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야!"
<툭툭>
"야? 않 일어나!"
"후음..."
따뜻함이 가득히 베어있는 말투. 마치 전의 대화는 있지도 않았다는 식의 말투였다. 그랬다. 마치 누나가 남동생을 깨우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붉은 장발의 사내는 그녀가 자신을 깨우고 있음을 모르는지 아니면 더 자고 싶어서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야아아!!!!!!!!"
또 다시 그 커다란 목소리가 메아리 친다. 아마도 이 숲 전체가 울릴 정도에 커다란 목소리는 붉은 장발의 사내의 귀에 맞닿아 있었다.
"으이익~!"
... 고막 잘 있을까 걱정된다 ...
"뭐야? 너냐?"
싸늘한 말투. 그렇지만 거기엔 미움 같은 감정은 들어있지 않았다.
"흥. 않 일어나? 우리 집에서 살 거냐? 빨리 일어나!"
그녀는 토라진 듯이 볼을 부풀리고는 고개를 홱하니 돌렸다.
"아.. 저, 저기?"
그는 그녀가 화가 나자 싸늘함이라기 보단 황당함만이 베어있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정말 놀라운(?) 목소리다.
"... 아! 그러고 보니 내 검은 못 봤어?"
"흥! 내가 니 검까지 챙겨야 해?"
"아.. 저, 저기.. 아 알았어. 미안해. 그런데 내 검은 못 봤어?"
"어? 검? 아~! 혹시 이거?"
..부엌칼을 집어든 그녀였다..
"야! 진짜 장난하냐?"
"에? 아냐? 난 우리 엄마가 칼 달라고 하시면 이거 드렸는데?"
"......"
레이라는 장발의 남자는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가 입을 다문 것은 필자가 딱 10초를 센 후였다.
<쾅쾅!>
레이가 입을 다물었을 무렵,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누구지? 혹시 듀크 아저씨? 에? 듀크 아저씨세요?"
"급해, 얼른 문열어!"
<쿵!>
<철푸덕!>
그녀가 문을 열자 듀크라고 불리던 짜리 몽땅의 중년의 남자는 철푸덕! 하고 미끄러져 버렸다.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해서 열심히 노력해서-그냥 노력이 아니다. 무지막지하게 노력해야 한다- 잘 보면 순진하고 그저 그렇게 말하면 나사가 20개는 빠진 듯하고, 나쁘게 말하면 ... 다들 알아서 상상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그 듀크라는 중년의 남자는 마치 그냥 보면 드워프 같았다. 아니, 드워프인가?
키는 짜리 몽땅하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았고, 덥수룩한 수염과 뭉특한 코가 마치 정말 드워프 같았다.
"뭐야? 하프엘프에다 이번엔 짜리 몽땅한 드워프까지?"
사내의 불만 어린 어조에 그는 얼굴을 붉혔지만 곧 반박했다.
"무슨 소리야!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세상 최고의 건축가로 불리......"
"아아~ 됐어요, 아저씨. 어차피 드워프 맞잖아요."
그녀까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약간 상처받았다는 듯의 얼굴을 자신의 윗배까지 푹 숙였다.
"그런데 용건이 뭐에요?"
이 말이 들려오자 그 중년의(?) 드워프는 고개를 확 들면서 신이 난 듯이 얼굴을 쫙 펴면서 신나게 말을 했다.
"글세 그게 말이지...!"
"시끄러워. 엄청난 수다쟁이인 것 같은데 웬만하면 조용히 닥쳐주시지."
드워프가 말을 하려는 순간 그 붉은 머리의 사내는 그를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차가운 미드 나잇 블루의 눈동자는 그 드워프를 향하고 있었으며 째려보는 것도 아닌, 그것은 그저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보통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살기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차가운 눈동자가 향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감을 줄 수 있을만했다. 아까의 그 웃음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하는 감정이 없는 차가운 눈동자였다.
"레이, 가만히 좀 있어봐. 좀 듣자고! 아저씨, 말해봐요."
"뭐...? 레... 레이? 레이? 저 녀석의 이름이 레이라구?!!"
단춧구멍 만하던 그 눈동자는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고, 그 눈에는 당혹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하... 하하. 어딘가 낯이 익더만. 여기 있던 거냐?"
"무슨 소리지?"
의아했다. 자신은 모르는데 남이 알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일을...
저 드워프의 말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걸까.
그리고 저 광적인 웃음은 뭘 뜻하는 것일까.
"이제 그만.. 본성을 들어내시지, 우르미아드?"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정도로 공포감이 생겼다. 전신이 싸하게 굳어진다.
그만! 그만! 그마아아아안!!
자신의 속에서 메아리 쳐지고 있는 절규.
피보다 진하고, 피처럼 고독하다. 붉고.. 신비롭고.. 잔혹한...
"너.... 너는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거냐..? 알고 있다.. 면.. 가르쳐... 줘... 부탁... 이다.."
말이 나오지 않는 목을 붙잡고 겨우겨우 말을 꺼낸 그는 그 짜리몽땅의 드워프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드워프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세상을 파멸시킬 존재.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한줄기의 피. 피처럼 잔혹하고 고독하고 붉은.. "
"으윽.."
뒤에 더 말이 많았지만.. 그것은 의식이 들어주질 않았다.
"세상은 최후까지 몰린 그 순간에도 놓아주지 않을.. 세상의 모든 불운을 타고날 자. 천왕의 기를 타고 내려온 존재. 그것이,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