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운명이 바뀌다" "운명이 달라지다"고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길을 가게 됨을 말한다.
어떤 인물의 사망 소식을 전할 때도 이와 비슷하게 "운명을 달리했다"는 표현을 흔히 쓴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셨다"
"숙환으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등의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운명을 달리했다"에는 "사망했다"는 뜻이 없다.
"유명을 달리했다"고 해야 한다.
유명(幽明)은 어둠과 밝음, 즉 저승과 이승을
뜻한다. "유명을 달리했다"고 하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갔다는 얘기로, 사망했다는 의미다.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숙환으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등으로 쓰인다.
사망의 뜻을 가진 다른 한자어로 운명(殞命)도 있다.
"목숨이 끊어짐"을 의미하며, "어젯밤 10시에 운명하셨다"
"아버님의 운명을 지켜보지 못했다" 등의 예로 쓰인다.
이 경우에도 "운명했다"고 하지 "운명을 달리했다"고 쓰지는 않는다.
한자의 차이 때문에 이들 단어의 사용에 혼란이 온다.
사망의 경우 "유명을 달리했다" "운명했다"로 할 수 있지만, "운명을 달리했다"는 표현은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배상복 기자<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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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運命,fate)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一切)가 지배를 받는 것이라 생각할 때 그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 힘에 의하여 신상에 닥치는 길흉화복을 말한다.
이 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신앙하는 것으로서 예로부터 각 지방의 신화(神話)나 종교 및 철학사상에 나타난다.
인간이 그 힘, 또는 법칙에 대하여 이해하는 점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이것을 표현하는 데는 상당한 복잡성을 띤다.
예를 들어 그리스인(人)들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세 여신(女神)을 생각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탄생을 지배하며 생명의 실을 잣는 클로토(Klotho)와 인간의 일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라케시스(Lachesis),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여 그 생명의 실을 끊어버리는
아트로포스(Atropos)이다.
이와 같이 자기 스스로의 상태를 안 인간은 의지(意志)의 힘을 부정하고 ‘체념(諦念)’으로
향하여 무슨 일이나 고민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탈피하여 정적주의(靜寂主義)로 빠지는
경향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리스인의 경우는 그 운명의 힘 속에 신의 섭리와도 비슷한 의지의 존재를 믿고
그것에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데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따라서 운명을 깨달음으로 해서 세상을 비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낙천적이 되었다. 어찌 되었건 운명을 안다는 일은 인간으로 하여금 여하한 형태로든지 그곳으로부터의 해방 ·탈출의 수단을 강구하게 한다.
운명에 대한 관념에는 형이상학적 경향이 강한 것과, 인도(불교)의 인과응보에 대한 사상처럼 종교적 ·도덕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한 것이 있으나 확실하게 구별할 수는 없다.
또 인간의 운명을 예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신앙이다.
운명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기는 하나 근대인의 운명관은 고대 중세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자연과학의 발전과 인간성 존중 사상에서 그로부터의 해방과 극복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오랫동안 ‘체념’을 일종의 미덕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아직도 운명은 개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첫댓글 정말 생활한자이군요. 運命, 幽明, 殞命을 정확히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