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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극반 시절 선배들과 어울려 늦은 밤까지 연습을 하는 날이면 예외없이 들리는 곳이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손이 커 자주 찾던
‘원조 해장국집’, 뜨근뜨근한 국물에 그릇 가득 돼지고기를 집어 넣고 “옛다”하며 주시는 그 뚝배기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처럼 한곳에서 30~40년은 훌쩍 넘게 음식장사를 하는 분이 있는 가 하면 3대째 내려오는 죽제품 전문가도 있고 2대째 토기를 구으며 진품명품을 만드는 장인들도 있다.
오랜 세월동안 한 분야에서 땀을 쏟으며 일궈낸 산물,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노하우(Know-How)의 결정체였다.
흔히들 영국을 ‘축구 종가’라 일컬으며 선수와 팬과 돈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를 두고 한국 축구의 모순점을 잣대를 대며 살펴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축구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거친 무수한 시행착오에 비하면 한국 K리그는 그나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노하우에 비하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가 아닌가?
오늘은 장수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 보려고 했는데 서두가 꽤나 길었네요….안녕하세요 기사로는 가끔 인사를 드리지만 블로그로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두 장수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장수라 함은 두 가지를 말하는데요....일단은 나이와 한 팀에서 얼만큼 오랫동안 머물렀느냐를 장수의 기본전제로 두고 진행하겠습니다. (cf 싸움을 잘하는 군인도 장수긴 하죠…..ㅎㅎㅎ)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1941년에 약 5개월이라는 차이로 태어난 두 감독이 있습니다. 한명은 12월의 마지막 날 추운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2006년 독일월드컵 준비할 때 한국대표팀이 전지훈련 했던 곳, 아드보 카트 감독이 대표팀을 맡기 전 글래스고 레인저스 감독으로 있어서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던 중 택한 곳이라는 후문)에서 태어났고 또 한 명은 잉글랜드 국민들로 하여금 태양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기간인 여름, 그 어느 무더운 날에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태어났습니다.
첫 번째 언급한 사람은 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명장으로 올해 21회째 팀을 이끌면서 온갖 상을 휩쓴 살아있는 전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고 또 한 명은 스포트 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임무는 “가능성 있는 선수를 키워서 유명 구단에 보내어 그들을 성공시키는 데에 있다”고 말하는 쿠루 알렉산드라의 숨은 조력자 다리오 그라디(Dario Gradi)감독입니다.
같은 나이인 두 감독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그라디 감독은 이태리에 있는 밀란에서 태어나 이태리인인 아버지가 죽자 4살 되던 해 런던으로 이주하게 됐습니다. 한국 사람이 꽤나 살고 있는 서튼 지역 서튼 유나이티드(Sutton United)에서 축구인으로 첫 테이프를 끊은 그라디는 이후 런던 윔블던 근처의 투팅(Tooting)과 미첨(Mitcham)에서 로보로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축구에 대한 유소년 시절 경험을 쌓았죠. 이어 대학에 들어간 그는 신체교육학 학사를 전공하고 대학 내에서 지속적으로 선수활동을 했습니다.
반면에 퍼거슨 감독은 그리 넉넉하지 않는 집안 상황에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교육도 그렇게 잘 받은 것도 아니구요. 집안이 워킹 클래스였기 때문에 그리 여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하고픈 축구를 위해서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공업도시와 선박제조기술이 뛰어난 클라이드 사이드(글래스고의 남서부 끝에 위치)의 조선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파트 타임 형식으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지금의 스코티쉬 사투리도 클라이드 사이드 지방의 것이죠...^^*
그라디 감독이 1964년에 축구 선생으로 자격증을 딸 때 퍼거슨은 드디어 프로에 입문해 에든버러 북서쪽에 위치한 던펌린을 시작으로 프로로서의 첫발을 내딛었구요. 레인저스, 폴커크, 에어 등의 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점차 상승세를 탄 후 감독으로 전향을 했답니다. 이후 이스트 스털링(1974-1975)에서 코치직을 시작으로 세인트 미런(1975-78)과 애버딘(1978-86)에서 꾸준히 감독 수업을 쌓은 후 지금의 맨유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퍼거슨의 경력만큼이나 그라디 역시 지도자로서 탄탄한 배경을 갖고 있는데요. 29살에 선생직을 그만두고 감독이 되겠다고 맘 먹은 그라디는 첼시에서 처음으로 훈련코치를 담당하였고 지금의 구단인 크루 알렉산드리아에 오기까지 서튼, 더비, 윔블던, 크리스탈 팔레스 그리고 레이톤 오리엔트 등 다양한 지도자 수업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줄곧 갖은 유혹과 사건에도 불구하고 팀의 지휘봉을 굳게 잡으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죠. 자그마치 24년 동안 빛바랜 하위 리그 팀(현 리그 1)의 붙박이 감독으로서 말이죠
● 우린 둘 다 국가의 표창을 받은 사람
퍼거슨 감독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1999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특별한 사람이나 수훈을 세운 인물들에게 하사하는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삼총사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퍼거슨 감독도 그렇게 받았을까요? ^^* 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그라디 감독 역시 여왕으로부터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특별상인 MBE(Member of the British Empire)를 받아 영국 황실의 일원이 되는 영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두 분다 놀랍게 외길을 걸으며 팀과 나라 발전에 공헌하는 바가 크니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습니까.
