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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汉志) 1-032
*法治主义者李斯
여불위가 식객들을 3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말한바 있거니와,그 많은
식객들 중에서도 학문이 각별히 뛰어난 선비가 두 사람이 있었으니,한사람은 한나라 출신인
韩非였고,다른 한 사람은 초나라 출신인 李斯였다.
그들의 统治哲学论은 거의 비슷하여,위정자는 모름지기 法制를 개혁하여 나라를 법으로써 통치해
나가되 유능한 인재를 과감하게 등용하여 富国强兵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학설이 비슷한 관계로, 경쟁의식이 남달리 치열하였다. 그들의 장단점을 비교해 본다면,
한비는 문장력이 풍부하여 자기 학설을 논리적으로 절묘하게 전개해 나가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현실에 대한 적응력과 구변이 없는 것이 단점이었고,이사는 문장력이 부족한 단점이 있는 반면에
현실을 능수 능란하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므로 학문에 있어서는 한비가 언제나 이사보다 한걸음씩 앞서 나가고 있었다.(여기서 말하는
한비란, 오늘날 동양철학의 고전으로 되어있는 韩非子라는 명저를 저술한 바로 그사람이다.
지금 우리들은 일상 생활에서 矛盾이라는 말을 흔히 써오고 있는데, <모순>이라는 말을
지어 낸 사람도 다른 사람이 아닌 한비였다.이것은 여담이 되겠지만,
<모순>이라는 말이 생겨나게된 유래를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어느날 한비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노라니까,
창과 방패를 팔고있는 장사꾼이 이런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이 창(矛)으로 방패(盾)를 찌르면, 어떤 방패라도 반드시 뚫어지게 마련이오."
그리고 나서 다음 순간에는, 똑같은 입으로 "이 방패는 어떤 창으로 찔러도 결코 뚫어지지 아니한다오."
한비는 그말을 듣고 즉석에서, "여보시오,그렇다면 하나 물어봅시다.그 창으로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 질문에 장사꾼은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경우를 <矛盾>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것은 지금부터 2천 2백 삼십여 년전의 일이었지만, <모순>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이다.그야 어쨌든, 여불위는 3천 명의 식객들 중에서 두사람의 특출한 인재를
진왕에게 특별히 천거하였는데,그두 사람이 한비와 이사였다. 진왕은 두 사람을 모두 등용하기로 하고,
한비가 저술한 韩非子라는 책을 읽어보고 크게 감동하였다.
"이런 훌륭한 책을 저술한 학자라면높이 받아들여, 나의 스승으로 삼아야 하겠다. "
진왕의 입에서 그런 찬사가 나오자, 이사는 크게 놀랐다.그렇잖아도 평소부터
선후를 다투어 오던 판에,한비가 王师로 등용되는 날에는,자기 존재가 비참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이사는 어떤 모략을 해서라도,한비의 등용을 방해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나서서 모함하다가는 오히려 뒤잡힐 것 같아서 大夫耀嘉라는 친구를 내세워,
진왕에게 이렇게 품하게 하였다."우리는 머지않아 韩나라를 정벌할 계획이옵니다.
그런데 한나라의 선비인 韩非를 중용하셨다가, 휴일에 그가 우리를 배반하고 자기나라로 돌아가면
어찌 될 것이옵니까?어쩌면 한비는 우리의 내정을 염탐하려고 왔는지도 모르오니, 차제에 그를
엄벌를 처해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진왕은 그 말에 크게 놀라며,"그 자를 당장 하옥시켜라."
한비가 옥에 갇히자, 이사와 요가는 곧 독약을 보내 한비를 독살시키고 말았다.
진왕은 얼마 후에 생각을 달리하여 한비를 다시 만나 보려고 불렀으나, 그때에 한비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이사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이사는 본시 楚나라의上蔡라는 시골에서 하급 공무원으로 있던 사람이었다.
하루는 변소에 갔더니, 쥐란 놈이 똥을 먹다가 사람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에는 창고에 들렸더니,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공간에서 쥐란 놈이 곡식을
마음대로 파먹으며, 살이 피둥피둥 쪄 있는 것을 보았다.거기서 이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쥐는 다같은 쥐이건만, 어떤 쥐는 변소간에서 전전 긍긍하며 똥이나 주워먹고 있고, 어떤 쥐는
곡간 속에서 배불리 먹으며 유유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은 어디서 오는 차이일까.
결국은 그 쥐가 처해있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 아닌가.
