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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
´인생은 헝클어진 채 방치된 실타래 그대로라도 무방하다는 얘기다.≪이병주, 행복어 사전≫´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리……"
중학생도 알아서 외우고 다닌다는 하여가와 단심가를 갑자기 고2의 자율시간에 읊는다 하면 다들 웃겠지만,
우리는 절대적으로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성계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너무나도 좋아하시는
담임선생님 덕에 아침마다 이 시를 읊는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자, 계속되는 짜증과 더불어 또 다른 공포였다.
하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이유는, 한마디로 선생님이 지닌 절대적인 권한이였다.
그렇다하여도, 싫은건 싫은 지라, 아침만 되면 옆에 있는 12년지기 친구, 일명 불알친구라고도 하는 수현이와
잡답을 하였는데, 오늘은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다. 글쎄 옆을 돌아봤더니, 수현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얼거진들 긔 엇더하리
우리도 이같이 얼거져 백 년(百年)까지 누리리라"
하여가 끝나고서도 말이 없는 수현이가 이상해 툭 찔러보았더니, 쓸쓸한 눈빛을 한가득 담고는
나를 쳐다보는게 아닌겐가? 여자라면, 괜찮냐며 토닥토닥 거릴마음은 있지만, 사내녀석을 안아주며
토닥거릴만큼 여자한테 부족한것도, 오해를 받고 싶지도 않았던 나는 멍하니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참동안 내 눈동자를 주시하더니 손을 꺼내들어 바람에 흩날리는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왼쪽팔로 턱을 괴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물론, 나는 알 수 없는 행동에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녀석을 가만히 보기만 하였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白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日丹心歌)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단심가가 끝나가는 무렵 수현은 시선을 거두고는 슬며시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또 다시 창가를 바라보는 녀석. 대체 무엇이 있나 궁금하여 나도 몰래 보았더니,
고작 있는 것이라고는 바람에 날려 어지럽게 떨어지는 복사꽃을 제외하고는 볼 것도 없었다.
그러자 문득 '이 녀석이 이리도 감수성이 풍부한 녀석이였나?' 라는 생각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서 수현은 말문을 열었다.
"혹시, 그 상황에 이성계는 정몽주를 좋아하고 있지 않았을까?"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이방원과 이성계의 러브모드를 논하는 녀석이 이상해 보여 살짝 비웃으며 보았는데,
말하는 녀석의 표정이 어찌나 진지했는지 나도 모르게 급하게 표정을 굳혀버렸다.
그러나, 나의 지금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떨어지는 복사꽃을 보여주는 창가에만
시선을 두고는 정작 말하는 대상에게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이성계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과 다른 가치관으로 제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것이
슬프니까, 그래서 정몽주에게 같이 가자고 한 것이 아닐까?"
"……."
하마터면 그대로 나올뻔 한 비웃음을 애써 참으며 계속해서 수현을 주시했다.
왜 갑자기 맨날 듣던 시조에 관심을 품는 것일까? 하는 의문부터 시작해서,
혹시 이 녀석이 봄이 되서, 꽃이 만발하니깐 정신을 놓았나? 라는 의문까지 품었지만
이녀석이 누군가를 사랑한다? 라는 의문은 딱히 내 머리를 뚫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워낙 여자한테도 무관심했고, 그렇다고 남자애들한테 동성애자처럼 진한 스퀸십도 안해오던 녀석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그쪽은 내 생각속에서 배제 돼가고 있었다.
그러기도 잠시. 갑작스레 창문을 열어 버리는 행동에 나는 맨 처음 의문에 확신을 가졌다.
"그럼 정몽주는 뭔데?"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녀석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라고 말하면 이건 거짓말일까?
하지만 정말로 그랬다. 몇십년동안 같이 지내오면서 저렇게까지 폼을 잡으면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다가 워낙 이쁘장하게 생기고 조막조막해서, 아무리 폼을 잡아도 '아. 얘는 멋진 남자야'라는
의식보다는 '쟤 예쁜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텐데, 그것을 자각을 하는건지 못하는 건지…….
여하튼, 수현이는 봄바람이 매섭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열어두었다. 한술더떠서, 가느다랗고 길쭉하게 뻗은 하얀팔을 내밀어 손을 펴보인다.
그러자 도무지 나무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보다는, 마치 하늘에서 뿌려진 분홍색 눈꽃송이 같았다.
그 수많은 분홍색 꽃잎중에서 수현의 손바닦에 내려앉은 꽃잎은 볼품없었다.
