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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1
레드콤플렉스(Red Complex)’란 말을 아시나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돼
진보적 사상 전체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극단적 반공주의를 말합니다.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 선풍, 군사독재가 횡행했던 1987년 6월 이전까지의 한국 정치가 이에 해당됩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빨갱이’ 가면을 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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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때 반공방첩 포스터 무지하게 그렸습니다. “북괴는 노린다. 우리의
빈틈을” “땅굴 파는 두더지 몽둥이로 때려잡자!” “아! 어찌 잊으랴 6.25그 날을“ 군사정권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용해 반대세력을 제압
했습니다. 하여간 저는 고3년까지 오롯이 교련집체교육을 받았으니 초6년, 중3년 도합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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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을 빨갱이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질풍노도시기이었던 당시 우리는 교련복 바지는
사복으로 입고 다녔고, 충효사상 같은 규율과 규정으로 억압하던 어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두발, 교복자율화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정규전은 백전백패이었기 때문에, 교복
형태를 부수고, 불법 가요를 들으며 펑크스타일을 고집스럽게 하고 다니는 아웃사이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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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는지 모릅니다. 80. 5월 17부턴가 하복을 입는다고 해서 제일합섬 기지 감으로 만든
녹색 교복을 찾아왔습니다. 제 기억에 아마도 2만원인가 3만원을 주고 샀을 것입니다.
원래는 스마트 학생복 기지에 흰색 카러가 규정인데 저는 상의는 긴소매를 달고 7부처럼
걷고 다녔고 단추4개를 쌍으로 달아 카러를 빼버리면 정은이가 입는 사복처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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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복은 배꼽바지에 주머니는 15도 각도를 주었고 12인치 통바지를 힙 선에서 뚝 떨어지게
했습니다. 뒷주머니는 후-다 라고 하는 뚜껑을 왜 고집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검정스파이크운동화 대신에 흰색 B, B운동화를 꺾어 신으면 바지 밑단의 브랜드
표기가 흰색 운동화와 절묘하게 앙상블을 이루면서 환상의 핏으로 패션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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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2학기 무렵 학교를 평정하고 태촌이 형 한 번 보려고 서방으로, 충장로로 출근을
했지요 그때부터 저는 자칭 전국구이었습니다. 직접 선배 빼놓고는 아무도 무서운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광주 우체국 앞은 전라도 권 건달들의 성지 같은 곳입니다.
헐, 핫프레이스 홍대 분위기가 80년대 전라도에 있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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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교야구나 해태타이거즈의 신화도 다 억압과 누르기에 대한 반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레드콤플렉스는 정치영역만이 아니라 서민들의 안방에서 벌어지던 일상사이기도
했습니다. 운동권 대학생이 된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왜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하고
있느냐”고 혼쭐을 냈고, 아들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대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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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가 끝나 전 세계가 그 혜택을 누리던 1990년대 이후에도 한반도만큼은 예외였습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동토 북한’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레드콤플렉스는 반공주의라기 보단 ‘반북한주의’라 부르는 게 맞을지 모릅니다.
한국이 이랬다면, 북한은 ‘양키콤플렉스’에 허덕여 왔습니다. 팀스피리트가 열리거나 미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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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폭격기, 항공모함이 한반도 상공과 해역을 지나가면 북한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정권은 물론 주민들마저 “우리를 다 죽일 것”이라 한답니다. 6·25전쟁을 일으켜 남침
했다가 미국 주도의 유엔군이 전쟁에 적극 개입하면서 북한 전역이 쑥대밭이 됐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아픈 과거의 기억이 대물림된 셈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역대 북한 정권이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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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보다 미국 정부와의 협상에 더 적극적이고, 위기 때마다 호전적인 도발 근성을 내보인
것도 모두 양키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합니다. 저는 팀스피리트86까지 모두 받았습니다.
' 86 팀스피리트'는 7군단 주체로 했는데 그때 안흥 경찰서에 베이스 캠프를 치고 순찰을
돌다가 첫사랑을 만났습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하고, 조만간 북·미 정상회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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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폐기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북한체제 인정
시나리오가 가시화하자 남한에선 다시 레드콤플렉스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분위기입니다.
보수진영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떤 약속을 한다 해도 북한은 북한일 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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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은 제가 직접 들은 말입니다. 우리 준표 형님은 “이러다 김정은이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실체가 들어나겠지요.
