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5](수) [동녘이야기]
[동녘글밭] 횃불, 촛불, 빛의 혁명
https://youtu.be/8HUVwuDh_L0
12.3 내란 사태는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상태입니다. 불법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시작은 했지만, 아직 그 내란범 우두머리인 대통령 윤석열을 체포하지 못하여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입니다.
불법인 까닭은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해야 할 ’사회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계엄령은 나라의 안전과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헌법이 인정한 비상조치입니다. 그렇기에 법률적 요건이 엄격하게 요구됩니다.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만 선포할 수 있지요. 단순한 정치적 혼란이나 일반적인 사회 불안으로는 계엄령을 선포할 수가 없읍니다. 군사력을 동원하여 공공의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야만 합니다.
둘째는 정식으로 거쳐야 할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률적으로 필요한 국무위원 숫자만 채운 채 서둘러 선포하는 데에만 급급해 보였으며 갖추어야 할 회의록 조차도 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를 간파한 민주당은 즉각,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이며 본질에서는 쿠데타’라는 입장을 외신에 배포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불법 비상계엄령 선포가 ‘불법’이긴 하지만 이를 두고 여유있게 다툴 수가 없는 상황에서 국회는 적법하게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인 190명의 찬성으로 계엄령 해제를 결의하여 그 해제를 요구하였으며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해제를 공고했읍니다. 결국, 이 계엄령은 선포된지 2시간 30분만에 계엄령 해제 요구안이 결의되었으며 이어 2시간 후에 계엄령이 해제된 것으로 불행 중 다행입니다. 여기에는 민주 의지를 지닌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의원 보좌관들과 국회로 달려와 함께 힘을 모아 저항했던 수많은 민주 백성들의 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현대사인 짧은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랜 왕정을 마감하고, 민주 공화정을 시작했는데 그 싯점을 1894년 ‘동학혁명’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혁명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인 ‘3.1혁명’으로 이어졌고, 한 달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읍니다. 그후 도둑같이 찾아온 독립과 대한민국 첫 정부가 수립되었지요. 이때까지의 혁명을 ‘횃불혁명’으로 보면 좋을 듯싶습니다.
그후 독재정치 시대가 열렸읍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윤보선∙장면 정권을 넘어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탄생하여 유신 독재정치로 이어 갔으며 다행히도 1997년 김재규의 총탄에 의하여 박정희는 제거되었읍니다. 곧 이어 ‘1212 군사쿠데타’를 거치면서 ‘5.18 빛고을 광주민주항쟁’을 겪었고 결국, 전두환 군부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87 민주항쟁’을 치르면서 대통령 5년 단임제로 상징되는 최소의 민주화가 정착되기 시작했읍니다. 그 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시대를 열어갔으며 박근혜에 이르러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터무니없는 국정운영으로 ‘촛불혁명‘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탄핵되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잘 정착되었다고 싶었던 우리의 정치는 또 한 차례 시련을 겪고 있는 오늘입니다. 어쩌다 ’윤석열 검찰 무당정권‘이 출범한 것이지요. 생각지도 못한 불법 계엄령이 터져 그 우두머리인 윤석열을 지금, 체포 중입니다. 계엄령 해제 이후, 불법 내란 우두머리인 윤석열을 탄핵하는 일도 국짐당의 방해로 쉽지 않았지만 이때 시위봉을 들고 모여들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힘으로 간신히 통과되었읍니다. ’촛불혁명‘ 이후 지금도 한창 혁명 중에 있는데 이때까지의 혁명을 ’빛의혁명‘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이런 오늘도 횃불에서 촛불로, 빛으로 진화하는 혁명을 지켜 봅니다. 정말, 고마워요.
첫댓글 지금, 막 내란범 우두머리인 윤석열이 체포되는 순간입니다.
최종 마지막 단계에 있네요.
오늘 글밭은 '횃불, 촛불, 빛의 혁명'입니다.
우리의 짧은 역사를 살펴 본 것이지요.
시대 구분을 그렇게 해 본 것입니다.
거기에 제 마음을 담았읍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