔뿐 아니라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모든 것은 누군가 모조리 훔쳐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자라서 그런 보람 있는 일을 하는 도둑 아닌 도둑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전병호(시인ㆍ아동 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