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신앙, 또한 같은 선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에 거하는 삶,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에 합당한 신앙에 있어 추상적이거나 희미하거나 혼동되어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그 반대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누리기는커녕 진노가 되며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들에 대해 아래 본문이 있는 유다서에서 군데군데 분명하게 잘 증거되어 있는데..
특히 유다서 1장 7절에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죄악들에 대해 얼마나 진노하시고 어떻게까지 형벌하시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유다서 1장 15절에서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경건에 반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로까지 심판하시고 정죄하시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유다서 1장 20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그 자신을 세우기를 원하시고 성령님으로 기도할 것을 명령하시는데..
실상 그렇게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성령님께서 말씀의 영이시기에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생생하게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믿음, 곧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에서의 기도인 것이며, 게다가 성령충만에 합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에 약속되신 대로, 더욱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라고 선포되고 증거되며 강조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있어서의 근본과 핵심과 실제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으로 그에 있어서의 모든 접점과 통로와 열쇠는 구주 예수님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원론적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위해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주관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때부터 우리 인생들이 죄악으로 인해 그러한 말씀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된 것이고, 관계가 완전히 깨어진 것이며, 영광을 심각하게 가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데..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와 진노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우리 인생들이 구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때 실질적으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뀔 수 있게 하시는 것이며, 그러한 처음의 믿음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자 우선이며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은 채로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사는 동안 얼마든지, 실제로 적잖이 옛 사람과 같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시간까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게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누구라도, 진정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위치와 직분과 영향력 가운데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더 이상의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신앙과 삶이 말씀이신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 것이고, 또한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에도 합당한 것이며, 더군다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신앙과 삶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정말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들에,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에 있어 참으로 합당하고도 또 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유다서1:2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20일(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