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드러난 일만을 가지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절망하지는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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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연중 제3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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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21장 5-11절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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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진 자리를 보다가
복효근 시인의 ‘꽃을 보는 법’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모란이 지고 나서 꽃 진 자리를 보다가 알았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다섯 개의 씨앗이 솟아오르더니 왕관 모양이 되었다/ 화중왕이라는 말은 꽃잎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꽃은 그러니까 진 다음까지 꽃이다” 시인이 노래한 대로 꽃도, 사람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인 것 같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여운까지가 연극의 일부인 것처럼 말입니다. 즉 우리의 삶은 드러난 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눈이 겉모습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이면까지 볼 수 있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성전을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성전의 겉모습에 현혹되어 성전이 영원하리라 생각했지만, 숨은 것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위선과 탐욕의 성전은 무너지고 사랑과 자비의 성전이 새롭게 세워지리라 희망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면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면, 꽃이 지는 것을 꽃의 패배로 오독하여 절망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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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준 안토니오 신부(서울대교구)
생활성서 2023년 11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