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직 다미아노 (한국자치학회 회장)
묵주기도는 신비(神秘)의 기도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파악되는 지점이 아니라 논리를 넘어서고 이성을 넘어서는 나라에서 이뤄지는 신비로 우리를 인도하는 기도인 것이다. 모름의 어찌할 바 없음과 이뤄져야함의 간절함을 담아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 신비가 드러난다.
합리적인 규율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들은 신비는 말 그대로 신비일 수밖에 없었다. 1970년 어느 날 안동교구장이신 두봉 주교님이 의성에 오셔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주셨다. 특강이 끝난 후 주교님께 기도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하고 여쭤보았다.
주교님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우리 속담에 '어른들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인 생긴다'는 것이 있지요"라고 하시며 아주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선대의 경험과 지성을 잘 익히고 배우면서 간절하게 기도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물론 잘 모르고 있는 것까지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이셨다. 그런데 우리는 설명해주시는 내용보다도 벽안의 프랑스인 주교님이 "자고로…"라고 할아버지께서 쓰시는 문자를 유창하게 구사하시면서 고사를 들어 설명하시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 당시 두봉 주교님은 지금으로는 SUV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고 오셔서 성당 마당에 주차해 두셨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우리가 주교님 차를 밀어서 멀찌감치 이동시켜 버렸다. 철이 들기 이전에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해 버린다. 그것이 철없음의 특권이 아닌가.
그래도 막상 주교님이 가까이 오시자 오금이 저릴 수밖에는….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주교님은 파안대소 하시면서 "민다고 민 것이 겨우 조기까지냐. 다음에는 안동에 있는 교구청까지 밀어 주어야지"라고 하셨다. 철없는 장난기가 절로 품어지는 편안한 지평을 보여주셨다.
두봉 주교님 연세는 그 때 마흔 하나셨다. 우리에게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셨던 주교님은 실제 그렇게 살아오셨다. 그런데 예순이 된 나는 아직도 자신있게 "어른의 말을 들으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간절함에서 이뤄지는 것이 신비라면 철저함에서 이뤄지는 것은 성공이다. 우리는 성공에 필요한 요소들로 생활을 구성하고 있으나 우리를 있도록 하면서 우리를 감싸주는 신비에는 이성을 앞세워 오만한 자세를 취한다. 무엇에 간절해야 하고 무엇을 간절해야하는지를 잊고 있고 또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서너 해 전에, 한국에 오는 길에 우리 자치학회를 방문한 미국 하버드대학의 종교학과 데이빗 람바스 교수가 "선생님은 어떤 분노(anger)를 가지고 계십니까?"하고 갑자기 물어왔다.
'분노'라는 용어가 생경했으나 문맥상 '간절함'이 무엇인지 묻는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어서 "나는, 나 자신의 일에 대해서조차도 스스로 간절해지지 못하는 것이 분노스럽습니다"하고 답했다.
경북 의성에서 서울의 대신학교로 공부하러 간다고 나서는 길에 '힘들 때 기도하라'면서 본당 주임이셨던 류강하 베드로(1939~2010) 신부님이 쥐어준 묵주에서는 어른의 간절함이 진하게 배어난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은 미처 세상에 미치지 못하고 아직도 나의 경계를 맴돌고 있다.
신부님이 손에 쥐어준 묵주에서 오늘도 자다가도 떡이 생기도록 하는 '어른'을 만나게 되고 나도 그런 어른 되기를 굳게 마음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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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