선명한 분홍색도 아니였으며, 그렇다고 예쁘게 연한 분홍색도 아닌 흐지부지한 색과
다 갈라지고 갈색으로 끝에가 물든, 정말 한마디로 볼품없는 꽃이였다.
허나, 수현은 그꽃이 담긴 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자신의 책상위에 펼쳐놓았다.
"그건 나도 몰라."
"응?"
"나도, 정몽주가 누굴 좋아 했는지 모르겠어."
당황하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하였다. 자신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질문에 어떤 근거도 없는
이방원과 이성계 사이의 설(說)에 나는 수현에게 그런쓸때없는 생각은 집어치우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타이밍 좋게 종이 쳐버렸고 녀석은 아까보다는 조금더 낳은 표정으로 생긋 웃었다.
호수에 꽃잎을 띄우면 이런 기분일까? 너무도 넓은 공간에 작은 무언가를 띄웠을때는
뭔지 모르는 안정감, 호기심, 공허감이 같이 생겨버린다. 그리고 그 기분이 바로 수현이의
미소에서 느껴버렸다. 양쪽 눈꼬리를 예쁘게 늘어뜨리고 작은입술로 떨려오는 미소.
그렇게 나는 녀석의 미소에 또 한번 말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
"배고프다"
예정되지 않은 이동수업에 짜증날대로 짜증나있던 나는 이마에 팔자주름을 만들고
일교시부터 멍하니 앉아있는 수현이를 끌고 지나갈 무렵 나즈막히 들려오는 은은한 목소리.
더더욱 얼굴을 찌푸리며 녀석을 돌아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배고프다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더욱 어이없어진 나는 걸음을 좀더 재촉했다.
그때였다.
3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우리옆을 지나가고, 그 순간 수현이 얼굴을 급하게 찌푸렸던 것 이다.
"……."
일명 사군자라 불리며, 어느 고등학교에나 있을법한 뛰어난 인재들이 결성된거라 하면 좀더 간단할까?
국화. 본명은 이강현으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한 3학년 선배로 여자들한테 인기는 최고 수준이였다.
그리고 매화라 불리는 강연희 선배는 사근사근하며 명석한 머리로 모든 남자를 휘어잡았고,
난을 상징하는 이선수 선배는 난을 의미하는 것처럼 곧은 사람을 그대로 상징하였기에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마지막으로 죽을 상징하는 민서휘선배는 훤칠한 몸과 시원스런 이목구비에
여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수많은 남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였다. 물론 사심을 갖고 있는 남자도 많았다.
여하튼, 우리 학교내에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외모,머리를 소유한 그들이 옆을 지나갈 무렵,
그 중에 한명. 누군가와 눈을 마주친 수현은 고개를 살짝 떨어뜨리고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입술에서 붉은 피로 번져가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왜그래?"
저대로 두었다가는 자신의 입술을 다 깨물어 놓을 것만 같아, 그 선배들을 다 지나치고 난뒤
옆에 살짝 다가가 나의 큼지막한 손을 녀석의 머리위에 턱하니 올려놓았다. 그러자 고개를 살짝 올리고는
씩 웃은 뒤 내손을 잡고는 자신의 머리를 막 비비기 시작하였다. 일종에 버릇이였다.
그 버릇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나는 조금은 안타깝게 녀석을 쳐다보았다.
"있잖아. 은섬아. 우리 땡땡이 칠래?"
고개를 빳빳히 들고는 위험한 땡땡이를 권유하는 녀석을 멍허니 쳐다보다가 나는 곧 피식 거리며 웃었다.
나는 뭐, 워낙 공부에는 흥미없어서 실업계를 가고 싶어했으나, 워낙 녀석이 같이 이 곳으로 오자 해서
왔던지라 땡땡이를 치던말던 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는 녀석이 땡땡이라는
위험한 행동을 원하다니. 하긴, 같이 땡땡이치면 분명 '네가 수현이 꼬드겨서 같이 나갔지? 에휴…….'거리며
혀를 끌끌찰 선생의 모습이 훤해서 웃어버렸다.
"나야 상관없지. 근데 네가 왠일로 땡땡이?"
"그냥 갑자기 수업듣기 싫어졌어. 우리 작은 반항하자."
"그럼 그 작은 방항을 어디서 할껀데?"
"옥상."
