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에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셨습니까?
호주의 이민수용소와 서재오씨의 사건을 보셨습니까? 아래 내용은
그 방송분의 줄거리입니다.
그리고 밑에 것은 서재오씨님의 편지입니다.
부디 이 글을 퍼뜨려서 온 국민 사람이 알게 해주세요.
어제 방송이 끝나고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는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서재오씨님이 석방을 기원해서 만든 카페
cafe.daum.net/suckbang (서재오 석방!)
지상 최후의 낙원 시드니 이민 수용소의 한 한국인
민주와 인권의 나라를 자처하는 호주, 그러나 이 아름다운 도시 서쪽에는 교도소 보다 더 삼엄한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가 있다.
불법체류자나 비자에 문제가 생긴 이민자를 일시적으로 수용하는 이 곳에 3년 5개월째 갇혀있는 한 한국인이 있다.
호주 생활 14년째, 올해 38살의 서재오씨.
진실을 밝혀 주십시요.
그가 도움을 요청해 왔다.
'마약 사범도 몇 달이면 풀려나는 이 곳에서 자신은 3년 5개월째 갇혀 있으며
그 중 10개월은 재판도 없이 부당하게 교도소로 끌려갔고
42일 간의 단식 투쟁을 통해 다시
수용소로 돌아 올 수 있었다'며 꼭 진실을 밝혀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수용소의 규칙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으며 자신의 잘못이라면 영어를 잘 못하는,수용소의 동포와 아시아인들을 위해 그들의 입장을 설명해 준 것밖에 없노라고..
. 그러나 호주 이민성은 서씨는 행동 처신이 올바르지 못하며 경비원과
다른 수용자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에 그를 교도소로 보냈으며 수용소
석방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민주와 인권의 나라 호주에 묻는다
. 우리가 만난 수용소의 아시아인들은 그를 '수용소의 대변인,
수용소의 변호사, 한국 대사', 로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서씨를 아는 교민들은 비록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었지만
그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도움으로 호주에 정착한 한국인, 조선족들은 그를 위해 기꺼이 보석금을 내고
생활을 보증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호주 이민성은 그의 석방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호주 교민 사회는 서씨 구명을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은 호주 당국에 묻고 있다. 왜 이민 수용소에는 단 한 명의 백인도 없이
아시아인과 아랍인들만 수용되어 있는가,
하겠다는 10여명의 한국인들을 왜 신뢰하지 않는가,
고 한국 영사관은 왜 자국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가?
이제는 말하겠다
우리는 서씨를 취재하면서 이민 수용소의
다른 한국인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시인하면 한국에 보내 주겠다는 말에
6개월 형을 살아야 했던 이씨,
그녀는 교도소에서 다친 상처를 치료하는 약인 줄 알고 1년간 진정제를 먹고 있었다.
무슨 서류인 줄 모르고 서명했다 불법적으로 강제 추방된 박씨,
그리고 서씨와 함께 교도소로 보내졌지만 아직도 2년째 교도소에 갇혀 있는 김씨,
그는 왜 교도소로 오게 되었는지 지금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들은 유일한 말은,
'너는 똑똑한 한국인이니까 수용소보다 교도소가 났겠지...'
서씨의 사연을 들은 한 교민은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살기 바빠
수용소에 갇힌 동포의 인권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겠다.
우리는 호주의 발전에 누구보다도 기여했다.
그리고 매년 20 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호주를 찾고 있다.
서재오씨의 간절한 편지
“억울합니다.”
서재호 씨의 전화를 받았을 때 기자는 당황했다.
“설마 호주라는 법치국가에서 그런 일이 있을라구.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서재호 씨의 주장이 옳았다. 기자는 분노와 함께 비애같은 것을 느꼈다. 그저 쳐다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기자가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서재호 씨가 바로 한인사회의 인권유린의 한 모델이며 또한 부당하게 차별대우받는 약소민족의 한 설움인 것을 확증했기 때문이다.
서 씨의 증언은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 내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각종
인권유린의 진상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며 다소 변명이 있을지라도 이 시점에서 그의 증언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기자는 세 차례에 걸쳐 7시간 동안 대좌,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으며 또 폭행사건과 교도소 수감 등 그를 둘러싼 숱한 소문 진위를 확인해 보았다. 서 씨는 자신의 심경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놨다.
호주내 인종차별주의, 폭행 다반사
빌라우드수용소에서 만난 중키의 서 씨는 30대 후반의 잘 생긴얼굴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고민이 많겠다’고 말문을 열자 그는 웃음을을 띠며 “잘못한 게 없으니 떳떳하다”고 했다.
