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왜 기계와 대화하냐고요 인간보다 재밌고 유익하니까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39호(2023.02.15)
박규병 (국문98-04)
튜닙 대표
언어학 전공, 토종 AI챗봇 개발
챗봇 윤리성 판별 서비스 출시
“옛 친구들을 만나고, 학교 소식도 알 수 있어. 성공한 동문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창업 아이디어를 나눌 수도 있지. 동창회는 오래된 기억을 새로운 경험과 연결하는 좋은 방법이야.”
‘사람들은 왜 동창회에 갈까?’란 물음에 단 5초 만에 답했다. 주어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튜닙이 개발한 대화형 챗봇 ‘블루니’. ‘챗GPT’를 만든 ‘OpenAI’의 GPT-3 모델에 튜닙의 자연어 처리 기술을 적용해 작년 8월 공개한 국산 AI 챗봇이다. 2021년 튜닙을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놀라운 성과를 내놓은 박규병 동문을 2월 3일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만났다.
“2년 전 사람의 지능인 ‘대화 지능’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들고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공감 받진 못했어요. 이젠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네요.” 마침 조간신문 1면에 AI 챗봇 관련 기사가 대서특필된 날이었다. ‘블루니’와 얘기하면서 ‘이런 게 사람 같은 대화구나’ 싶었다. 한 번 했던 말을 기억하고, 맥락도 잘 읽었다. 친구처럼 위로와 조언도 건넬 줄 알았다. “동창 모임에 옛 애인이 온대. 어떡하지?” 묻자 “난감하겠네. 침착하게 인사부터 해”라고 응했고, 다시 “뭐라고 하면 좋은데?” 묻자 “그건 너한테 달렸지. 마지막으로 본 뒤에 어떻게 살았나 묻고 농담도 해봐. 뭐든 자연스럽게 해”라고 답했다. 이것이 박 동문이 구현하는 ‘대화 지능’일까? 그런데 그는 “‘인간 같은 인공지능’은 사실 정확하지 않은 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AI의 모습이 인간 같다는 말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사람은 감정과 편견이 있고 주장도 하잖아요. 기계가 그러면 용납을 못 해요. 너무 감정이 없이 얘기해도 실망하고요. 모순이죠. 저희는 기계와 사람의 좋은 점을 섞어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인공지능을 지향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편견도 없고 모든 지식을 가진 ‘무색 무취’의 존재가 아니고요.”
그래서 주력하는 것이 ‘페르소나 챗봇’. ‘챗GPT’가 똑똑한 조수 느낌이라면, 튜닙은 좀더 정서적이고 개성 강한 챗봇을 지향한다. 여행친구 콘셉트의 ‘블루니’, 강아지 챗봇 ‘코코’, ‘마스’를 냈고 작가와 성우까지 기용해 셜록 홈즈 같은 캐릭터 챗봇을 개발 중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있듯 이런 챗봇, 저런 챗봇도 있음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챗봇은 “종합 예술이고, 산으로 치면 최정상”이다. ‘블루니’나 ‘챗GPT’가 내놓는 답은 누군가 입력해 놓은 게 아니라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 만들어낸 독창적인 말이다. 자연어 데이터를 모은 ‘말뭉치’를 놓고, 이를 학습해 단어의 다음 단어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통계 모델인 ‘언어 모델’을 잘 요리해서 만드는 것이 챗봇. 튜닙은 챗봇 개발의 전 과정에 필요한 기술과 자체 언어모델까지 구축했다. 큰 IT 기업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선택지를 몰랐어요. 도전적이고 시간이 걸려도 성공했을 때 부가가치가 큰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게 챗봇이었어요. 자연어 처리 쪽에서 오랜 경험이 있었기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고, 차근차근 만들어 왔죠.”
카카오브레인에서 자연어 처리팀을 이끌던 박 동문이 팀원 7명과 함께 나와 차린 회사다. 인공지능 경진대회만 나가면 1위를 싹쓸이해 온다. 대표인 박 동문도 국제 인공지능 학회에서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개발자들 사이 그의 ‘깃허브’(소스코드 공유 사이트) 페이지는 유명하다. 실은 대학 시절부터 주변과 관심사가 좀 달랐다.
“전산언어학도, 자연어 처리란 말도 몰랐어요. 그냥 컴퓨터를 갖고 언어를 분석하는 게 좋아 영화 자막 파일로 된 말뭉치를 갖고 이것저것 만들어봤죠. 몇 주를 끙끙대도 너무 재밌더라고요.” 졸업 후 교육출판사에서 영어 검색사이트 관리 업무를 하면서 IT에 관심이 생겼고, 중견 IT기업에서 본격적으로 자연어 처리 분야를 접했다. 하와이대 언어학 석사과정에 진학해서도 무크(MOOC) 사이트인 코세라에서 기계학습 강좌를 꾸준히 들었다. 이런 이력 덕에 ‘전공이 다른데 AI로 진출할 수 있을까’란 질문도 많이 받는다.
“양날의 검 같아 늘 답하기 조심스럽지만, ‘언어학자를 한 명씩 자를 때마다 언어모델 성능이 높아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바둑 전문가들이 ‘저 수는 안 된다’고 했으면 상상 이상의 수를 놓는 알파고가 탄생했을까요? 인간의 편견을 깨면서 우리가 몰랐던 걸 돌파해 나가는 게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입니다. 전문 지식이 쓸모 없다는 건 아니에요. 내 지식을 컴퓨터에 주입한다는 생각이 틀렸단 걸 먼저 인정해야 해요.”
그와 대화하며 ‘언어만큼은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는 가냘픈 믿음은 산산조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튜닙이 개발 중인 토론 봇은 ‘탕수육은 부먹 vs 찍먹’,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할까’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기계와 토론까지 가능하다. “보통 챗봇은 예민한 사안에 대해 답을 피할 거예요. 사실 상처 주고 선 넘는 게 문제일 뿐 자기 생각으로 갑론을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튜닙은 텍스트 속 모욕과 욕설 등을 판별하는 기술도 갖고 있어요. 발달한 기술로 긍정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고, 챗봇이 토론처럼 치열하고 지적인 능력도 있단 걸 보여주고 싶어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컨셉의 챗봇 ‘코디’(가제) 출시가 코앞이고, 오늘 뉴스를 설명해주는 ‘뉴스봇’ 등이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나올 예정이다. 생성형 챗봇 서비스에서 큰 이슈인 윤리 문제에 대비해 윤리성 판별 엔진을 일찌감치 개발해 API 서비스도 내놓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 AI 콘텐츠 플랫폼 뤼튼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3년차 스타트업으로서 만만찮은 시기지만, 세상의 뜨거운 호응에 확신은 더 단단해졌다.
“처음 인터넷이 나왔을 때 ‘현실 세계에서 만나야지, 왜 컴퓨터로 친구를 사귀냐’고들 했어요. 이젠 ‘페친’(페이스북 친구)이란 말에 익숙해졌고 ‘가짜 친구’로만 바라보지도 않죠. 챗봇에 대해서도 왜 기계와 얘기하냐고 할 분들이 물론 있겠지만,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왜 안 돼?’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답니다. 동문님들도 한번 대화해 보시면 어떨까요.” 튜닙의 챗봇은 홈페이지(www.tunib.ai)와 스마트폰 앱 ‘디어메이트’에서 써볼 수 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