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을 앞에 놓고
값은 약간 더 하지만
대신
그 만큼 맛있다는 소문이 있는
이웃
제천의 한 퓨전식당에서
짬뽕을 주문했는데
잠시 뒤에 나온 것을 보니
큼직한 전복 한 개가
예의
그 옆구리에
구멍이 퐁퐁 뚫어진 껍데기 채
통째로 얹어져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분명히 전복 같은데
어떤 분은
전복이 아니라
전복 비슷한 무엇이라고 합니다.
진짜 전복은 값이 비싸서
그렇게
올려 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
전복은 지금도 여전히 비싼 것이로구나...”
그래요.
저의 기억으로는
전복이 ‘
아무나 쉽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싼 값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늘
어패류 중에서도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고 있었던
고급 요리 재료였지요.
그래서 이겠지요.
어릴 적부터
전복 껍데기는 많이 보아 왔지만
그 속살을 먹어 본 적은-
어쩌다
무슨 자리에서였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한 두 장면뿐입니다.
껍데기를
많이 보았다고 하는 것은
그 시절에
아직
우리나라에 플라스틱 제품이
본격 공급되기 이전이라서
가정마다 전복껍데기를
비눗갑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눗갑으로
전복껍데기를 사용하면
그 옆구리에
쭉- 돌아가면서 난 구멍으로
물이 빠져 나가므로
늘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었고...
쯧-
하긴 당시는
거기에 담을 세숫비누도 귀했던 시절이었고
대신
‘무궁화표 빨래비누’나
혹은
양잿물을 풀어서
빨래를 하거나 삶거나
또
제기 같은 그릇을 닦거나
설거지를 하곤 했었는데
종종
세숫비누로 쓰기도 했지요.
쯧쯧...
집집마다 우물가 혹은
수돗가 양지쪽에 놓여져 있던
‘전복껍데기 비누갑’...
이제는
벌써 반세기도 넘어가는
이전의 장면들이 되었으니...
마음으로는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얼굴의 주름으로 보아서는
‘오래 전-’이고...
그래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오래 살은-’ 사람입니다.
커다란 드럼통에
가득 담겨져 있던 양잿물을
삽으로 푹푹 떠서
아낙네들이 들고 온
세숫대야에 담아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하고...
1원짜리마저도
불그스레한 지폐로
통용되던 것을 본데다가,
아직도
박 바가지들만을 사용하고 있던 시절에
시장
한 복판에다 천막을 치고
“국산품애용”이라는 빙고게임을 통해서
플라스틱
생활용구들이 보급되는 것을 보았고,
‘라면’이라고 하는
새로운 먹거리가
처음
우리 사회에
선을 보이는 것을 보았으며...
조미료 ‘아지노모도’가
‘미원’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고
친구네 집 마당에
주렁주렁 열려 있던 수세미가
그릇 닦는
‘수세미’로 사용되어지는 것도 보았으니...
그뿐이겠습니까-
서울 하늘에서 비행기가 ‘삐라’를 뿌리면
그것을 주어
딱지를 접을 목적으로
시선을 줄곧 하늘에 고정한 채
떨어지는 삐라를 따라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위험한 질주를 하기도 하였고...
골목길에
오그르르 모여 앉아서
‘달고나 국자’를 저으면서 즐거웠고...
양삼각뿔 모양의
박하사탕 하나가 귀했던 시절이었는데-
“자 이젠 됐다...”
찢어졌던 고무신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꿰매서
내어주던 엄마의 얼굴과
살이 부러진 우산을 받아
열심히 고치던
우산장수 아저씨의 얼굴도 생각납니다.
“연탄 찍어-어-어”
동네를 다니면서
부서진 연탄조각들을 모아서는
틀에 넣고
커다란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으로
쿵-쿵- 찍어서
멀쩡한 새 연탄으로 만들어 주던
‘연탄 찍기 아저씨’와
때가
새카맣게 묻은 누런 가죽가방에
바리깡을 가지고 다니면서
머리를 깎아주던 아저씨도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날 꽃재교회 담장
시원한 아카시아
그늘 아래 골목길 땅바닥에
애 어른 할 것 없이 죽-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이라이트는
동네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변소-퍼-어-어-”를 외치기를 거듭한 뒤에
긴 작대기 끝에 달려 있던 화이바로
바닥까지 박-박- 긁어
어깨 질통에 담아서는
출렁출렁(!) 나름 리듬감을 가지고
저 아래
신작로에서 기다리고 있는
‘똥차’로 옮겨갈 때에
혹시라도
나에게 튀기기라도 할까
얼른 피하여
판자 담장 한 쪽으로 바짝 붙어 비켜섰던
소싯적
장면들을 가지고 있으니-
그때는
코를 쥐고 얼굴을 돌렸지만-
이제는
돌아가 보고 싶은
그리운 시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휴--
짬뽕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거기에 들어 있던 전복을 발라
껍데기를
잔반 그릇에 옮겨 놓은 시간은
불과 몇 초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
휘-익- 옛날로 돌아가서
어린 시절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게 하는
전복껍데기의 힘-!!
저처럼
전복껍데기 비눗갑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만 발휘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
아무튼 고맙다.
회상의 순간을 갖게 해 주어서...
저 껍데기를 가지고 가서
비눗갑으로 사용해 볼까...
아내와 아이들이 뭐라고 할까...?
by/산골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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