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삼각지. 그것도 꼭, 돌아가는 로터리 근방에서 태어났다.(이 대목에서 ...."돌아가는 로터리"하고, 지금의 "스핀 spin"하고 무슨 상관 있냐구 묻는 애들이 가끔 있다...그럼 걘, 분명 바부탱이다.) 그런데 이 곳에 대한 기억은 정말, 까맣게 없다.(또,이 대목에서..."정말 없냐"구 묻는 애들이 있다. 평소 나를 천재로 아는 애들로서는 있을 법 한 일이긴 하지만....정말 없다.)
그러다 남산자락밑 해방촌 어딘가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이 곳, 해방촌 시절의 기억은 내가 아주 어렸었고(3~4세) ,아주 잠시였기에 몇 개의 지극히 단편적인 기억들만 남아있다. 그 단편적 기억 중에 하나는, 내가 어떤 또래 친구의 눈두덩을 사정없이 물었던 기억과,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나 또한 그 동네 똥개한테 오지게 엉덩이를 물린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내가 그 친구를 물었는지,그리고 또 그 해방촌 똥개가 날 물었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개가 사람을 무는 습성에 관하여 후에 알게 된 몇가지 사실이 있긴 하다. 개가 사람을 무는 이유는 두가지 뿐. 즉 방어적 본능과 공격적 본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개를 못살게 굴었다거나, 아니면 개에게 약세를 보이고 도망가거나 할 때 뿐이다.과연, 이런 개판의 논리가 내가 친구를 문 이유와 상관은 있을까?
아무튼 난, 이 두가지 사건과 관련된 뚜렷한 기억이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그 날 어머니는 나를 앞세워, 눈두덩을 물린 친구의 집을 찾아가서는, 그 시절 그 유명한 3대 만병통치약1) 중 하나인 유한양행의 "맨소래다마"(그 무렵 우리 식구들은 일본식 발음으로 안티프라민을 이렇게 불렀다.)를 손수 친구의 눈두덩에 듬뿍 발라주시고는, 그 아이의 어머니한테 간곡히 사과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이것이 울 어머니가 아들 사고친 것에 대해 최초로 지불하셨던 "껨값2)"이었으리라.
그러나, 해방촌 이름없는 똥개한테 물린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처치는 의외로 간단했다.
어머니는 한 손에 가위를 드시곤, 잔뜩 겁에 질려 우는 나를 앞장 세웠다. 그리곤 이 번엔 나를 문 개의 주인을 찾아가서는 오히려 간곡히 양해(?)를 구하시곤, 그 개의 목덜미 털을 한 줌 뭉턱, 가위로 자르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내, 그 개털을 성냥불로 태우고, 그리고 그 재를 거즈에 발라, 엉덩이에 난 개 이빨자국 위에 붙이시는 것이었다. 그게 다였다.(난 지금도 의문인 게, 어머니께서 왜 그 유명한 3대 명약에 대한 처치는 안 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설마 날, 개 취급은 안하셨을테지?)
암튼 그 처치가 효과가 있었는지......난 이 후로 지금껏 광견병에 안 걸렸다.
그러고보니 해방촌에서의 기억이 하나 더 있다. 한 동안 몹시 열이 나고, 기침이 끊이지 않을만큼 아팠던 적이 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급성 폐렴이었다. 그 때문에 삼각지 로터리 부근의 병원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이 병원에서는 꼭 진료가 끝난 후 주사를 맞아야했다.무지무지 아픈 페니실린 주사였다. 이 페니실린 주사는, 주사약이 들어갈 때 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아팠는데, 무슨 몽둥이에라도 세게 한 방 맞은 듯, 뼈속 깊숙히 우리~하게 저리고 아팠다. 원래 잘 안 우는 아이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나였지만, 이 주사에는 도무지 당해낼 수 가 없었다.
급기야, 내가 병원에 가는 날은 그 병원이 한바탕 뒤집어 지는 날이었다. 의사선생님은 나를 달래려고 커다란 유리 주사기를 선물인냥 밑밥처럼 주셨는데....이 놈이 물총 놀이로는 아주 딱이었다. 웬만해선 가질 수 없는 특제 뇌물을 받은 나는 당장 그 아픈 주사를 두 눈 질끈 감고 다 맞아냈다. 그리하여 내가 병이 다 나아, 병원을 더 이상 가지않아도 됐을 무렵에는, 그 훌륭한 유리 물총이 여러 개 모아졌고, 한 동안 애지중지 아끼는 나의 보물1호로 지정까지 되었다.
아무튼 윈스턴 처칠과 난, 2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산물 중의 하나인, 이 페니실린의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그렇다고,뭐 워쨌다는 게 아니다, 그렇다는 거지..)
마지막 해방촌 시절의 이야기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다.
아버지는 그 때 직업군인이셨다.그래서 근무지인 육군본부와 가까운 이 해방촌에 신혼의 둥지를 마련하셨으리라. 그 시절 남산밑 달동네 해방촌 집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한 모양에 다닥다닥 붙여 지어져서 골목들은 비좁고, 미로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지금 그 집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60년대초 그 시절의 서울은 이 달동네 말고도 대부분 물이 부족했었다.그래서 동네 마다 공동수도나 우물이 하나쯤 있어서, 동네사람들 거의 전부가 그 물을 길어다 먹는 형편이었다.
퇴근하신 아버지가 꼭 하시는 일 중에 하나가, 물지게로 이 수돗물을 길어 오시는 일이었다. 그러면 난, 강아지 마냥 졸랑졸랑 아버지를 따라 그 공동 수도장에 가는 게 무척 신이났었다. 내가 이렇게 신이 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공동수도는 우리집 보다 위쪽 언덕배기에 있었다. 항상 그렇듯 이 수도장은 동네 사람들로 붐볐다. 자물통으로 굳게 무장(?)한 수도꼭지를 기점으로 양동이, 함지박, 함석물통(그 당시 지게용 물통은 함석으로 만들었다.) 기타 등등,물을 담을 수 있는 동네의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다 나와 나래비(줄서기)를 서고 있었다.
