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류시화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덧붙임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을 짜내어 적어본다.
“한 줌의 소금은,
작은 물컵에 넣으면 매우 짜지만,
넓은 호수에 넣으면 짠맛을 모르듯,
인생의 고통도 소금과 같으니
작은 물컵이 되지 말고
큰 호수가 되라는 것이다.”
자신의 그릇을 키우고 싶어진다.
불교에서는,
소금을 ‘공空’의 비유로 설명한다.
소금은 지나치면 짜고, 적으면 싱겁다.
‘空’이란 가르침도 생활속에서
그때그때에 맞게 잘 사용해야
중도의 결과로 나타난다.
마치, 소금처럼 아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낼 수 없듯이.
그 잣대를 내기가, 자신의 눈물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교가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불교용어가 아니라. 바로 그곳에 있다.
음식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사람은 서로의 차이로 맞추는 것이다.
의식의 양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의식의 양을 키우기에는, 먼저 자신과
상대의 입장을 알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캐치하고, 자신의 감정욕을 조절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부부가 레스토랑에 갔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는다.
먼저 물을 주문한다.
웨이터가 “찬물입니까, 따뜻한 물입니까?
하나만 가능합니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찬물, 아내는 따뜻한 물이다.
중도점은 어디일까?
‘따뜻한 물일까/찬물일까
아니면 중간의 미지근한 물일까?’
만일, 내가 남편이라면, 나는
아내를 위하여 따뜻한 물을 주문한다.
아내를 위해서, 나는 손해(보시)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것이 ‘공의 실천’
곧, ‘중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현-
카페 게시글
시수필인생
소금/류시화
상현스님
추천 0
조회 24
24.04.04 04:46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