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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하니,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씨가 이 캠퍼스에 자리를 잡은 것은 언제부터일까? 제법 오래 된 것 같기는 한데...... 어쩌면 이 양반도 나만큼이나 오래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나하고 똑같은 13년짜리면 좋겠는데...... 대학물을 그 정도도 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지혜로워질 수 있겠는가? 이 캠퍼스 안에서 생활하는 인사들 중에서, 구사하는 어법이 나와 가장 유사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이 사람이다. 나는 언젠가 이 사람의 어록(가제: <최씨 어록>)을 편찬하려고 한다. 원래 현자(賢者)들의 말씀은 기록되어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는가?
2천 여년 전에 살았던 아테네 현자들의 말씀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소피스트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예컨대 “정의(正義)는 강자(强者)의 이익이다.”(힘 센 자가 되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거나 “인간은 만물(萬物)의 척도이다.”(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 따로 옳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은 동일한 요점을 전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지식을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그러니 지식 탐구, 즉 공부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남겼다. 견유학파(犬儒學派)라고 불린 사람들도 있었다. 견유학파에 속하는 디오게네스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알렉산더에게 “햇볕이나 좀 가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대꾸했다고 하며,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는 “배고픔도, 뱃가죽을 슬슬 문질러 주는 것으로 해결되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디오게네스는 성욕을, (동일 삼촌의 어휘로 말하자면) ‘오형제’를 이용해 해결하곤 하였다고 한다. 그의 숙소이자 침대인 통 속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여자가 있었을 리가 없으니, 그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바쁘다, 바뻐.”도, 일설에 의하면, 디오게네스의 말이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모양을 보면서 그것을 풍자하여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통을 바쁘게 굴리면서 그 말을 외쳤다고 한다. 디오게네스의 이 세 마디도 결국은 하나의 요점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피스트가 소크라테스의 적(敵)이라면, 견유학파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뻘이 된다.
내가 보기에 현자 최씨는 이들 고대 희랍의 현자들을 능가한다. 어떻게 보면 소피스트 같고, 또 어떻게 보면 견유학파 같은 것이, 최씨는 이 두 학파를 종합한 새로운 학파(‘최씨 학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양반의 작업실이 위치해있는 문화관과 정보통신관 사이의 거리는 고대 아테네의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이 양반의 작업실은 물론 작고 허름한 임시 건물, 아니 빡스(혹은 부쓰?)로 되어 있다. 그래도 이 빡스가 디오게네스의 빡스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 여기에는 인터넷까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냉방시설까지 완비되어 있다.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내는 이상하게 시원하여, 두리번거리면서 구석구석을 조사해 보았더니, 환풍기 두 대가 교묘하게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감탄을 하자, 최씨는 흐믓해 하면서, 예의 그 간단명료한 듯, 과장애매한 듯한 어법을 사용하여 한 마디 하였다. “나가는 것은 윗 쪽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랫 쪽으로.” 뭐, 이런 식이다. 최씨는 그러한 멋진 표현을 뱉어 놓고는, 속으로 몇 번이나 그 표현을 음미하면서 남모르는 기쁨을 느낀다.
아, 최씨는 물론 신기료장수이다. 구두수선공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어렸을 적에 안데르센 동화에서 보았을 뿐이지만, 그것은 순 우리말이다. 예전에 (1950년대까지?) 신기료 장수들은 돌아다니면서 일감을 구했고, 그래서 그들은 돌아다니면서 큰 소리로 외치곤 하였다. “신기우려, 신기우려.” 그래서 신기료 장수다. (이것은 내 말이니, <최씨 어록>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2
“고양이는 쥐를 ‘다’ 잡지는 않습니다.” 연구실에서 싣는 슬리퍼의 끈이 끊어져 그것을 들고 찾아갔을 때의 일 같다. 한 손에는 송곳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검은 색 수선실을 든 채 리드미칼하게 슬리퍼를 꿰매어가던 최씨가 또 한 마디 내어 주었던 것이다. 뭐라고요 하고 내가 묻자, 최씨는 설명을 해 주었다. 다 잡아 먹어버리면, 그 다음에는 뭘 먹고 사느냐? 고양이는 일종의 양식(養殖)을 하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이다. 자기 같이 영업을 하는 기술자들은 슬리퍼 하나를 수선할 때에도 완전하게 해주지 않아, 손님들로 하여금 조만간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내가 기가 막혀서, 그러면 내가 쥐란 말이냐 하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 슬리퍼는 완벽하게 고쳐 놓았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쳤다. 사실 그것은 완벽하게 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도 본드만 칠해 접착해버렸어도 될 것 같은데, 그 날 따라 시간 여유가 좀 있다면서, 최씨는 촘촘하게 꿰매주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슬리퍼 수선 비용은 3000원.) 이거 튼튼하게 된 겁니까 하고 물으면, 최씨 대답은 항상 똑 같다. 다른 데가 떨어질지언정 그 곳은 절대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최씨의 주장에 의하면, 자기에게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가족들의 물건까지 가져와 맡긴다고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한테 얹혀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또 무슨 소립니까? 그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하면, 사실, 남자 구두는 백날 고쳐도 남는 게 별로 없는데, 여자 구두는 남는 게 좀 있어서, 자기가 여기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여자 구두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라는 소리란다. 즉, 여자 구두가 일감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남자 구두 일감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란다. 헬스 센터에서 역기 들 때 쓰는 손목 보호대를 수선하려고 들렀을 때 들은 말이다. (손목 보호대 수선 비용은 3000원. 이 가격은 좀 이상했다. 손목 보호대 새 것 값이 5000원인데.) 그 날 내가 작업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여학생들이 여러 명 들어 와서 뒷 굽을 갈아 달라면서 구두를 맡기고 갔다. 여자 구두는 남는 게 제법 있다구요? 예 제법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해 놓고는, 마치 넋두리를 하듯 최씨는 한참을 혼자 말했다.