서 씨는 그동안 홀로 외롭게 투쟁하여 왔다고 했다. 그는 보관하고 있는
각종 자료들을 펼쳐보이면서 호주 정부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그는 항변했다.
“죄인도 아닌 사람을 죄인 취급하면서 3년 4개월 째 감금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죄명도 없이 법정에 서 보지도 못한 채 교도소로 보내져 형을 살아야 했습니다.”
- 법정에 서지도 않고 교도소로 보내졌단 말입니까 ?
“그렇다니까요. 수갑을 채워 납치하다 싶이하여 교도소로
보내더라구요.”
서 씨는 기자에게 “호주는 법치국가가 아니냐”고 따지듯 반문했다.
- 잘못이 없다면 떳떳하게 변호사를 선임하던지 인권위원회 등 관계
조사기관에 입장을 밝히면 될 것 아닙니까 ?
“했죠. 여기 보십시요.”
그는 그동안 여러 조사기관과 한인관계자들에게 보낸 서류뭉치들을
내밀었다.
“호주 관계기관에서는 제 편지를 받고 가타부타 답을 주었는데 한인사회와 한국정부에서는 일체 소식이 없는 겁니다.”
서씨는 서운하지만 어쩌겠느냐고 했다.
- 그래도 밖에서 들을 때는 빌라우드수용소는 자유롭고 대우도 좋다는
말이 들리던데요 ?
“말도 안되는 얘기입니다. 물론 제 사건 이후 위생시설이나 식사같은
것은 좀 나아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인종차별과 인권침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는 나치 당시 히틀러보다 더 악랄합니다. 법도 없는 국가라니까요.
박성철이라는 조선족이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배식문제로 시비가 붙어 싸웠는데 그를 독방에 감금시키더니 식사도 제대로 안주고 해
정신분열증세까지 보였습니다. 결국 문제아로 지목하여 거짓증서를 작성하여 추방시켰어요. 병자인데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김재범이라는 한국인이 있는데 죄도 없이 끌려가
폭행당하고 지금 롱베이 교도소에 2년째 감금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아시안들 뿐 아닙니까 ? 유럽 사람들이 있나 한 번 찾아 보십시요. 이것이 인종차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어느땐 개, 돼지 취급한다니까요. 한가족이 몽땅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은 따로
가족방을 주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밤에 잠을 자는데 연락도 없이 수시로 손전등을 가지고 와 알굴에 비치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어 불면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있는 방에 수시로 들어와 그렇게 하는 경우가 어디있습니까 ?
서 씨는 기가 막히다고 했다.
“저 역시 지금 매일 안정제와 진정제 약을 먹어야 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4년째입니다. 석방시키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여덟차례나 이민성에 석방비자 신청을 했으나 다 거절되었습니다,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해 보증인을 내 세우고 보석금을 낼 수 있느냐고 해 보석금을 낸다고 해도 이핑계 저핑계로 나를 석방하지 않고 감금시키고 있습니다. 나보다도 더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석방을 시키고 풀어주는데 이렇게
4년째 감금시키고 있는 것이 인종차별이 아닌가요 ?
이곳에서 규칙대로 생활해 왔고 아무 잘못도 저질르지 않았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사실 나 뿐만이 아닙니다. 힘없고 배경없고 배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몇 년씩 감금되어 있습니다. 꼭 진실을 밝혀 주십시요.”
수갑채워 실버워터 교도소로 이송
- 언제 어떻게 해서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
“제가 호주에 온 것은 1987년도입니다. 오자마자 호텔에서 일하면서
공부했습니다. 학교 졸업과 동시 ‘카펜터’ 자격증을 취득해 직장을
옮겼습니다. 이 때 영주권 신청을 하면서 브리징 비자를 받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한 식당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싸움이 벌어져 경찰서로 가게
되었는데 재판 날짜를 통보해 주더라구요. 상대방에서 고소한 거죠. 재판날짜가 되어 법정에 가니까 6개 월 실형을 받았어요. 항소를 안했죠. 그래서 곧바로 교도소로 보내져 형을 살게 되었는데 형기를 마치고 나니까
이곳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로 보내더라구요.”
- 석방이 안되고 이곳으로 왔단 말입니까 ?
“그렇지요. 이민성 담당자 말로는 형을 살면 비자가 무효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변호사에게 알아 보니까 12개월 미만 형은 석방에 하자가 없다는 거에요.”
- 그러니까 이곳에 온 날이 언제였습니까 ?