사람도 그와 같은 것이니, 나는 가난한 공무원 생활을 때려 치우고,
대성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자.)그리하여 대학자였던 荀子를 찾아가 统治学을 배워가지고,
강대국인 진나라로 달려와 당대의 세도가인여불위의 식객이 되었던 것이다.
이사는 한비를 죽인뒤, 长史라는 벼슬에 오르자 秦王이天下统一의 야망에 불타고 있음을 알고
이렇게 품하였다."옛날부터 위대한 통치자는, 상대국의 혼란한 국정을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정벌해야 한다고 하였사옵니다.대왕의 능력으로서는 천하를 통일하기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라고 생각되오니, 때를 놓치지 마시도록 하시옵소서."
통일 천하의 야망에 불타고 있는 진왕에게는, 이사의 간언이 지극히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이사와 함께 통일천하를 하루속히 달성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사를 일약 客卿
(外国出身大臣)으로 등용하였다. 말하자면, 파격적인 대승격이었던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되고 보니, 진나라의 중신들은 불평이 없을 수 밖에 없었다. (이사라는 자가 어디서
굴러먹은 말 뼈다귀이길래, 남의 나라에 와서 대뜸 객경으로서 정치를 좌지우지 한단 말인가.)
진나라 중신들은 이사를 몰아 낼 공론을 하고 있는 중에, 마침 좋은 구실이 하나 생겼다.
그당시 진나라는 영토를 개발할 생각에서, 한나라의 유명한 水工인郑国이라는 사람의 권고를
받아들여 秦韩국경에 커다란 运河를 파고 있었다.토목 전문가인 정국의 말을 고지식하게 믿고
운하를 파기시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국이 그런 공사를 일으키도록 권장한 목적은,
순전히 자기나라의 国利를 도모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첫째,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키게 하여 진나라의 국력을 집중 소모시키면 국력이 약해져서
침략할 힘이 없어질 것이오,
둘째, 국경지대에 그와 같은 운하를 파 놓으면, 남에게 침략을 받을 경우에는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술책을 썼던 것이다.
그러한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나자, 진나라 중신들은 그 사건을 좋은 구실로 삼아,
이사를 쫓아내려고 진왕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문울 올렸다.무릇 외국인으로 진나라에 와서
벼슬을 하려는 자들은,모두가 자기나라의 국리를 도모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와 있는 자들이 오니,
대왕께서는국가의 장래를 위해, 차제에 그런 자들을 모조리 추방하시옵소서.
만약 그런 자들을 언제까지나 중용하시다가는 국가에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게 되실 것이 옵니다.
진왕은 그 상소문을 읽어보고 李斯를 추방하려고 하였다.
이사는 그런 기미를 알아채고, 즉시 秦王에게 다음과 같은 长文의上疏文을 올렸다.
臣이 듣자 옵건데, 근자에 일부의 우매한 중신들은 외국에서 온 관리들을 모조리 추방하려는 논의가
있는 듯싶사온데,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인 줄로 아뢰옵니다.일찍이缪公께서는 어진 선비를
널리 구하시어,由余를戎에서 취하셨고, 百里奚를宛에서 얻으셨고,蹇叔을 송나라에서 맞아 오셨고,
丕豹와公孙支를晋나라에서 불러 오셨습니다.
이상 다섯 사람은 모두가 외국인 이었지만 缪公은 그들의 보필을 받아, 秦나라를 오늘과 같은
강대국으로 키우신 것이옵니다.그리고 또 孝公께서도外人인商鞅을 등용하시어, 새로운 법률을
재정하심으로써 국정을 크게 개혁하셨고,惠文王께서는 외국인인 张仪를 채용하심으로써
국토를 크게 확장하셨고, 昭王께서는 외국인인 范睡를 등용하시는 반면에 穰候와華阳君의 두 왕족을
제거 시킴으로써, 왕족들의 횡포를 억제하고 왕실의 권위를 크게 선양하셨던 것이옵니다.
이상과 같이 秦나라의王业이 오늘날처럼 번영하게 된 것은,모두가 외지에서 온 신하들을
높이 쓰셨던 결과이온데,이제 앞으로 국외의 인물을 일체 배격하신다면,大王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대업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으오리까.....
秦王에게 올리는 上疏文은 아직도 계속된다.비단人事 문제점이 아니옵고,物质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옵니다.大王의龙袍는崑崙山(西藏) 에서 나온 名玉으로 장식되어 있사옵고,
대왕께서 허리에 차고 계시는 名剑은太阿(楚)에서 구해오신 물건이옵고,
대왕께서 타시는 名马는织离(趙)에서 사들인 良马이옵니다.그나 그뿐이옵니까?
