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汉志) 1-028
。五国同盟
그 무렵, 秦나라의 영토는 광범하기 이를데 없었다. 북방 경계선은 멀리 胡岭, 谷口의
要衝에까지 이르렀고,남방으로는 经水(扬子江 支流)와 渭水(黄河 上流)의 沃土를 비롯하여
巴와 汉中의 富를 독점하였고, 서쪽으로는 陇과西蜀의 태산 준령이 자연의 要塞가 되어 주었고,
동쪽으로는 函谷关과孝山등이 천연적으로 难攻不落의城砦가 되었다.
따라서 남을 참략하기는 쉬워도 남에게 침략을 당할 걱정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군사는 막강하고 무기도 풍부하였다.그러면 中原의黄河流域의 여섯나라 실정등은
어떠했던가.그들 여섯나라는 黄河流域의 비옥한 평야에 소재하는 데다가 기후마저 온화하여,
백성들은 농사를 지어 먹기가 이상적이었고,人文 또한 일찍부터 발달하여 文化가 찬란하게
개화되어 있었다. 趙,魏,韓,楚,齐 등이 모두 그러하였다.
다만 그들의 영토가 비좁고 병력이 미약하여 秦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秦이 중원제국을 삼켜 먹고 싶은 욕망이 꿀뚝같이 솟구쳐 올랐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그러기에 일찌기 소양왕은 六国을 并呑하고 싶은 야욕에서 70평생을
战野에서 보낸 바 있었거니와,소년 왕 政도 증조할아버지의 뜻을 물러받아 가지고 등극한 그 날부터
统一天下의 야망이 불타 오르고 있었다.그리하여 진작부터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 훈련을
계속해 오면서, 시간만 있으면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전국을 순회하며 内政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이에 비해 너무도 숙성한 소년 王 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소년 왕이 등극한지 3년만인 15살 나던 해의 생일날이 왔다.
소년 왕은 생일 축하연 석상에서 만조 백관들에게 돌연 다음과 같은 폭탄 선언을 선포하였다.
"내 나이 이미 열다섯살, 男兒 열다섯이면 당당한 대장부이건만, 나는 아직 영토를 寸土도
확장하지 못했고. 이는 진실로 선왕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오.
이에 결심한 바 있어, 올해에는 우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韩을쳐서 영토를 넓혀 나갈 터이니,
경들은 나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라오."열다섯짜리 소년으로서는 너무도 당돌하고
엄청난 선언이었다.(피는 속이지 못한다더니, 이 아이는 나의 핏줄을 이어 받아서 배짱이
엄청나기도 하구나.)丞相吕不韋는 소년 王의 패기에 어깨가 으쓱해 오도록 기뻤다.
그러면서도 즉흥적인 선언이 너무도 무모해 보여 충고를 해줄 생각에서,"大王殿下!실은....."
하고 입을 열려고 하자, 소년 왕은 손을 들어"나의 명령에는 오직 복종이 있을 뿐이요.
승상은 입을 다물어 주시오."하고 일언지하에 입을 틀어 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왕의 명령은 절대권을 가진다."어린 소년에게 그와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준 사람이
다른 사람 아닌 여불위 자신이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런 식으로 교육을 시켜 놓아야만 휴일에
자기한테도 유리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그것이 아니었다.
소년을 절대권자로 만들어 놓은 이제 와서는 자기가 아비라는 사실조차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그의 명령에는 자기 자신도 무조건으로 복종을 아니 할 수가 없게 되지 않았는가.
그야말로自绳自缚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그야 어쨌건, 蒙骜将军은 왕명에 의하여
10만军을 거느리고 나가 한판 싸워서 13개 城邑을 일거에 탈취하였다.
그 싸움에서 대장 王倚가 전사를 했으나 그런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秦王은 첫번째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자, 이듬해에는 魏을 쳐서 畅,有诡 등의 광범위한 위토를
탈취하였고,다음해에는 위를 다시 쳐서 酸枣城을 빼앗아 버렸다.
또 그 다음 해에는 燕을 침략하여 上阳城을 비롯한 20여개 城邑을 빼앗아 东郡이라 부르게 하였다.
청년 秦王은 몇번 싸움에서 자신감이 생기자, 그때부터는 참략의 마수를 닥치는대로
내뻗기 시작했다.사태가 그렇게 되고 보니 인접 국가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날 楚의孝烈王이 재상 春申君을 불러 상의한다. "변방의 이리(秦)가 지금은 비록 魏와
燕만을 침략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한테도 마수를 뻗어 올 모양인데 재상은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춘신군은 식객을 3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인지라,
그는 왕에게 이렇게 대답한다.“秦의 목적은 天下를 统一하는데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우리한테도 침략의 마수를 뻗어 올 것은 明若观火한 일이옵니다.”
“만약 그런 경우에는 우리만의 힘으로는 <변방의 이리>를 당해 내기가 어려울 것이 아니오?"
"물론 그렇습니다.그러므로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대책이라면, 어떤 것이 있겠소?"
"우리가 선수를 쳐서 秦을 쳐서 없애야 하옵는데, 그러자면 趙,魏,燕,등과 军事同盟을 맺어
가지고 秦을 공동으로 쳐부술 밖에 없사옵니다.""그들이 우리의 말을 쉽게 들어 줄까요?"
"평화시라면 어렵겠지만, 燕과韩은 지금 당장 진의 침략에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므로,
우리가 군사동맹을 제시하면,그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옵니다."
"모든 일에는 사전 대비가 최상이니까 그러면 경이 그 일을 시급히 추진해 보아 주시오."
