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손님이 놓고 내린 현금이 든 가방을 훔친 혐의로 입건된 40대 택시기사가 경찰서 조사 말미에 책상 위로 금팔찌를 올려놓았다.
아들이 절도죄로 경찰서로 가게 됐다는 소식에 78세 노모가 내놓은 14K 금팔찌였다.
택시기사 김모(43)씨는 지난 3일 오후 10시 30분께 손님이 놓고 간 가방을 훔쳤다. 가방 안에는 현금 25만원과 함께 고가의 안경, 차량 열쇠 등 100만원 상당의 물품이 들어있었다.
김씨는 신고를 받고 전화한 경찰관에게 순간을 모면하려는 마음에 거짓말했다.
"다른 손님이 가져간 것 같아요."
그러나 택시 미터기 기록과 주변 CCTV 기록을 철저히 뒤진 경찰의 추궁에 김씨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머리를 숙이며 경찰서에 조사받기 위해 출석한 김씨를 보고 놀란 건 오히려 형사들이었다.
창백한 얼굴, 곧 쓰러질 것 같은 행동거지 등 한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한 김씨는 불치병 환자였다.
지난 8월 몸이 좋지 않아 병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쿠싱 증후군'이라는 희소병 판정을 받은 김씨는 스스로 '5년밖에 못 사는 시한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쿠싱 증후군은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희소병으로 피로감과 쇠약감을 증상으로 동반하는 질병이다.
요양이 절실한 질병을 앓고 있지만, 월셋집 보증금 400만원이 전 재산인 김씨는 결혼도 못 한 채 70대 노모를 부양하기 위해 병 진단 이후에도 13년 동안 놓지 않았던 택시 운전대를 계속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병 탓에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해 한 달 동안 80만원 수입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내고 매달 들어가는 약값까지 내려면 빠듯했다.
여기에 지난 8월 희소병 진단받으며 들어간 입원 치료비 300만원 목돈이 삶을 더욱 궁핍하게 했다.
사건 당일 가방을 놓고 내린 손님을 떠나 보내고 택시를 길가에 세워 놓고 병 치료를 위해 4ℓ의 물을 들이켜던 김씨는 가방 안에 담긴 5만원권 지폐 다발을 보고 순간 눈이 뒤집혔다.
"저 돈이면 약값도 하고 어머니도 부양할 수 있겠는데…."
김씨는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 경찰서로 출석하기에 앞서 못난 아들의 사정을 노모에게 털어놨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합의금으로 쓰라며 손에 차고 있던 가느다란 금팔찌를 벗어서 내주었다.
죄는 밉지만, 안타까운 김씨의 사연을 전해 들은 피해자는 김씨가 전 재산이라고 내놓는 피해 금액의 절반가량밖에 안 되는 50여만원에 합의하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경찰에게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사건 초기 거짓말로 혐의를 부인해, 합의는 됐지만 절도죄가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탓에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김씨는 이번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이 더욱 안 좋아져 이달 말께 13년 동안 다닌 택시회사를 그만둘 예정이다.
그리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 노모를 부양할 길을 찾을 예정이라고 경찰에게 말했다.
25일 사건 처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전화한 경찰에게 김씨는 "여보세요"라는 대답 대신 "죄송합니다. 두렵습니다. 반성합니다"는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