“1998년 6월 8일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처음에는 ‘스테이지 1’(1동)에 있었거던요. 위생시설이 엉망인 겁니다. 왜 있지 않습니까 ? 베개며 이불에 오줌자국이 그대로 있고 냄새나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에요. 그 뿐만 아닙니다. 한 방에 8명씩 들여보내 통나무잠을 잤다니까요. 그것도 괜찮아요.
마약중독자들과 한 방 생활을 하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인권유린이 아니겠습니까 ?
완전히 동물취급 한겁니다. 식사배급도 그래요. 식당에 의자가 32개 뿐이고 1백 명 이상되는데 그것도 한 시간 이내에 식사를 해야지 우물쭈물하다가는 굶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정해 달라고 경비회사(ACM)와 이민성에 요청을 하게 됐는데 이것으로 인해 ‘문제아’라고 찍힌거지요.”
서 씨는 이민법에 의하면 빌라우드 수용소 ‘스테이지 1’에는 73명 이상을 수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픈 환자가 있는데 병원에 보내지도 않고 치료도 해 주지 않는다면 이것이 인권침해가 아니냐고
따졌다. 카랑카랑한 목소리. 달변에다 빛나는 눈맥 언뜻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런 문제를 이민성과 인권협회 그리고 국제사면위원회 등에 편지를 써서 보낸 거지요. 그런 후 수용소에 총비상이 걸렸고 나를 중범죄 자 취급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영어를 할 줄 아니까 가끔 이민성이나 경비회사에서 저를 불러 통역을 했거든요. 그 날도 불러
가보니까 한 사람을 독방에 감금해 놓고 내일 추방할 것이라고 통역을해 달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민법에 의하면 추방하려면 48시간 이내 경고장을 먼저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따졌어요. 경고장 없이 추방한다는 것은 불법이 아니냐.
그런데 경비회사에서는 이민성 지시대로 할 뿐이지 자기들은 모른다며
발뺌을 하는 거에요. 추방될 사람이 인도네시아 사람인데 그 사실을 알고 인도네시아인들이 모여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모여 들었어요. 제가
만류했지요. 그러면서 왜 마이클을 독방에 감금했느냐 석방하라고
요청했지요.
그러니까 부소장이 화를 벌컥 내며 “모두 교도소로 보내버리겠다”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그 날은 지나갔는데 다음날 마이클은 결국 추방되고 말았지요. 그랬는데 점심식사 후 저를 찾는 거에요. 독방으로 끌고 가길래 나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 직감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교도소로 이송한다고 하면서 사인하라고 그래요. 무슨 잘못을 했는지 보여 달라고 했지요. 그랬는데 무조건 사인하라는 겁니다. 전 자꾸 보여달라고 했는데 안하면 자기들이 하겠다고 휑 나가 버리대요.
5분이 지났을까 경비회사 다섯 명이 소장과 함께 들어와 후송시킬테니
손들어라 하는 거에요. 몸수색을 한고 난 후 수갑을 채우고 납치하다 시피 실버워터 교도소로 이송됐습니다. 그 때가 99년 6월 16일입니다.”
롱베이 교도소에서 42일간 단식투쟁
서 씨는 교도소에서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돈이 없어 법적수속을
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지요. 깜짝 놀라는 거에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 수속을 할 수가 없었지요. 그 후 억울한 사연을 각 한인사회 단체장에게 보냈으나 아무 연락이 없어 서글펐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중범죄자들이 있는
이곳 교도소로 와 죄인 취급받으면서 형을 살고 있으니 석방하지 않으면
단식에 들어갈 것이다. 12월 14일까지 석방하지 않으면 그 날부터 단식에 들어 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다가 오는데 아무 연락이 없는거에요. 사실 저는
단식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교도소 직원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저를 차에 싣고 어디론가 가는 거에요.”
서 씨의 어조가 다시 높아지면서 연설조를 띠기 시작했다. 할말은 다하겠다는 눈치다.
“가보니까 롱베이 교도소 병원이라고 그래요. 다음 날부터 단식에 들어갔지요. 물도 안 먹었습니다. 이민성 담당자가 와서 단식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5일이 지났을 때 호주인 목사님이 오셔서 물을
마시래요. 물을 안 마시면 일 주일 버티지 못한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물 안마시면 죽습니다’하고 간곡히 말씀하는데 의사가 와서 검진하더니 단식을 중단하지 않으면 위험하니 중단하라는 겁니다. 들은 척도 않했죠. 그랬더니 응급실로 옮겨 교도관이 24시간 지켰습니다.