북한 정권이 한 번도 주민들의 피폐해진 삶과 인권을 챙긴 적이 없었고, 번번이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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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하고 돌아서면 또 핵무기 개발에 나섰던 전력을 우리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 틀린 말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투성이인 친구에게 “너는 문제투성이니까 아예
말도 안 할 거야.”라고 하면, 그 친구는 분노의 칼만 갈게 틀림없습니다. 이 씨 박씨가
그렇게 하다가 지금의 핵 위기를 자초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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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투성이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관심과 설득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고,
지금의 자신을 버리면 훨씬 많은 빛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 랍비와 로마 관리들조차 ‘적으로 간주
하지 않았습니다. 담을 쌓고 동족의 ‘북쪽 진영’이 핵폭탄을 개발하든 말든 우리는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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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만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걸어가야 할 그 길이 다 무너져,
더 걸을 길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 가볍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김수영 헬리콥터). “ 오랫동안 먹구름만 끼던 남북의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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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와 남북화해의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풍선처럼 커졌다 터져버리지 않고,
헬리콥터처럼 이륙했다 사뿐히 착륙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적 같은 일일 테지만, 그동안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기억해보면 놀랍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아, 그래도 두렵습니다.
염려는 실체가 없지만 두려움에는 실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두려워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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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지고이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시혼 왕을
넘어서니 이번에는 바산 왕 옥이 모세를 가로막았습니다. 산 넘어 산, 인생이란 전쟁터가
아닙니까? 저는 고교 때 "날때부터 건달은 아니었다. 배고프면 주먹을 쓰고 목마르면 눈물을
삼키었다"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며 변산 해수욕장, 내장산을 오가며 철장사(민박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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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수방사 헌병대에 들어가 훈련소시절부터 행정학교시절까지 1 빠 만 했습니다.
물론 자칭 1 빠 지만 전설의 남한산성, 수방사, 3군단 헌병대, 철정 검문소까지 다
접수했습니다. 뻥도 아니고 호기도 아니고 실화입니다. 군 영창을 살았고 사회 징역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죄수로도 살아보았고 근무자로도 살아보았습니다. 1:20명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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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 짱을 터 보았으며, 실탄 장전하고 총기 탈영병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특경대 훈련에 경호 학을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배운 EBC453기 출신입니다.
육군 장교들 중 내 목침을 맞은 양반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다 옛날 얘기지만 두려움이란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제가 잘하는 것 두 가지는 저는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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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거에 무대포로 덤비고 부닥치는 논두렁 깡패이었는데 분석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지 한 20년 쯤 되가는 것 같습니다. 믿음을 원하시나요? 하나님을 배우세요.
쌈 짱이 되고 싶나요? 상대를 읽으시라. 깡패란 깡이 없어서 몰려다는 사람이라고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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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고 나죽자고 덤비면 "오냐,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에 한 명만 산다"는 생각으로
부닥치라 반드시 대가 센 놈이 이길 것입니다. 평화의 제안 없이 곧바로 전쟁이 시작된
이유는 헤스본 왕과 바산 왕이 연맹체 국가인관계로 이미 아모리 족속과의 협상이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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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산 왕은 헤브론 왕 시혼에 패배하고 이스라엘이 북진하자, 곧바로 방어와
더불어 아마도 시혼에 대한 복수를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내려왔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행로를 가로막고 에드레이에서 싸우자고 하는 바산 왕 옥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야하스에서 시혼에게 행한 것처럼(2:32)승리를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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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싸우시겠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믿음으로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거만하던 시혼에 이어 바산 왕 옥도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위협합니다. 그저 거대한
철 침상은 그가 얼마나 크고 강한 족속인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나안 거인들
앞에서 무서워하며(1:28) 도망가던 광야 세대와 달리, 가나안 정복 세대는 거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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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맞서 승리를 거둡니다. 거듭되는 전쟁과 거듭되는
승전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은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 사람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상대로 사우고 그 땅을 점령한 것은 가나안 전쟁의 전초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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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리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장차 전쟁을 치르게 될 가나안 땅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게 된 반면,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과 그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천하 만민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되리라는 약속(2:25)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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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의 싸움, 거만함과의 싸움, 미리 맛본 싸움,
나는 난공불락은 불신앙의 대명사인 것을 아는가?
내가 죄를 극복하고 온전해질 수 있음을 믿고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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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께서 주신 승리를 찬양합니다. 두려움과의 싸움, 거만함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내가 죄를 극복하고 온전해질 수 있음을
믿겠습니다. 내 앞의 높은 성벽, 매일의 삶속에서 모든 악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소서.
2018.5.6.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