오전시간에는 옥상을 개방해놓는 특성때문에 올라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으나, 들키나 안들키나가
큰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선뜻 '응' 이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자, 녀석이 그 작은 손으로 나의 팔을 휘어잡더니
방향을 바꿔 옥상으로 올라가버리는게 아닌가? 우뚝서서 안간다는 주장을 내새울만큼 녀석에게는 강하지 못했다.
워낙 수현은 동생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무슨 부탁이든 제안이든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
얼마지나지 않아 수현은 우뚝 서서는 옥상문을 열자 햇살과 바람이 함께 우리를 맞이했다.
물론 그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던지라 반항없이 안으로 들어갔고, 혹여나 들킬까봐 문을 닫았다.
한편 옥상으로 들어선 녀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담고는 옥상난간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나는 그 모습이 싫지 않았기에 성큼성큼 걸어가 녀석 옆에 자리를 잡고 서서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시야에 비춰진 수현의 머리카락은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흩어져가고 있었다.
"은섬아."
"……?"
"넌 대체 여자를 몇명이나 만난거냐?"
뜨끔 거리는 마음을 숨키기 위해 애를 썼지만 표정이 굳혀져가며 앞으로 시선을 돌린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물론, 그렇게 반응하는 내가 재밌었는지 나를 보고 있는 수현의 잔잔한 미소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음, 글쎄? 별로 많이 안만났는데?"
"어이구? 이주일에 한번꼴로 여자를 바꾸는게 별로 안만나는 건가?"
"에?! 넌 내가 만나는 여자수도 셋냐?"
"이름도 다 외우겠다. 네 여친들 맨날 나한테 와서 '은섬이 오빠는 뭐 좋아해요?' 이러는 걸?"
"……여자들이란…."
놀란 얼굴로 수현이를 쳐다보다 재밌다는 듯이 녀석을 계속 웃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미소에 다그치는 것을 포기하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학교에는 여러가지의 색들이 만발한 꽃이 펼쳐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은 보기에도
상막한 차들과 무식하게 크기만 한 건물들이 우뚝 자리잡아 한마디로 꼴불견이였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웃겨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여자들을 그렇게 많이 만났으면 키스도 많이 했겠네?"
"이 녀석!"
화들짝 놀라며 녀석을 쳐다보았는데,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냐."
"남사스럽게 무슨 키스 이야기냐? 그것도 남자 둘이서."
"에? 친구끼리 야동도 공유하는 세상에 고작 키스가지고 왜그렇게 민감한 반응이야?"
일리있는 말에 입을 꼭 다문채 '콩' 소리가 날 정도로만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자 머리를 감싸안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투덜투덜 거리는 녀석.
솔직히, 난 수현이가 야동도 보지 않길 바랄뿐이다. 마치 엄마가 아들을 혼란한 세상밖으로
보내기 싫은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나는 이녀석의 엄마노릇도 하고 있었다.
"나한테도 키스 가르쳐줘."
시선을 돌려 작은 나무의자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에 붙잡힌 나의 손과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아까처럼 화들짝 놀라며 수현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처럼 얼굴에 미소는 그려져 있었으나, 너무나도 안타깝게 보여 장난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대치고 빠지는 그럴 상황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혼동도 잠시, 나의 대답도 듣지 않은채 두눈을 감고는 디딤이 될만한 곳에 올라가는
것도 모잘라 까치발까지 올려가며 입술을 포개버린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꼭 다문 입술, 그리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는 손을 보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하니, 조금은 놀려줄까하는 마음과 밀쳐내야할까 하는 마음이 교차했고,
나는 후자대신 전자를 선택했다.
"……."
녀석의 두팔을 나의 목덜미에 휘감게 만들고는 나는 한손으로 녀석의 목을 둘렀고,
한손으로는 그 가느다란 허리를 둘르고는 확 잡아 끌었다. 그러자 까치발이 무너졌고, 그 충격에
'아' 거리며 살짝 벌린입술일 틈타 혀를 낼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나는 자세를 좀 낮춰가며 녀석을 더욱 껴안았다.
"으…음……."
녀석의 벌어진 틈세로 들어간 내 입술을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먼저 녀석의 하얀이를 쓸었갔고,
입천장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그 곳이 민감하였는지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허나, 나는 조금의 쉴틈도
주지 않으며 피하는 녀석의 혀를 찾아 내서는 계속해서 농락했다.
