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시장에 당도해 주위를 휙 둘러본 패터슨은 버넷을 부여잡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버넷은 패터슨이 계속 아저씨라 부르자 이마에 힘줄 하나가 불쑥 튀어 올랐으나 그 뒤에 이어지는 감사의 말에 이내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조금 그렇군요..같은 인간으로서...쩝.."
"무슨 소린가? 앤더슨군..같은 인간이라니~ 저들은 노예라네.헤르메스 대 신전에서도 인정한 노예 제도일세...저들은 인간이 아니라 노예라는거지. 알겠나?"
"...예에..."
노예시장은 그야말로 별천지 였다. 남자 노예들은 중요부위를 가린 속옷류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여자 노예들은 그 사정이 달랐던 것이었다. 여자 노예들은 어린아이에서 부터 중년여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벌거벗은채로 거래되고 있었다. 자신의 중요부위흘 훤히 드러낸 채로 일렬로 늘어 서 있었는데 수치심에 손으로 나마 몸을 가리려고 하면 어김없이 노예상인들의 채찍이 날아들었다.
"자,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는 삼등품만 취급하는 곳 이란다. 오늘 앨프 계집의 판매가 있다던데 그걸 놓치면 안되지!"
"옛? 앨프요?"
"그래, 앨프! 들리기론 아직 어린 앨프라 볼건 없다지만, 그래도 기가막히게 이쁘다는군.흐흐..귀족들 중엔 어린애를 좋아하는 로리콘들이 많다고 하니까, 아마 꽤나 비싸게 팔릴걸?"
"햐아~ 앨프라니. 정말 오늘 횡재 한것 같은데~ 안그래 앤디?맥키?"
버넷의 안내에 따라 특등의 노예들만이 거래된다는 지하걸물로 내려가며 패터슨은 앨프를 구경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들떠했다. 하지만 앤더슨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저렇게 가축처럼 값을 매기고 흥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라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들이 머리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신분의 차이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어왔던 것이라 그것이 바뀌길 바란 다는 것은 허왕된 생각일 뿐인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앤더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앤더슨은 문득 맥키언을 힐끔 바라 보았다.
"응? 맥키?"
맥키언의 시선은 패터슨과 같이 미모의 여자노예에게로 향한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처럼 생각에 빠진 모습도 아니었다. 의구심을 느낀 앤더슨은 맥키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4)
"맥키, 아는 사람이야?"
맥키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어,어? 아냐..."
"근데 왜 그렇게 멍하게 쳐다보냐? 너 혹시 남색이냐?"
"훗, 농담은...그냥 저 남자..좀 이상한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응? 뭐가?"
"아, 그냥..머리 색깔도 그렇고...표정도 그렇고..생김세는 귀족 같은데.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잖아..여기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너랑 저 남자 뿐인것 같은데.."
"흠...그런가..역시..넌 남.색.가 이군. 언제 그렇게 자세히 봤대냐? 헛..잠깐, 나한테 흑심을 품은건 아니겠지? 나,난 임자있는 몸이라고..."
"쳇..씨끄러.."
농담 삼아 웃고 넘어갔지만 맥키언이 말한 그 남자의 모습은 그만큼 이 노예시장이란 장소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 이었다. 비단 그 사내가 대륙에서 흑발과 흑안 만큼이나 희귀하다는 청록색의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닌 절륜의 미청년의 모습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짓고 있는 표정 때문 이었다. 그의 표정은 기대감이나 설레임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분노와 슬픔과도 같은 일차원 적인 것도 아니었다. 같은 인간으로선 다 읽어내지 못할 만큼의 후회와 회한 그리고 허무함 등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누굴까...청록색 머리에 푸른 눈이라...'
"야, 앤디! 뭐해? 경매가 시작 됐다고..얼른 와봐~"
"아,응..."
패터슨의 말대로 노예의 경매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경매는 건물 1층의 노예 거래와는 달리 한번에 한명의 노예의 거래 형식으로 이루워 졌는데, 대부분이 미모의 젏은 여성이거나 남 녀 어린아이 들이었고, 그 가격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 이었다.
"자, 오늘 첫 경매 상품은 로스웰 공국 출신의 아리따운 소녀가 되겠습니다. 이 소녀로 말씀 드릴것 같으면, 올해 14세로 로스웰 공국의 몰락 귀족의 영애가 되겠습니다. 귀족의 영애로 태어나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 보십시요~ 티끌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를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순결한 처녀이기도 합죠~ 뭐, 물론 처음 길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우~우~ 닥치고 그만 시작 해라~~-
"하하..그럼 여러분의 성원에 힘 입어 거두절미 하고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자~! 150골드부터 시작 합니다! 200골드 없으십니까?"
"와아..150골드라니..어마어마 하군요...저애가 제일 비싼 것인가요?"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 계집이 가장 싼 상품인가 보군. 원래 가장 상품의 질이 낮은 쪽이 제일 처음 나오는 법이거든..."
"헉..제일 싸다니..."
버넷의 말에 질문을 한 패터슨은 물론이고 앤더슨과 맥키언 까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50골드라니. 그것은 앤더슨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금액이였다. 지금의 화폐 단위는 동전과 어음이라는 수표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코인이라고 하는 동화가 가장 낮은 화폐단위로 코인 백개가 모여 은화인 실버가 되고 실버 열개가 모여 금화인 골드가 되는 것이였다. 그리고 보통의 도심지 가정의 한달 생활비가 4실버가 넘지 않았다.
"도대체 저 치들은 뭘 먹고 살길레..."
앤더슨은 허탈하기도 하고 약간은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은 몇개월을 노력하여 금화보다도 훨씬 작은 금 가락지를 겨우겨우 사서 사랑하는 이에게 끼워주고 행복해 했었는데, 저들은 그저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150골드가 넘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있는 것이였다. 결국 그 여자노예는 루벤후트 공작이라는 70대 의 비썩마른 노인에게 500골드에 넘어갔다. 그 모습에 패터슨은 혀를 쯧쯧 찼다. 척 보기에도 오늘 내일 하는 처지인것 같은데 무지하게 밝힌다고 부러움 섞인 어조로 툴툴 거리면서 말이다.
"자, 그리고 이번에 소개해드릴 상품은..."
버넷의 말대로 경매는 시간이 갈수록 그열기가 뜨거워 졌고 거래되는 액수는 높아만 갔다. 하지만 이미 모두들 미리 자신이 구매하려는 상품을 정해 놓았던 듯 경매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 되었다. 약 한시간 가량이 지났을까? 드디어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예의 거래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