● 영플레이어를 톱 클래스로 만드는 마법사들
두 사람 다 축구 유망주들을 더 키워야 영국 축구가 발전한다는 현실을 알고 늘 어린 선수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노고로 그라디 감독의 경우 전 잉글랜드 대표팀과 U21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플래트를 비롯, 제프 토마스(전 국가대표), 네일 레논(셀틱), 딘 아쉬톤(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대니 머피(토트넘 홋스퍼), 크레이그 히그넷(전 미들즈브러 FC), 로비 사비지(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현 블랙번 로버스)등 수많은 유망주들을 발굴해 훈련시켰고 그라디의 꼴을 먹은 어린선수들은 각각의 팀으로 부름을 받아 잉글랜드를 이끄는 굴지의 선수들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퍼거슨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데이비드 베컴(레알 마드리드), 네빌 형제, 폴 스콜스(맨유), 라이언 긱스(맨유), 니콜라스 버트(뉴캐슬) 등 맨유의 유소년 출신들을 현재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키워낸 것이죠.
이러한 성공사례에 대해 그라디 감독은 "우리는 우리가 길러낸 어린 선수들만큼 성적을 낼 뿐이다. 우리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예전에도 우리가 2부리그에서 뛰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면서 끊임없이 떠나가는 선수를 대체할 선수들을 만들어 가면서 만족을 느끼고 또 길러낸 선수들이 재 기량을 발휘해 꾸준한 성장세를 걷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길러낸 선수들을 잘 팔아 두둑한 수입을 챙기는 날도 있었고 그렇게 돈을 번 크루팀은 그라디감독에게 종신 감독직을 선사해 서로가 만족스런 축구 인생을 걸을 수 있는 것이었죠. 사실 그가 유망주 발굴에 성공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실한 그의 노력과 함께 냉철한 판단력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실제적으로 그라디 감독의 축구 수업은 주당 70~80시간에 달하는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해서 성장한 선수들을 큰 클럽에 보내면 늘 보상과 함께 보람이 뒤따랐다고 합니다. 그라디 감독은 지금의 매순간을 회상하면서 "매주 힘든 일이 계속되지만, 여전히 일은 재미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돈 때문에 선수를 만든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진정 자신의 길을 알고 그 길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웠고 축구를 하고 싶어서 찾은 어린 선수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첫 스텝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뜻 있는 지도자일 게 분명한 것 같네요.
● 심장질환도 닮은 꼴
지난 2003년 그라디 감독은 심장 판막에 문제가 생겨 새로운 인공 판막을 이식 수술했고 다행히도 별탈 없이 완쾌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몇 달 동안 불규칙적인 심장박동수로 인해 고통 받았던 퍼거슨 감독도 속도 조절기를 달아 어느 정도 안정을 되 찾았죠.
심장질환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늘 긴장의 연속과 스트레스로 인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제 추측이니……참조만 하시길 ^^;;)
그라디 감독은 동갑내기인 퍼거슨 감독에 대해 “그런 업적을 이룬 어떠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퍼거슨은 단지 프리미어 리그 매니저일 뿐만 아니라 굴지의 명문 구단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고 평하면서 “나도 마찬가지다(웃음)”라며 미소를 건넸습니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사실 나는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갖는데 이 친구보다는 싶다고 생각한다. 매일 큰 클럽에서 큰 경기들 속에 파묻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라디는 마치 재능있는 선수들을 콘베이어 벨트에 실어서 넘기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다. 그것도 20년을 넘게 거기에 있으면서 말이다. 재정적인 이유에서라도 선수를 팔아야 할 경우 그는 끊임없이 팀을 재정비해야만 한다. 매일 아침마다 그렇게 했을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놀랄만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내 생각에 그는 수백만 번이라도 팀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정말 감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클럽은 이러한 감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큰 행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분명 영 플레이어를 발굴하고 키우는데 즐거움을 가졌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것이 바로 그를 지탱해준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며 외인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업적을 만들어 낸 동갑내기에게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둘의 만남은 지난 해 10월 칼링컵을 통해 이루어졌는데요. 영국 언론을통해 장수 감독들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되었죠. 그 만남의 자리에서도 양감독은 오랜 동료를 만나듯 서로를 격려했다고 합니다.