계속될수록 파르르 떨어가며 손에 힘을 꽉주며 눈꼬리 끝으로 맺혀오는 녀석을 보고 있자하니 미안한마음과
나를 도발시켜 놓고는 저리도 안타깝게 매달리는 모습에 재밌어하는 마음이 겹쳐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녀석의 색기있는 얼굴과 질척거리는 소리에 중심이 무거워져
이내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자 마치 은빛실처럼 반짝 거리는 타액이 수현과 나를 연결하고 있었다.
"……."
살짝 풀린 눈으로 아직도 내 옷을 부여잡으며 다리를 후들거리는 녀석이 안타까워 엄지손가락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쓸어줬다. 그리고는 그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맞추자 달콤한 미소를 짓는다.
"아……너무 그렇게 도발적인 행동은 자제 해줘. 나도 혈기왕성한 남자라고."
내 대답을 과연 듣기나 하는 것인지 여전히 미소를 띄운채 내 옷을 꼭 부여잡고 있던 녀석은
갑작스럽게 내 품으로 들어왔다. 품에 들어온 녀석을 떼어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안아줬다.
"방금 너랑 한 키스. 첫 키스 아니야."
"……?!"
수현의 말에 놀라버린 나는 흠칫거렸다. 워낙 여자하고는 관계가 없던 녀석인지라 충격은 더컸다.
물론, 내가 첫키스가 되라는 법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실망감이 겹쳐들어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냥 더더욱 녀석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품을 더 파고 들어왔다.
"여자 아니야. 남자야."
놀라서 녀석을 떼어내어 다그치려했지만 나의 와이셔츠에 퍼지는 축축한 느낌과 녀석에게서
풍겨오는 우유냄새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종이 칠때까지 그렇게 녀석은 두눈을
적시다가 지쳐 스르륵 잠이 들었고, 나는 가볍디 가벼운 녀석을 번쩍 들고는 양호실로 향했다.
.
수현을 들고는 양호실로 가는 내내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남녀공학인데도 불구하고 나와 녀석을 엮는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고 있자하면 인간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간다. 그렇게 힘들게 양호실로 도착하였더니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건
이미 상의를 다 풀어해친 남자랑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구분이 안될정도로 중성적인 이미지를 소유한
사람이 비춰졌다. 그리고 몇초지나지 않아 중성적인 이미지를 자아내는 사람의 하얀가운을 보고는
남자라는 확신과 양호선생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그만 녀석을 놓칠 뻔 했다.
"뭐야."
"……."
"이봐, 분위기 파악도 못해? 봤으면 나가는게 예의야."
수줍게 가운만 걸치고 흰속살을 다 내비추며 쑥쓰러워하는 양호선생과는 달리 뭐가 그렇게 기고만장한지
딱 벌어진 와이셔츠를 여미지도 않은채 나와 수현이를 번갈아보며 '너네도 여기서할려고? 아님 벌써 하고왔나?'
라는 딱 자기 수준에 맞는 생각을 하는 듯한 그 눈빛은 기분이 나빠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고, 사태파악을 해버린
양호선생은 두손을 저어가며 대낮부터 남자를 범하려던 놈을 말리고 있었다.
"여긴 분명 양호실이고. 내 친구가 쓰러져서 여기 왔다는데 무슨 상관이죠? 오히려 그쪽이 얼굴을 붉히며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딱 보아하니 선배였다.
어느정도의 격식을 차리고 이야기했더니, 이번엔 싸늘한 미소를 그려내고 있었다.
"융통성이 떨어지는 건가? 여기서 이런……."
"은섬군이였나? 미안……, 지금일은 잊어줘. 그리고 은섬군 친구 침대에 눕히도록 해. 우리는 나갔다 올께."
한판붙자는 놈과는 달리, 놈의 입을 작은 손으로 막아가면서 까지 양호선생은 빠져나갔다.
그러자 드디어 양호실은 조용해졌고, 나는 창가바로 옆에 있는 곳에 녀석을 눕히고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
과연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의 입술을 빼앗아간 남자는 누구일까?
무방비한 상태로 얼굴에 눈물자국을 묻혀가면서까지 잠을 청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하니 찹찹했다.
수현이의 어머니가 병으로 인해 눈을 감기전까지 당부했던 말씀이 스쳤고, 그때마다 난 씁쓸했다.
잘 모르는 수현이를 부탁한다며 내 손을 꼭 부여잡던 차가운 손의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드르륵."
그때였다.
드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한사람. 그 사람은 땡땡이 치기전에 우리를 스쳤던 사람이자,
죽을 상징하며 훤칠한 민서휘 선배였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벌떡 일어나 그를 마주봤다.
