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찾은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에 자리한 뿌리공원은 우리 민족 전통의 효(孝) 사상을 고취하고 뿌리를 찾는 산 교육장을 만들 목적으로 1997년 대전광역시 중구에서 조성한 전국 유일, ‘효 테마 공원’이다. 10여 만㎡ 부지 위에 족보박물관과 성씨 조형물이 총 244기 설치되어 있다.
남평문(文)씨 번호 80번 조형물은 문암바위, 목화, 물레, 해, 달, 별 등을 상징하는 형태 속에 훌륭한 유래문을 넣었다. 조상을 섬기고 서로 우애하는 아름다운 남평문(文)씨를 표현한 박병희 조각가의 작품이다.
시조 무성(武成)은 전남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에 있는 장자지 옆 문암(文巖)에서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태어났다고 전해오고 있다. 군주께서 양육하니 문사와 무략이 뛰어나 글월 문(文)자를 성으로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 자를 명원(明遠), 호를 삼광(三光)이라 하였다.
삼중대광보국 삼한벽사상 공신에 오르고, 남평개국백에 봉하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다. 무성이 탄강한 바위를 문암이라 하고 문암각을 남평문씨의 발상지로 하여 장자지 옆 장연서원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후손 익(翼)은 고려 숙종조에 우산기상시를 지내고 아들 넷을 두었다.
장남 공인은 인종조에 수상의 지위, 둘째 공원도 수상의 지위, 의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셋째 가관은 조계종 대선사, 넷째 공유는 강직한 명필 재상으로 글씨는 묘향산 보현사기로 전해지고 있다. 공유의 아들 극겸은 고려의 명재상으로 명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극겸의 아들 후식은 신종 때 대부경과 동북면 지병마사, 5대에 걸쳐 여러 명의 수상과 재상을 배출하고 귀족 문벌 가문이 되었다. 극겸의 손자 착은 남제공파의 파조, 극겸의 5대 손 근(瑾)은 판서공파의 파조, 달한은 극겸 6대 손으로 순평군으로 봉하였다.
극겸의 8대 손 구(龜)는 감천군파의 파조, 익점(益漸)은 극겸의 9대 손으로 공민왕 때 목화씨를 전래하여 의류 혁명의 대공을 세운 명유로 우문관제학 좌사의대부 증 영의정 부민후 강성군으로 봉하고 시호는 충선공, 도천서원과 부조묘에 배향되었다.
문 씨는 고려조에는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나, 조선조에는 문익점이 절의를 지키고 은거 불사한 영향을 받아 벼슬한 이가 적은 편이다. 문 씨는 단일본으로 전국에 4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구항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