그래도 큰 돈이야 되겠어요? 큰 돈 벌려면 다른 거 해야죠. 그냥 마음이 편하니까 이 일을 하는 거지요. 그래도 구두 하면서 재봉틀까지 같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제가 기술이 좀 되거든요. 저니까 그 손목보호대 수선해 드리는 거예요. 재봉틀도 만지니까. 이게 마음 편해요. 한 때는 하루에 800을 만져보기도 했어요. 예? 800만원요. 그래요. 하루에 800만원 벌었다는 말이지요. 맞아요. 주식에 손댔던 거걸랑요. 이제는 안 해요. 손 땠어요. 그게 사람 사는 게 아니걸랑요. 그래서 요즘은 일년 내내 벌어도 그 때 하루에 벌었던 것보다도 못하지만요. 그래도 이게 나아요. 그게 사람 사는 게 아니예요. 욕심이 끝이 없고. 최씨는 씨니컬한(cynical: 견유학파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800벌면, 1000벌고 싶은 게 사람이예요.”
그랬는데, 그 후 내가 다시 최씨를 방문했을 때에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이 날은 아마도 그냥 구두를 깨끗이 닦고 광택이나 내려고 들렀던 것 같은데(광택 비용은 2000원), 작업실 높은 곳에 컴퓨터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으며, 모니터 화면에는 붉은 색과 푸른 색으로 되어 있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꺾은 선 그래프가 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마침내 알아낸 나는, 최씨 아저씨, 저런 거 안 하기로 하셨다면서요 하고 항의하듯 물었고, 최씨는 마치 자신의 어법을 잃어버린 듯 평소와 달리 우물우물하면서 대답하였다. 제가 잡기(雜技)에 좀 능해서요. 잡기에 능하다니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자기는, 당구는 프로는 못되어도 준 프로는 되고, 카드와 고스톱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어서 내기 당구나 노름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을 끊으려니 천상 주식이라도 해야 하겠더라는 소리이다. 그래서 올 해 1월달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며칠 전에 들렀을 때에도 모니터에 주식 시세가 떠있는 것이 보였다. 요즘 주식이 많이 올랐다던데, 재미 좀 보셨나? 최씨는 즉각적으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식은, 돈을 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더니 한 2초의 간격을 둔 후에 “주식은, 돈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주식은, 사 두면, 오르게 되어 있는 법이라는 소리이고, 그러나, 기관투자가들은 항상 따는데 그들이 따는 돈은 우리 같은 개미군단에게서 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소리라고 한다. 나는, 물론, 그런데 그 짓을 왜 합니까 하고 물었고, 그는, 물론, “주식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는 쪽을 들이대어 대답하였다.