"수현이가 쓰러졌다고 하던데."
둘이 친한걸까?
친근하게 수현이라고 불르는게 조금은 거북스러워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시야에 들어온 그는 아까와는 달리 상당히 흐트러진 얼굴로 걱정이 얼굴에 가득 담겨있었다.
"……."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지나치고 수현이가 있는 쪽으로 가더니 말없이 계속 쳐다보는 선배.
나는 조금은 당황스러워 하며 그와 수현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잊은듯 녀석만 쳐다보며 자꾸 내려오는 자신의
갈색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빤히, 둘을 쳐다보던 나는 어디다 시선을 둘지몰라 창가로 시선을
돌렸고, 마치 작게 열린 창문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복사꽃의 방향을 주시했다.
그 꽃은 마치, 예정 됐다는 듯이 그 선배의 머리위로 살포시 주저 앉았다.
아까 아침에 수현이 손바닦에 있던 꽃과는 달리 선명한 색에 꽃잎한장 한장이 다 예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 있을테니깐, 넌 수업 들으러가."
"하지만……, 선배님도 수업을 들어야…."
"괜찮아."
수업듣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 선배의 제안을 받지 않으려 했으나 매섭게 뜬 눈 하며, 끊어지는
대답에 더이상 어떠한 말대꾸는 하지 않은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뒤로 한채 나오려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뒤를 돌아봤고, 그 자리에 있을 수현이도 듣지 못 했을 법한 목소리에 더 돋보인 입모양을
보며 알수없는 소용돌이를 휘감은채 밖으로 나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온 나는 미간을 집고는 쓴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수현이가 쓰려진 것을 걱정하며 달려온 유명한 선배. 그리고 내가 본 그 한마디.
알수없는 미묘한 감정과 상상에 걸음은 느려졌고, 더이상 교실에 들어갈 수 없는 답답함에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렇게 나는 본관 뒤쪽에 위치한 등나무와 어울러진 벤치에 힘없이 늘어졌다.
'여자 아니야. 남자야.'
'나도, 정몽주가 누굴 좋아 했는지 모르겠어.'
과연 수현이가 내게 하고 싶어했던 말은 무엇일까?
녀석이 했던말중 아직도 내 기억속에 자리잡은 말들을 이리저리 끼워맞춰 보아도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건, 민서휘선배와 수현이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였다.
헌데, 왜 하필 민서휘선배인걸까. 왜 하필 수현이인걸까.
"……왜, 그 둘이야……."
긴 벤치에 다리를 뻗고 누운 나는 등나무 사이사이로 내 기분따윈 무시한채 쏘아오는 햇빛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
놀랐다.
놀랬다.
놀란다.
"……."
3교시때는 잔소리듣느라 많은 수업을 듣지 못했고, 4교시때는 또 책상에 엎드려 자느라 수업따윈 듣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생활중 첫번째로 중요한 시간, 점심시간이 되서야 또렸해진 눈으로 녀석을 데리러 양호실에 도달햇을때
나는 솔직히 망설였다. 계속 그 선배가 있을것도 아닌데, 왠지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끝내 나는 그 문을 열었고, 보면 안될 것을 보았다.
그래서,
놀랐고
놀랬고
놀란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나를 마주치지 못한 수현이는 벗은채 민서휘 선배에게 안겨 더운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눈물을 흘려대는 수현이의 뺨을 닦아가며 움직이는 선배와 눈을 마주쳤을땐, 그저 내가 한심했다.
민서휘 선배의 차가운 눈빛을 또렷히 쳐다보다, 어떤 응답대신 쓴 웃음을 지은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급식소대신 매점으로 들어가 빵한아름을 사들었다.
아직 밥을 못 먹었을 녀석 몫까지 말이다.
.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쯤에 나타난 수현이는 미안하다는 말대신 내 옆에 앉아 봉지에 손을 넣어 빵하나를 꺼내 들었다.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던 나는 빤히 쳐다보았다. 물론, 크림빵을 한입베어물고는 웃고 있는 녀석의
눈꼬리에 달려있는 눈물에 이내 시선을 돌려야했지만 말이다.
"…은섬아."
종이쳤고, 다들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자리를 하나씩 잡아갈때쯤 떨리는 음성에 나도모르게 옆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빵을 한가득 베어물고 두눈에 눈물을 한가득 담고는 뚝뚝 떨어트리는 녀석이 보였다.
미끄러진 시선에는 검은머리카락 몇가닥이 힘들게, 아주 힘들게 수현이의 목덜미의 키스자국을 가리고 있었다.