지금 군대에서 쓰고있는 북의 원료는 모두가 灵驼(魏)에서 사온 가죽이온데, 만약 그런 물건들을
外来品이라는 이유로 모두 배격하신다면 무엇을 가지고 나라를 꾸려 나갈 수 있으오리까.
그것이 어찌 물질에 관한 문제뿐이오리까.음악이 그러하옵고, 문화가 또한 그러하옵니다.
자고로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아니한다(太山不让土壤)> 하였고,
<하해는 작은 물도 가리지 않는다(阿海不择细流)>고 하였습니다.
땅이 넓으면 수확이 많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고, 군대가 많으면 졸병들도 용감해지듯이,
통치자는 모름지기 도량이 넓으셔서,청탁을 가리지 아니하고 외객을 될수록 많이 포섭하셔야
王道乐土를 기억하실 수 있는 법이옵니다.만약 일부 지각 없는 중신들이 말하듯, 외객들을
모조리 추방해 보이시면,대왕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통일천하의 성업을 완수하실 수 있으오리까.
臣李斯는 대왕께서 그 점을 신중히 고려하시옵기를 간청드리는 바입니다.
진왕은 상소문을 읽어보고 크게 감동하여, 이사를 불러 말한다.
"경의 충고가 없었던들, 나는 腐儒들의 말만 믿고 커다란 과오를 범할 뻔하였소.
이제 앞으로는 国机万般을 경과 더불어 처리해 나가기로 하겠소.천하를 신속히 통일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경의 경륜을 한번 들어 보기로 합시다."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천하를 통일하시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놓으셔야 합니다."
"국가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겠소." "法制를 개혁하시어, 전국을 郡县 제도로
바꾸어 놓으시되,모든 권력을 대왕께서 집중 장악하시도록 하셔야 합니다.강력한 中央集权制로
개혁하지 않으면,힘이 집중되지 않아서 천하를 통일하기가 매우 어렵사옵니다."
"그 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천하를 통일해야 하겠소." "여섯 나라를 한꺼번에 정벌하시려면
공동저항력이 강할 것이므로, 약한나라부터 하나씩 각개 격파를 해나가셔야 합니다.
우선 가깝고도 가장 약한 韩을 먼저 치시고,그 다음에는 魏를 치시고, 그 다음은 趙를 치시고...
그런 식으로 나가면 10년안에 천하를 통일하고야 말 것이옵니다."
"정말 좋은 말씀이요" 이리하여 李斯는 국가의 법제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서,
철저한 중앙집권제의 법령을 새로 제정하는 동시에,
모든 권력을 오직秦王 만이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1-033편에 계속
초한지(楚汉志) 1-033
因果应报
大陰人嫪毐는 함양에서 멀리 떨어진 옹성 별궁에서 朱姫와 밀월 생활을 계속해 오면서, 자기 땅을
<爱国>이라 부르고,자기 자신을 <爱王>이라고 자칭해 온다는 사실은 이미 말한 바 있었다.
그 무렵 노애가 거느리고 있는 노복이 천여명이 넘었으니,그가 얼마나 호화로운 영화를 누려 오고
있었는가를 가희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사람의 욕심에는 한도가 없는지, 노애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기회만 있으면 진왕을 쫓아 내고 자기 아들을 그 자리에 올려 앉힐 야심을 품어 오고 있었다.
태후 주희는 옹성으로 옮겨 온 후 그해 겨울에 첫 아들을 낳았고,
그로부터 1년 후에는 두번째의 옥동자를 또 낳았다.
아들 형제가 생겨나자, 노애의 오만은 점점 극심해 갔다."아들이 형제가 있으니,
이제는 现王을 쫓아 내고, 우리들의 아이를 王으로 내 세워야 할 게 아닌가." 노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노골적으로 나오게 되자 주희는 몸을 떨면서 말한다.
"그건 안 돼요. 그애<진왕>가 얼마나 무서운 아이인데,그런 말을 함부로 하세요?
우리들의 비밀이 탄로되는 날이면, 우리들은 그 날로 목이 달아날 줄 아세요." "당신은 무슨
못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그 애 목에는 칼이 안 들어가는 줄 아는가.
그 애 하나만 없애 버리면, 진나라는 우리들의 나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요." 주태후는 몸이 떨려서,
그 이상 아무 대꾸도 못 했다.사실 그녀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였다.노애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왕도 자기 뱃속에서 나온 친자식이 아니던가. 노애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을 옹립하기 위해,
여불위의 몸에서 태어난 맏아들을 죽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왕 9년 이른봄 어느 날. 노애는 미녀들과 함께 주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후의 시녀인 季氏夫人이
술 심부름을 하다가 잠깐 실수로 노애의 옷에 술을 엎질렸다.그러자 노애는 화를 벌컥 내며,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이년아! 龙袍에 술을 엎지르는 계집년이 어디 있느냐,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이년을 당장 궁중에서 쫓아 내거라."