3
나는 최씨를 이해한다. 아, (최근에 장환이에게서 배운 어휘로 말하자면) 나는 최씨를 양해(understanding)한다. 그러니 최씨는 나에게 따로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 ‘이해’와 달리 ‘양해’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 행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양해’는, 지적(知的)인 성격의 숨은 뜻(connotation)만을 가지고 있는 ‘이해’와 달리, 정서적인 숨은 뜻도 가지고 있는가? 이 점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다음과 같은 점은 분명하다. 나는 최씨를 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충분하게 공감하고 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씨는 기술이 괜찮은, 좋은 신기료 장수일 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다. 최씨는 자존심이 강해서, 자기 말마따나, 자기가 손 본 곳은 두 번 다시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해 주며, 그렇게 완벽주의로 일하다 보니, 비록 냄새나는 헌 신발이기는 하지만, 한 켤레, 한 켤레 작업을 마칠 때마다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까지 한다. 5시에 일을 마치면 읍내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즐긴다. (나는 삼례읍에 수영장이 생겼다는 사실을 최씨로부터 듣고 알았다.) ‘선천성 심장판공증’이라는 병이 있지만, 쉬지 않고 10바퀴 정도는 돈다. 일감이 크게 줄어 버리는 방학 기간이 너무 길어 -- 방학 중에는 3시까지만 일 한다 --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 덕분에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손 대봤지만 결국은 다 실패로 끝났고, 그리하여 이제, 나에게는 이 일이 천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일에 만족하면서 하루하루 편안하게 보내고 있다.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거나 슬며시 조바심이 고개를 쳐들지 않는 날에는 말이다. 텔레비전을 보면, 앉은 채로 큰 돈을 버는 놈들도 많고 크게 ‘해 먹으면서’ 용케 걸리지 않는 놈들도 많다. 그러나 최씨는 그런 것 보고 울화통이 치밀 정도로 수양이 안 된 사람은 아니다. 최씨가 참기 힘든 것은, 학교 다닐 때는 별 볼일 없던 동창생 녀석이 프랑스제 구두를 신고 나타나 한번 잘 닦아보라면서 발을 내밀 때나, 일감이 하도 없어서 싼 값에 처분해 버린 시내의 한 구두 수선 코너가, 갑자기 폭주하는 일감과 더불어, 권리금만 해도 몇 천 만원이 나가는 명당 자리로 탈바꿈할 때이다. 그 때 최씨는 울화가 치밀 뿐 아니라 불안해지기도 하고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내가 너무 편안하게, 너무 한가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아직은 뼈가 부서지게 일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 저녁 다섯 시에 일 끝내고 수영하러 가는 놈은 전라북도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돈 벌이가 될 만한 일이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최씨는 다시 주식 시장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 후 최씨는 수선비로 받는 3000원, 4000원은 돈 같이 보이지도 않게 되었고, 특히 돈 안 되는 남자 신발은 건성건성 처리해버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며, 고급 기술을 발휘하는 세밀한 작업을 할 때마져도 예전처럼 재미를 느끼지는 못한다.
이게, 내가 파악한 신기료 장수 최씨의 정체이다. ‘파악했다’거나 ‘이해했다’고 주장하려면, 위와 같이 복잡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신기료 장수 최씨, 혹은 현자 최씨는 소피스트와 견유학파 사이에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파악한 것이다. 어록을 채울 최씨의 독특한 어법도 방금 파악된 요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지만, 나는 그 관련성을 분석하여 파악하는 일을 하는 대신에, 다른 종류의 일을 하려고 한다. 나는 최씨가 이쪽 저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양해한다. 나는 최씨에게 공감한다. ‘양해한다’거나 ‘공감한다’는 말이 상대를 칭찬하거나 상대의 행동을 추천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면, 나는 그 말을 취소하여야 하겠다. 그러나 그 말이, 말하는 사람 자신도 상대와 동일한 형편에 처하여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나는 그 말을 취소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최형,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오. 최형에 대한 나의 평가 내용에 대해서도, 또 허락도 받지 않고 최형 이야기를 이렇게 쓴 것에 대해서도 말이요. 그것이 사실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고, 나 자신에 대한 평가니 말이요. 우리는 말투도 유사하고, 취미도 똑 같고, 사는 곳도 같고, 직장도 한 곳에 있을 뿐 아니라, 동갑에, 치아가 부실한 것마저 똑같지만 -- 최씨는 앞 이가 하나 없다 -- 우리 사이의 공통점은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요.
첫댓글 역시 글자 키우기가 안 되네. 너무 눈이 아프지? 한번 더 해 볼까?
영태의 글은 당사자를 직접 보고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흠~~, 참 오랜만에 들어 봅니다. 쏘피스트, 견유학파.... 글 잘 읽었습니다.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글키우기가 왜 안된다는거지? 지금 크게 키워져있는데... 눈 아프지않고 재미나게 잘읽었다~
이 글자 하나도 키우지 않은 거거든. 14포인트 정도로 하고 싶은데 말이야. 이 글자로도 읽을 만한가?
글자가 작다 싶으면 콘트롤 키 누르고 마우스 가운데 롤러를 클릭한 후 회전시키면 글자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해서 볼 수 있던데요?
미국 여행 중 올라온 긴~글이라 안보고 있다 이제서야 봤네. 신기료 장수의 긴 얘기도 그렇지만 여전히 벤치프레스를 계속하며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영태를 느끼면서 말야~
나는 최형(신기료 장수) 정도만이라도 될까?....애라! 생각없이 살기가 나의 목표인데~~ 글 읽는 것으로만 끝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