●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자면?
퍼거슨 감독은 사랑하는 아내 캐시와의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던 반면 그라디 감독은 결혼도 자식도 없이 오로지 축구와 결혼한 워커 홀릭입니다.
한 영국 일간지에 따르면 그라디 감독은 거의 쉬는 날이 없고 휴일 날 혼자 머물기를 좋아하고 휴가가 2일이 넘어 3일 째 되는 날이면 무척이나 지겹다며 클럽으로 출근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남자 만나면 여자들이 꽤나 피곤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연세 드시도록 혼자라니 좀 안쓰럽긴 하네요..ㅜ..ㅜ
이와 다르게 퍼거슨 감독은 휴가를 즐길 줄 아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여름에 시즌이 끝나면 남부 프랑스로 가서 여름 햇살을 만끽하기도 하고 내기 걸기(베팅)도 종종 하구요. 특별히 자랑할 것은 지하 저장고에 있는 와인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되길래ㅡ..ㅡ;; 또한 경마도 즐기고, 어째 두 감독의 삶의 방식이 이렇게나 틀린지……사실 퍼거슨 감독이 더 워커홀릭 인줄 알았는데 삶을 즐길 줄도 아시고...…^^
● 축구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축구에 관한한 순수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두 감독은 늘 공격과 날카롭고 교묘한 패싱력에 대해서 설교를 한다고 합니다.
그라디 감독은 4-3-3 전법을 오랜 기간 동안 점검하고 다듬어 왔는데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전술에 대해 반복학습을 했을까라고 물으신다면 쉽게 비교해서 첼시의 무링요 감독이 한참 학창시절, 웨인루니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부터 그라디 감독은 자신의 선수들에게 4-3-3의 변형은 물론이거니와 전술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답니다.
또한 퍼거슨 감독역시 오랜 동안 지속해 온 4-4-2에서 보안 형식으로 바뀐 4-3-3을 병행해 가며 쓰고 있는데요 자나 깨나 늘 그의 머리속에서는 축구 판이 그려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선수를 어디에 배치해야지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라는 식으로 말이죠. 예를 들어
마치 인생사의 복잡다단함을 축구장에 그려 놓고 내 뜻과 노력을 다한 후 천운을 기다리는 심정, 이것이 이들 감독이 갖는 축구 철학이지 아닐까요?
● 영국 중서부 인접 지역에 위치한 두 감독의 현 주소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세계적인 기업 구단으로 성장한 올드 트라포드에서 백만장자의 사람들과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한 옷을 입고 매주마다 TV인터뷰를 통해 전세계에 모습을 비추며 영광과 영예를 한 몸에 누릴 때 그라디 감독은 모자 달린 파카를 하나 걸치고 작은 마을에 근거지를 두고 떠나가는 선수들에게 무거운 손을 흔들어 주며 또 다시 뒤를 돌아보아 주변 정비에 나서야 합니다.
영국 중서부에 위치한 체셔주(州) 내 인접 두 타운에서 활동하는 두 사람이 외길 인생으로서 오랜 축구명장의 길을 걷지만 사뭇 다른 느낌이죠? 지나온 길은 비슷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화려한 퍼거슨과 빛바랜 그라디 감독의 모습입니다. 비록 시대는 그를 알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요.
지금까지 기나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만 승리하고 오늘만 기뻐하고 오늘만 감사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필립도 필로 줄여서 부르고 앤드류도 앤디로 줄여서 말하니까 니콜라스가 맞다면 맞겠죠^^
웨슬리도 웨스로
좋은 글..ㅋ
팀의 크기를 제외하고서라도 한사람의 인생과 열정이담긴 얘기를 들으니 참 두분다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듭니다.
하지만 Crew 란팀이 프리미어팀이 아니라서 그런가 감독생활에 비해 발굴한선수가 적다.. 퍼거슨도 많다고 하긴 그렇지만 대스타를 여럿 만들었으니까요
헐 딘 애쉬튼 대니머피 로비 새비지가 그라디 감독작품이었군 헐헐
잘 읽었습니다.
영감님도 더 하실수있어요 ㅎㅎ
멋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