계씨 부인은 그 즉시로 宫中에서 쫓겨나는 몸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녀로서는 노애에게 앙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내시로 가장하고 대왕을 속여 가며
태후와 밀통을 하고 있는 주제에,감히 나를 어떻게 쫓아내겠다는 말이냐.) 계씨 부인은 분노의
이를 바드득 갈았다.그런데 그날 저녁에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노애는 계씨부인을 참형에
처하라는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아닌가.계씨부인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날 밤으로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도망을 치려고 나서니, 갈 곳은 오직 함양뿐이었다. 계씨부인은
태산 준령을 수없이 걸어 넘어서 두 달 만에 함양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대궐로 달려 들어오기가 무섭게, 大使(秦王의 비서실장) 趙高를 만났다. (조고는 宦官에
불과했지만, 법률에 능통하고 사무처리가 능란하여, 秦王의 신임이 매우 두터운 사람이었다.
후일에 진나라를 망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다.)
조고는 계씨부인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묻는다."그대는 태후마마를 모시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옹성에서 돌아 왔는가."계씨부인은 울면서 대답한다.
"저는 추잡스러운 노애에게 죽지 않으려고, 밤 도망을 쳐서 돌아왔사옵니다.""노애가 추잡스럽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노애는 내시가 분명한데, 내시가 어떻게 추잡스럽단 말인가."
여기서 계씨부인은, 노애와 태후와의 추잡스러운 행위를 하나도 숨김없이 낱낱이 고해 바쳤다.
趙高는 너무도 뜻밖의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그 사실을 즉시 秦王에게 아뢰었다.
진왕은 매우 격분하여, 한동안은 용안이 붉으락 푸르락하였다.
그러나 생모인 태후에 관련된 일이므로신중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애는 내시가 분명한데,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자세한 내막은 내가 壅城에 직접 내려가서 알아보기로 하겠으니
,길 떠날 준비를 차려라.내가 옹성에 다녀올 때까지는 누구한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이리하여 진왕이 지방 순찰의 명목으로 옹성을 찾아가게 되자, 조고도 수행하였다.
한편, 노애는 진왕이 지방 순찰중에 옹성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뻤다. 이번 기회에
진왕을 없애 버리고, 자기 아들을 올려 세울 마음을 먹은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노애는 가짜 玉玺를 만들어 가지고, 가까운 고을에 주둔하고 있는
近卫部队와近卫骑马队에<옹성으로 급히 모이라>는 긴급 군령을 왕명으로 내렸다.진왕이 옹성에
도착하기만 하면<역적 도당을 소탕한다>는 대의 명분을 내세우고, 근위부대로 하여금
왕의 숙소인 纪年宫을 급습하개 하여, 진왕을 살해해 버릴 계획이었던 것이다.
노애의 심복 부하들은 그러한 반역 행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애가, "만약 이번일이
뜻대로 되어 나의 세상이 오기만 하면, 그들에게는 靖国功臣의 칭호를 내릴 터인즉,
그대들은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하여 목적 달성에 추호도 차질이 없도록 하여라!" 하고 특별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그들은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려고 음모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진왕은 그토록 무시무시한 음모가 있는 줄도 모르고 옹성에 도착하자, 곧 숙소인 纪年宫으로 향하였다.
그날 밤은 기년궁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에 太侯宫으로 생모를 찾아갈 예정이었던 것이다.
진왕이 행차할 때면, 조고는 언제든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아니, 단순히 건성으로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왕의 행차보다도 수백 보는 앞질러 달려가며, 그의 눈은 끊임없이
전후 좌우를 예리하게 경계하는 것이었다.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가 눈앞에 나타나면,
조고는 비호같이 달려나가, 불문곡직하고 그 자의 목을 칼로 후려갈겨 버리는 것이었다.
그처럼 조고는 진왕에게는 다시없는 심복이었다.그 날도 왕의 행차가 기년궁으로 향하자
조고가 앞질러말을 달려가고 있노라니까, 난데없는 기마병 하나가 저쪽에서 이리로
말을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누구냐! 거기섰거라!" 조고는 기마병을 발견하자,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칼을 뽑아 들고 쏜살같이달려나왔다.불문 솔직하고 목을 잘라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1-03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