어쩔수 없다는 듯이 짧은 한숨을 쉰 나는, 앞에 있는 아이에게 짧은 변명을 부탁하고는 수현이를 안아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내 품에 안긴녀석은 거부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파고 들었다.
"나……나……하면…안……되…ㄹ…일을……했…어……."
간신히 말을 이어가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녀석.
나는 듣기 싫은 나머지 대답대신 빠른걸음으로 학교밖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사람이 잘 오지 않는 별관 근처로
뛰어와 녀석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후들거리며 간신히 내팔을 잡았다.
"알아."
"……!"
"아니깐, 제발 네 입으로 더이상 말하지마."
"ㅇ……은…서…ㅁ…."
"난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상황인지 하나도 몰라.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아."
"……."
알고 있다는 내 말이 그리도 충격적이였을까?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녀석을 쳐다보다 긴한숨을 쉰 나는 벽에 기대 쭉 미끌어졌다.
도통 어떤말로 수현이를 달래야하는지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모른 나의 못된 방법이였다.
아마, 녀석에게 고통을 준 최대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왜 하필 지금 생각나는 걸까?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수현이의 검은 머리칼을 쓸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이미 나는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 안다고 했지? 그럼……."
"………."
"나……더러워 보여?"
계속 흔들리는 눈으로 묻는 녀석이 안타까워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채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냥 '아니'라고 말하면 될 것을, 도저히 나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나보다.
"……."
너무도 긴 정적이 흘러 조심히 두손을 떼고 수현이를 보았다.
풍성한 복사꽃나무 앞에서 어제처럼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녀석.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마치 나한테 무슨일이 있었던 것만 같이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채
결국엔,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웃지마!"
"……."
"차라리 울어! 내가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 할 정도로 울으라고!"
악을 쓰며 녀석에게 소리를 질렀을때, 그때 녀석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세상을 포기한 사람의 욕심없는 눈빛. 모든것을 포기한 듯한 그 두렵고도 서늘하던 그 눈빛.
"미안."
그리고 들리는 떨리는 목소리.
지금 녀석한테서 들어야 할 말이 아닌 말에 지쳐버렸다.
.
.
"끝"
"엥?!"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는 그녀는 이야기를 들을때와는 다른 뾰루퉁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러자 작게 웃으며 손가락을 그녀의 부풀은 뺨을 꾹 눌르며, 평범한 연인같은 모습을 자아냈다.
"그런데 진짜로 그렇게 끝나?"
"응."
"뭐야! 그럼 은섬이는 수현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끝난거잖아!"
"그렇지."
"에이 뭐야."
시시하다는 듯이 혀를 차던 여자는 갑자기 들려오는 벨소리에 플립을 열었다. 그리고는 눈한쪽을 살짝
찌푸리더니 밖으로 나간다.
"당연하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사라져버렸으니깐."
그의 음성이 은은한 커피향처럼 이 곳을 퍼져나갔다.
※
안녕하세요!
쓰라는 소설은 안쓰고 이렇게 3주동안 단편을 우려먹으며 겨우 완성 시켰답니다!
마지막 부분의 급 전개는 ....힘들었어요.
첫댓글 으음.. 그럼 이 이야기를 해주던 남자가 그 주인공중의 하나인건가요..?? 내 머리가 나쁜건가... 끝이 이해가 안가!!ㅜ
그렇죠!!!!!!!!!!!!!!!!빙고!!!!!!!그셋중의 한명이에요!!!
이런 소설 너무 좋아합니다 ㅠㅠㅠ 아 정말 잘읽었어요
꺅 감사합니다 ㅠㅠ 아무리생각해도 허졉스러웠는데...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우후후훗......... 이소설의 목적이엿답니다 /ㅅ/* 은섬이는 과연 누굴 좋아했을까요?!!<ㄻ
나이해안되요!!!!!!!!!!!!!!!!!!!!!!!!!!알려주세요알려주세요!!!!!!!
그 민서휘선배는 수현이를 좋아했고, 그래서 수현이 에게 고백도 했고 범하기도 했는데 남자에 대해 경험이없던, 여자한테도 경험이없던 수현이한테는 너무나도 낯설은거죠~물론 서휘의 마음만 제대로 등장시켰고 은섬이랑 수현이의 마음은 제대로 등장시키지않앗어요 /ㅅ/*그리고 그들을 왕,정몽주,이성계라고 짜맞추는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