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내로 내려서서
삼월 중순이 훌쩍 지난다. 일요일을 맞아 토요일에 이어 연속으로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서북산 일대로 운행하는 73번 버스를 탔다. 그쪽 방면 버스 번호는 외우기가 쉽다. 70번과 71번은 진동까지 간다. 이후 버스는 진동에서 서북산 기준 서쪽으로 옮겨가면서 골짜기마다 번호가 다르다. 72번은 대현, 73번은 서북동, 74번은 의림사, 75번은 상평, 76번은 둔덕, 77번은 정곡이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에는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갖가지 푸성귀들이 보였다. 마산역 광장은 주말 예식장으로 가는 전세버스 출발지다. 산악회나 동창회에서 산행을 가는 집결지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버스와는 관심이 없다. 구산이나 삼진 농어촌으로 다니는 녹색버스를 타기 위함이다. 여러 노선 가운데 서북동 73번을 골랐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두름은 다른 노선과 겹쳐졌다.
진동 환승장에서 진북 면소재를 지나 덕곡천 따라 올랐다. 이목과 금산을 지나 학동이었다. 영동 영학리를 지난 서북동 종점에서 내린 승객은 나 혼자였다. 인적 드문 산간 계곡 임도를 걷고 싶어 길을 나섰다. 발품을 팔아 길을 떠난 만큼 공기 청정한 산자락은 더 가까웠다. 종점에서 가야사와 구원사 앞으로 올랐다. 임도 들머리 산기슭에는 종단이 다른 작은 절이 나란히 있었다.
잦은 봄비에 수목들은 잎이 돋을 채비를 하였다. 찔레나무나 오리나무에서 잎이 먼저 돋아났다. 의림사 계곡 인성산 응달에서도 보았는데 서북동 임도에서도 삼지닥나무가 특이한 모양의 꽃을 피웠다. 가지가 갈라지는 곳마다 고깔을 매달아 둔 것처럼 꽃망울을 달았다. 길섶에는 산국 순이 움 트고 있었다. 산국과 잎맥이 비슷한 쑥도 보여 몇 줌 캐 모으면서 쉬엄쉬엄 걸어 올랐다.
종점에서 얼마간 오른 산허리에 부재와 감재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왔다. 서쪽으로 한참 가면 부재로 다시 의림사와 부재골로 나뉜다. 동쪽으로는 감재로 함안 여항 버드내다. 나는 감재로 들었다. 가랑잎이 쌓인 길섶엔 산괴불주머니가 꽃을 피웠다. 꽃송이가 탑처럼 생겨 밑에서부터 위로 오르면서 피는 꽃이었다. 들녘에서 피는 괴불주머니보다 산괴불주머니가 일찍 꽃을 일찍 피웠다.
감재 못 미쳐 금산 편백나무 숲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편백나무 숲으로 가질 않고 감재 고개를 넘었다. 감재 고개 나뭇가지엔 서북산과 봉화산으로 다녔던 등산객들이 매단 깃이 가득 달려 있었다. 고개를 내려서니 왼쪽은 법륜사 방향이고 오른쪽은 좌촌주차장 방향이었다. 둘 다 아주 길고 긴 임도로 여항산 둘레길이다. 나는 몇 차례 다녀본 길이라 주변 지형지물에 익숙하였다.
감재에서 버드내를 향해 내려섰다. 화전민처럼 산중에 생활하는 한 농가가 나왔다. 방목시켜 키우는 흑염소들이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지정 등산로가 아닌 사유지 농로를 지나 버드내로 갔다. 버드내는 별천을 달리 부르는 마을 이름이었다. 군내버스가 들어왔다가 되돌아가는 지점은 한국전쟁 때 격전지로 그 당시 희생된 장병과 지역민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외암초등학교 별천분교 터는 학생수련장으로 바뀌었다가 그마저 운영이 되지 않아 묵혀두었다. 농촌에 아이들이 없으니 폐가처럼 방치되었다. 주서에서 주동을 거쳐 봉성저수지를 두르는 산책로를 걸었다. 청청한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다. 저수지 수면과 산골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데크에 퍼질러 앉아 도시락을 비웠다. 함안 면소재지까지 걸어야 할 길이 아직 제법 남았다.
봉성 들판에는 농촌진흥청 산하 시설원예연구소가 나타났다. 규모가 큰 마을 안길을 지나 함안역에 이르렀다. 목포에서 부산으로 하루 한 차례 오가는 열차 도착 시각은 두 시간이 남았다. 나는 열차표를 끊어 놓고 할 일이 있었다. 아까 산중에서 캐던 쑥을 더 캐 모았다. 쑥을 캐다 보니 봄이 되어 알뿌리가 토실해진 달래도 몇 줌 캤다. 일용할 찬거리로 봄내를 맡을 수 있지 싶었다. 18.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