호주인 목사님은 일주일에 두 번 오셨는데 캔싱턴교회 목사님이셨어요.
하루는 이민성 담당자가 찾아와 석방해 줄테니 단식을 중단하라고 합니다. 공문을 작성해서 보내주면 단식을 중단하겠다고 했지요. ‘왜 공문이 필요하냐 나를 믿어라’ 그래요. 난 믿을 수 없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다음 주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돌아갔습니다.
다음 주일 이민성 담당자 오는 시간을 맞춰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이민담당관이 올 것 같으니 증인으로 계셔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때 이성
담당관이 왔는데 목사님을 보더니 얼굴이 새빨개지는 거에요. 제가 말했지요.
서류가지고 왔느냐구요. 그랬더니 나는 당신하고 할 말이 없다며 나가버리더라구요.
그 후 42일째 되는 날 이민 담당관이 석방하겠다는 편지를 가지고 와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1월 18일 11시 50분에 단식을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롱베이 교도소 병원에서 일 주일간 요양을 한 후 다시 이곳으로 후송되어 왔는데 와보니까 경비회사 경비원들이 거의 바뀌었더군요.
그런데 단식 영향인지 건강이 안좋아 계속 신경안정제를 복용해 오고 있는데 병원치료를 받으려해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서 씨는 건강문제에 관한 질문이 계속되자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답변 속도가 매우 느려지면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죽고만 싶습니다.”
촉촉히 젖은 서 씨의 목소리는 절규처럼 떨렸다.
장시간의 마라톤 대화가 끝났다. 인터뷰를 한 기자로서는 그의 소신이나
답변을 굴절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모든 평가는 독자에게 맡긴다는 심정으로 발언 요지를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
서 씨는 장시간의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질 때 뼈있는 한마디를 보탰다.
“석방시켜 주세요.”
에필로그
지금껏 강 건너편의 일로만 생각했던 호주 속의 인권문제가 바로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에 3년 4개월째 감금되어 있는 서재호 씨의 인권유린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몇 가지 충격을 주었다. 이민 수용소에서 수용인들을 감금하고 폭행을 가하는 만행은 전근대적인 사회에서나, 즉 공산주의사회 그리고 군부독재 국가에서나 행하여지는 것인 줄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법치국가라고 자랑하는 호주에서 행하여졌다는 것과 더 충격적인 것은 죄인도 아닌 사람들을 중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교도소로 보내 형을 살도록 자행한 일이다.
더욱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호주 정부가 이사건을 정직하게 시인하지도
공개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기자가 느낀 중요한 점은 이 사건으로 그 전에 종종 있었다고 주장되었던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남아공 국적의 억류자 자살사건, 46명의 수용소 탈출사건들이 모두
이런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호주 시드니 빌라우드 이민수용소에서 온 편지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에 3년 4개월째 감금된 서재호 씨의 육필 호소문
“억울합니다.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
존경하는 한인 동포 여러분께 !
안녕하십니까 ? 저의 이름은 서재호라 합니다. 국적은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제가 이 글을 드리게 된 이유는 호주 정부로부터 인종차별,
인권침해, 부당한 불이익을 받았기에 한인 동포 여러분께 이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바입니다.
교민 여러분께서 이 사건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럼 제가 이곳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저는 1998년 6월 8일부터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에 감금하게 되었습니다.
이민 수용소에 감금생활을 하다 보니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이민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수용인들이 부당한 인종차별, 인권침해, 부당한 인권
불이익을
받고 있길래 이런 문제를 시정해 달라고 이민성과 ACM경비회사에 수 없이
요청을 했으나 이민성과 경비회사에서 하는 소리가 당신은(서재호) 수용되어
있는 사람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 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 시설문제, 비위생적인 부식문제,
비위생적인 화장실 문제, 이민법에 의하면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Stage
One)에 73명 이상을 수용할 수 없는데 1백 명 이상을 수용한다던가, 죄인도
아닌 수용인을 죄인 취급하면서 독방에 가둔다던가, 인간 취급을 하지 않고
동물 취급을 한다든가 ?