이리하여 春申君은 军事同盟의 중책을 띠고 4개국 순방의 길에 올랐다. 춘신군의 군사동맹 제안은
가는 곳마다 대환영을 받았다.그도 그럴 것이, 침략자秦을 치기위해 군사동맹을 맺자고 하는데,
어느 나라가 싫다고 할 것인가.자기네가 살기 위해서도 군사동맹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군사동맹이 체결되자, 연합군은 秦王 6년에 드디어 秦을 치려고 출동하였다.
1-029편에 계속
초한지(楚汉志) 1-029
趙. 韩. 燕은 각각 军事 5만 명씩을 차출하였고,魏는 10만명을 파견하였고, 楚는 15만명을 동원하였다.
春申君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征秦의 길에 올랐다.그리하여 진의 전초기지인 寿陵城으로 노도와
같이 쳐들어가니 城主王龁이 크게 패하여 城을 포기하고 咸阳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에 연합군은 기세를 올려, 函谷关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한편 수릉 성주 왕흘은 함양으로 도망해서,
어전에 엎드려서,"衆寡不敌으로 어쩔수 없이 城을 내주었사오니, 大王께서는 엄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고 석고대죄하니, 秦王은 위로의 말을 하면서, "일승일패는 병가의 상사인대, 한번쯤 패했다고
어찌 그대를 처벌하리오."그리고 어전에 시립해 있는 군신들을 둘러보며 묻는다.
적의 五合之卒이 40만명이나 된다고 하니, 누가 저들을 섬멸시키겠소?""그 임무를 소신에게 맡겨
주시옵소서."蒙오. 王翦, 章邯의 세 장수가 약속이나 한듯이 입을 모아 말하였다.
秦王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모두들 장하기도 하구료, 그러면 세분에게 각각 10만 명씩을 줄 테니,
函谷关 守将인 蒙武 장군과 협력하여, 적을 일거에 섬멸시키도록 하시오.
이번 싸움에 승리하면, 天下를统一하는데 좋은 촉진제가 될 것이니,그런 줄 알고 분투 노력해
주기바라오."이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는 말투부터가 당당한 大王이었다.
세 장수는 각각 10만 명씩을 거느리고 함곡관으로 달려나와, 적에게 삼면에서 무지무지한 공격을
퍼부었다.연합군은 본시가 모듬 군사들인지라,배후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제각기
패주하기에 바빴다.총사령관인 春申君만은 고군분투했으나, 秦军의 공세가 워낙 맹렬하여 필경에는
2백여 리나 쫓겨나고 말았다.결국 전쟁은 진군의 대승리로 끝났다.
진왕은 일선에서 보내온 개선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丞相吕不韋를 불러 말했다.
"5개국 연합군이 우리의 일격에 패주했으니, 이제 天上天下에 우리를 당할 자 누가 있으리오.
天下를 统一할 날이 머지 않은것 같은데, 경은 그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불위는 너무도 엄청난 질문에 대답이 궁색하였다. 천하통일이란 몇십 년이 걸려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그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장담하고 있으니,어떻게 대답해야 옳다는 말인가.
여불위로 보면, 연합군을 한번 무찌른 것을 가지고 통일천하와 직결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誇大望想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대답을 주저하고 있노라니까, 왕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꾸짖듯이 다그쳐 묻는다. "승상은 왜 대답이 없으시오.
천하를 통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어서 대답을 안하는 것이오?" 여불위는 크게 당황하여,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며,"아, 아니옵니다.
대왕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인들 불가능하시겠습니까.
신은 다만, 천하 통일이 몇 달 후에 가능할까, 그 점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대답이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왔다.비위에 거슬리는 대답을 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것만 같아, 무심중에 아첨하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청년 王은 그 말이 마음에 드는지,
돌연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몇 달 후요? 하하하....., 우리가 아무리 강하기로, 몇 달 안으로
천하를 통일하기는 어려울 것이오.천하를 통일하자면, 아무리 줄잡아도 10년은 걸려야 할 것이오."
"아 아니옵니다.大王의 위력이라면, 천하를 통일하는데 무슨 10년이 걸리겠습니까?"
"하하하, 아무튼 고맙소.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나는 기어이 천하를 통일하고야 말 것이오"
여불위는 어전을 물러 나오면서, 너무도 비겁해진 자기 자신에 환멸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나는 왜 나답지 못하게 이다지도 비겁한 인간이 되어 버렸을까.
내 자식한테 아비라는 말조차 못 하고, 벌벌 떨기만 하게 되었으니, 나는 왜 이다지도 못난 인간으로
전락한 것일까?"따지고 보면, 그처럼 비겁하게 된 원인은, 영화를 누리게 된데 있는 것 같았다.
영화의 자리를 영구히 보존해 가려면, 임금 앞에서는 누구나 비겁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권력과 영화의 이면에는 그처럼 비겁한 생리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그런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布衣寒士로 지내던 옛날이 그리운 생각조차 없지 않았다.
그러나 驱从别陪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집에 돌아오자, 꽃다운 시녀들이 문전에서 아양을 떨며
영접해 주는 것이 결코 싫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여불위는 자기 모순에 빠져서 쓴 웃음을 웃으며, 자기 자신을 이렇게 자위하였다.
(임금이란 인간이 아니고 하나의 偶像인 것이다. 따라서 우상과 사람 사이에는 부자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임금을 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우상에게는 오직 복종이 있을 뿐이 아니던가.)
영화의 맛은 아편과 같아서, 한번 중독되면 좀처럼 떼지 못한다.여불위는 그러한 진리를
뻔히 알면서도, 영화를 길이 누리고 싶은 욕망에서, 비겁한 자신을 변호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1-030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