이 곳에서의 나의 임무이자 신명나는 일은, 강아지 처럼 우리집 물통을 굳건히 지키는 일이었다.이 어수선한 나래비 속에서 잠시 한 눈을 팔기라도 하면, 가끔 새 물통이 헌 물통으로 바뀌거나, 새치기를 당하기 일쑤였다.(아마,그 때 내가 친구를 물게 된 이유도 이런 강아지 본능이 아주 쬐금 작용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그리고 한가지 더 신명나는 일은,그 긴 나래비 끝에 차례가 되어 우리집 물통에 수도꼭지로부터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는 일이었다.그게 어린 맘에도 막연한 풍족감을 주었나 보다. 늘 물 사정 때문에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한숨섞인 말씀을 비록 어린 나였지만..오가며 줏어 들었던 때문일까.
가끔, 그 때 해방촌 달동네 우리집 소박한 물항아리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면 그 속에는 아버지의 걸음 걸음마다 지게 끝에서 흔들거리는 두 개의 커다란 우리집 함석 물통이 있고, 집에 다 이를때까지 물이 제발 넘치지 말기를 조마조마하며 따라가던 내가 있고, 우리집 물항아리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며 좋아하시던 소박한 어머니와,이를 보고 초보가장으로서 마냥 뿌듯하셨을 보통의 아버지가 계신다.
1)3대 만병통치약: 앞서 말한 맨소래다마와 함께 아까징끼(빨간약),이명래 고약을 일컫는다.근데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니까..따로 더 좋은 명약이 있었다구 생각하는 애들은 역시, 조~아래에 꼬릿말 조신히 남겨라^^.그렇다구 된장, 두꺼비 기름, 침..등등 이런 걸 열거하는 애들은 영락없는 촌놈으로 인정할테다.
2) 껨값: 어원은 영어의 "game"과 한글의 "값"의 합성어다.물론,속어다. 여기서 "껨"은 아그들 싸움을 말하는 것이구, "값"은 그 싸움에서 진 자,즉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민사적 보상에 관한 모든 총체적 행위, 예를 들어 현금이나, 아니면 똥구녁이 째지게 가난하여 현금이 없을 시, 손이 발이 되게 비는 행위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덧붙히면...그 시절 아그들 싸움에는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게 사회적 통념이었다. 그 증거로..우리의 한둥우리 김재하 군을 보라. 만약 안 그랬다면...학교를 가도, 몇 번은 갔을 게다.히히~~
첫댓글 영민스... 그친구를 물어던건... 그 친구를 똥개로 알았을거구 똥개가 너를 물어던건 아마 아마도 ?? .....ㅎㅎㅎ
그리고 공동수도근처엔 반드시 공동 화장실도 있을것이다...기억 떠 올려바라....
와!~~~~~~` 해외 토픽 감이요!!~ 스핀이 글을 다 쓰고~ 글도 잘쓰네~ 올 한해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함!!~
영주스...잘은 못 쓰는 글이지만,가끔은 글 올리곤 했었다네^^.
스핀님 글 잘 쓰시는거야 익히 알지만..........이게 무슨 일이래요? 아래 대샵의 답글로 올라온 비행기까지....곳간 정말 문제있는거 아닌가? 비행인들한테 살림을 모두 맡겼으니 조만간 공중분해의 불길한 예감 ㅋㅋㅋ
아하 예전 서울 모습이 저랬군요.. ㅎㅎㅎ 넘 잼있게 잘 봤습니다. 건필요~~~~~
자전적 소설을 읽는 듯합니다. 자주 올려 주세요.
'뇌신' or '명랑 '............그 당시 뇌신은 지금의 부채표 활명수와 아스피린의 역할을 했지 싶네~
유년 시절 비행(?) 한번 저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테니 ... 곳간 men & women의 줄줄이 이은 유년시절 비행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른것은 접어두고...3대 만병통치약..말고 누가말할까..또 무신 약이름이 나올까..혼자 예상했는데.. 딱 들어맞었어...김진숙의 "뇌신"명랑"...역시나..번뜩이는 기억이야...
잎새야 , 내 기억에 의하면 뇌신과 명랑은 두통약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하얀 가루약이었고 약국에서 예전에 접던 방식으로 접힌 종이에 들어있었던것...진통제가 아니었을까..싶어..지금쯤으로 말하자면 게보린이나 모 이런거 되겠지
잠깐 동안 이지만 옛시절로 돌아갈수 있게 만든 글이군요..............복 많이 받으세용.
어린시절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정겨운 글이어서 다시 보게 되었네요. 이번엔 청소년기 스핀님의 비행기를 기대해볼까요???
가로수의 유년시절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들어보자고요....
새~할머니들은 배가 아파도 그걸 잡쉈다우~그니까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 아니겄남???
울 할머님도 늘 명랑 뇌신 달고 드시던 기억이나네요~~참~ 오랜만에 듣던 약 이름이네~~
아하... 스핀의 새로운 면을 보았네.. 후후~ 진솔한 옛 이야기.. 참 재미있었어...엄마, 아버지얘기엔 가슴도 뭉클하고.. ^*^
몇 번을 읽으며 옛날로 거슬러 다녀왔습니다...............
그래,행복했었나요?......let me see^^
송화 님~청소년기의 비행기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공개 못합니다,아직 내 마음의 "공소시효"가 쪼매 남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