아픈 환자가 있는데도 병원에 보내지 않고 치료도 해주지 않는
문제라든가,
이렇게 인간을 인종차별하고 인권침해하고 이런 문제를 10차례 이상을
Commonwealth Ombudsman, Human Rights and Equal Opportunity Commission
등
이런 조사기관에 항의사항(시정해 달라는)을 적어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본인(서재호)을 감시대상으로 지켜보고
문제아로 취급하고 말썽꾸러기라고 취급하는 것은 인종차별, 인권침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본인 서재호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1999년 6월 16일 본인(서재호)을
강제 납치하여 중범죄자들만 수용하는 교도소로 수갑을 채워 납치하여
10개월
동안 끌려가서 살아야 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아무 죄명도 없이) 법정에 서지도 않고 무조건 교도소
생활을 시켰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호주 국가가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로서 만인이 평등한
정의의 사회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하여
형법상
아무 하자 없는 사람을 중범죄자들만 수용하는 교도소에 아무 죄명도
부치지않고 감금구속을 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
너무 억울합니다. 이 문제는 저 혼자만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힘 없고 약하고 배우지 못한 우리 선량한 인간이 또 언제 어떻게 이런
권력자들에게 이런 행정 폭행을 당할 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이웃 주민 즉, 한인 동포 형제 자매, 부모, 친구, 이웃
사람이
개처럼 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 여기에서 바르게 조사가
되지 않고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된다면 앞으로 나의 친구 힘없는 우리의
이웃 주민, 형제자매, 부모, 이웃 사람들이 또 언제 어떻게 부당한
인종차별,
인권침해를 받아야할 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고 저의 목숨을
걸고 투쟁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존경하는 한인 동포 여러분 !
과연 이 나라가(호주라는 국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까 ? 또
다문화 다민족이 살아가는 국가라 할 수 있습니까 ? 이것은 나치(독일)
히틀러 보다 더 악랄한 법도 없는 국가라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한인 동포 여러분 !
저 서재호는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에 감금된 지 4년째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건강상태는 아주 좋지 않은 상태이고 매일 안정제와 진정제 약을
먹고 생활해야 합니다. 또한 자주 극단적인 생각이 듭니다(예: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수 없이 매일 제 자신을 괴롭힙니다).
제가 이 모든 수용인을 대표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제 정신상태는 자꾸 희미해 집니다. 죄수도 아닌, 죄인도 아닌, 범죄자도
아닌 사람을 3년이 넘도록 감금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
과연 이 나라가 인도적인 국가일까요 ? 이곳에서 석방을 하려고 8차례를
이민성에 석방 비자 신청을 했으나 다 거절되었습니다.
보증인이 없다고 해서 보증인을 데리고 가고, 보석금을 낸다고 해 보았고,
그런데도 이민성에서는 이핑계 저핑계로 나를 석방하지 않고 감금시키고
있습니다.
본인보다 더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석방을 시키고 풀어 주는데 저를
이렇게 감금시킨 것은 인종차별, 인권침해, 부당한 불이익, 너무나
억울합니다.
존경하는 한인 동포 여러분 !
저는 아무 잘못도 없이 강제 납치되어 교도소에 10개월 정도 감금되면서
42일이라는 길다면 긴 단식투쟁도 해 보았습니다. 먹는 것이라고는 물
반컵씩
마시면서 저의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이유는 형법상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어느 법 규정에 의하여 저를 교도소에 감금시켰는지요 ?
이 사건은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힘없고 배경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까지 몇 년씩 감금되어 있습니다.
존경하는 한인 동포 여러분 !
이 편지 내용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여러 감사기관에 수 차례에 걸쳐 조사해 달라고 편지를 했지만
아직도
시정되지 않고 저를 이곳에서 행동처신이 바르지 못하다, 말썽만 피우는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단 한 건도 규칙과
규율을 어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호주라는 법치국가에서 저같은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고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여러분이 협조해서 꼭 진실을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편지를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에서 서재호 올림
총영사관의 모습...정말 웃기지도 않더군여..
뭐, 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나..??
참...
도대체 총영사라는 관직이 무엇을 하고있는 관직이고,
그직책은 누구에 의해 움직이고 ,
어떻게 운영해야 되는가를 알고 있습니까?
"그것이 알고싶다" 의 해답은
국민의 뼈빠지게 일하고 당신들을 먹여살려야 될 세금으로
당신의 월급과 당신의 판공비와 당신식구와 가족들의 복리후생
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당신이 무엇을 해야 된다는 해답은 자명한 것 입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해 국민의 어려운점을 해결해 주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당장 이내용을 현정부의 고위층에 보고하고,
서재오씨가 하루빨리 석방되어 그나라의 사과와 우리국민을 우습게
보는 제2,3의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될 의무가
당연히 있을것이고,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 모든 국민 들에게 당신의 통탄한 사과를
해야되고, 또 이런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발로뛰는 총영사의 모습을
보여야 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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